박완수의 중국통신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10·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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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의 중국통신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10·끝)
  • 승인 2004.04.2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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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학’으로 부활하는 ‘한의학’

사진설명 - 중국 연수기간 중 함께 했던 외국군의관들과의 송별기념사진. 뒷줄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캄보디아, 필자, 에콰도르(2명), 이집트, 탄자니아(2명), 잠비아의 군의관.

11. 새로운 역사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서 이루어진다

한의학을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은 가져 보았을 느낌, 그리고 중국의 중의학계에 몸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또한 느꼈던 것은 - ‘한의학의 원리’에 대한 불확신 즉 자신감의 결여이다. 중국 제일군의대학의 침구과장이 외국군의관들에게 ‘침구학’을 강의하며 처음부터 이야기한 것은 바로 “침술학의 과학적 근거에 대해서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밝혀질 것이다”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좀 더 많은 실험과 증명들이 이루어진다면 언젠가는 그 침술효과가 명확하게 밝혀질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그에 대한 나의 의견과 질문은 다음과 같았다. “우리가 과연 침술의 치료효과에 대해서 그렇게 자연과학적·서양의학적 설명론으로 완전하게 규명해야 할 필요와 의무가 있는가? 예를 들자면 어떤 사람이 충수염(맹장염)에 걸렸을 때, 외과의사는 외과수술로 그 문제를 해결한다. 그렇다면 그 외과의사는 어떤 방법으로 그 치료술에 대한 검증을 이루어 내는가? ‘이중맹검법’에 의한 것인가? 아니면 ‘플라시보 효과검사’에 의한 것인가? 우리는 이미 침술자극이 인체에 진통억제물질을 분비한다든지, 뇌의 일정부위에 활성화를 유도한다든지, 통증수용과정의 역치를 높인다는 등의 어느 정도 설득근거가 될 수 있는 실험적 결과들이 있음을 알고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효과들의 종합적·통합적 작용에 의해서 침술효능이 나타난다고 이해하면 되지 않겠는가?”

실지로 서양의학에서조차도 완벽하게 치료기전이나 치료원리가 밝혀진 치료법은 50%를 넘지 못한다. 중요한 것은 질병을 갖고 있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그에 대한 올바른, 그리고 좀 더 적절한 대처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발목을 심하게 삔 사람에게 때로는 석고붕대에 의한 ‘환부고정 치료법’과 ‘소염진통제’가 좋은 치료법이 될 수도 있겠지만 때로는 침술에 의한 자극과 사혈요법이 더 효율적이며 적절한 치료법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어느 것이 더 좋은 것인가는 환자와 의사(한의사이든 양의사이든)의 판단에 달려 있는 것이며 좀 더 바람직한 치료법을 선택하기 위해서 좀 더 많은 정보와 좀 더 ‘열린’ 사고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필자는 여기서 한의학이 서양의학보다 완벽하게 앞서있는 것이라 주장하지는 않는다. 즉 ‘의학’ 그 자체는 어느 것이 옳고 어느 것이 틀렸다고 말하기 어려운 것이라 생각한다. 2000년 전 내경 시대의 ‘의학’과 동의보감이 쓰여졌던 때의 ‘의학’ 그리고 지금의 ‘한의학’이 과연 100% 같은 것인가?

서양의학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이다. 2천여 년 전 히포크라테스 시대의 서양의학이 어떤 점에 있어서는(예를 들면 사람에게 귀신이 들려서 중병에 걸리게 된 것이라는 등의) 현재의 한의학보다 오히려 좀 더 2천년 전의 동양의학에 가까운 모습을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또한 중국의 삼국지에 나온 것처럼 관우의 팔에 박힌 독침을 뽑아내기 위해 마취약물을 사용하고 외과수술을 시행했던 ‘화타’의 모습은 오히려 지금의 ‘외과의사’에 가까운 개념인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현재의 ‘한의학’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필자는 이에 대해서 전에도 언급했던 것처럼 ‘한의학적 패러다임’이라는 ‘새로운 이해의 틀’을 만들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이해의 틀을 마련하는 데 이제마의 ‘사상의학’은 우리에게 역사적 전환점을 마련해 주었다고 판단한다.

역사에 의해서 인간이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에 의해서 역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자신들이 가지는 ‘이해의 틀’로서 세상을 이해하고 판단하며, 그러한 판단을 바탕으로 행동하며 실천하여 ‘삶’을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패러다임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갈 수 있다. 역사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아주 작은 출발로부터 점차로 커져 가는 것이다.

한국의 한의학이 과거에 동양아시아의 한 부분으로부터 시작하여 지역적으로, 부분적으로 유지되고 전해 내려왔다고 할 지라도 현시대의 새로운 상황과 새로운 문제점을 맞이하여 그에 맞는 새로운 해결책과 해결방법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그것은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내는 패러다임의 모습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역사는 결코 어제의 수레바퀴에 의해서만 굴러가지는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보아 왔다. 인류가 갖고 있는 고통과 문제점에 대해서 우리가 좀 더 나은 해결의 실마리를 가지고 있다면 주저할 필요가 있는가. 그것을 알리고, 적용하고 또한 그에 따라 나타나는 새로운 문제점을 다시 고쳐나감으로써 끊임없이 보완해 나간다면 ‘한국의 한의학’은 ‘세계의 의학’으로 당당하게 자리잡아 나갈 것이다.

인간과 존재에 대하여 끊임없는 ‘이질성에 대한 확인’과정의 서양과학·서양의학·서구문화에 대하여 ‘인간의 근본적 동질성에 대한 인식’을 중심으로 하는 한국의 사상의학·사상일심론·한의학은 분명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인간에게 새로운 역사를 만들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한국사람들에게 뿐만 아니라 세계 여러 나라의 많은 ‘사람’들에게도 공감될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한의학은 또 다른 새로운 역사의 물줄기를 만들어낼 것이 분명하다.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
- 역사는 모든 사람이 같이할 수 있는, 그러한 마음의 길로 흐를 것이다. <끝>

박 완 수(국군수도통합병원 한방과장·한의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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