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수의 중국통신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9)-‘흑백이분법’과 사상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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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의 중국통신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9)-‘흑백이분법’과 사상일심
  • 승인 2004.04.20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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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다”

박 완 수(국군수도통합병원 한방과장 대위·한의학박사)

사진설명 - 남방병원 중의계 침구과장의 침술시술모습을 각국 연수생들이 지켜보고 있다. 뒷줄 좌에서 네 번째가 필자.


10. 흑백론적, 절대론적인 이분법을 아우르다.

언제나 ‘정상과 비정상’,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유익한 것과 해로운 것’ 등으로 나누며 근본적으로 서로 ‘다른 것’임을 확인하는 사유방법으로부터, ‘변화’에 대한 가능성, 나와 다른 것이 존재할 수 있음의 인정, 그러면서도 근본적으로는 ‘같은 존재’임을 깨달아 간다는 사유방식-’사상일심’론-은 인간과 세상을 보는 눈을 좀 더 부드럽고 따듯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지난 수 십 년간 한국인에게 있어 ‘중국’이란 존재는 ‘공산주의’국가, 혹은 우리 나라와 전쟁을 치른 나라, 즉 ‘적군’의 이미지가 강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1990년대 이후로 양국이 수교와 더불어 민간의 교류가 활성화되면서 어느덧 점차로 ‘이웃’의 이미지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생각에 변화가 오고 또한 역사적 상황도 같이 변해 가는 것이다.
그러한 변화의 느낌은 중국사람들도 마찬가지로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때 중국에서도 ‘문화혁명’이란 정치적 소용돌이 속에서 많은 사람들 (주로 집안이 부유했거나 땅을 가지고 있었거나 아니면 지식층들)이 고초를 당하고 목숨을 잃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돈을 잘 버는 사람들, 지식이 뛰어난 사람들을 사회 발전의 한 축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은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라는 것이 이제마의 사상의학으로부터 느낄 수 있는 중요한 깨달음이다.

물론 현대과학이 분석하는 인간의 물질적·세포학적 의미에서 ‘같은 성질’을 발견한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던 데까르트의 선언이후 인간은 ‘생각하는 동물’이란 개념으로 ‘동물’과 분리하였으며 나아가서는 인간사이에서도 ‘생각하는 인간’과 ‘생각하지 않는 인간’으로 구분하게 되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즉 ‘좀 더 생각을 하고, 더 우수한 인종, 더 뛰어난 민족’과 ‘덜 생각하고, 덜 우수한 민족’으로 사람들을 차등화·차별화·서열화해서 ‘우수한 국가, 민족, 우수한 사람’이 ‘뒤떨어지는 국가, 민족, 뒤떨어지는 사람’을 지배하고 다스려야 한다는 ‘논리’를 정당화시킨 것이 아닌가 한다.

물론 이런 사상은 이른바 플라톤의 ‘철인정치’론으로부터 이어져 온 것일 수도 있다.
즉 뛰어난 능력을 지닌 ‘철인·성군’에 의하여 우매한 ‘다수’가 다스려져야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결국 ‘같은 밥을 먹고 같은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 할지라도 무엇인가 본질적으로는 다른 면이 있어서 우수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차별화할 수 있다’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가 자라날 수 있는 배경도 이와 비슷한 사고의 틀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 지역, 민족, 국가가 가장 최고의 가치를 가지고 있으며 최고의 능력을 절대적으로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은 때로는 우리 인류역사에 커다란 상처를 내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어느 것이 좋고 나쁨을 절대적으로 구분짓는 흑백론적 이원론으로부터 이제는 역사의 시각을 옮겨서, ‘다름’과 ‘개성’을 인정하고, 그러면서도 ‘본질적으로 같다’는 것을 인식의 틀로 삼는 ‘사상일심’론과 같은 패러다임은 우리가 풀어야하는 의학적 난제들 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나는 많은 문제점들을 해결하는 새로운 실마리를 제공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받고 있는 고통들 중에 많은 부분은 ‘마음’과 관련되는 것이고 그래서 ‘사상의학’의 중요한 핵심은 바로 ‘희노애락’이 지나치지 않게, 적절히 조절하는 것에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한 ‘마음’은 모든 인간에게 있어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다. 즉 ‘한마음’을 갖고 있는 것이다.

필자가 중국 광저우에서 많은 중국 사람들을 많나면서 이야기하며 느꼈던 것, 그리고 에콰도르, 이집트, 잠비아, 캄보디아, 스리랑카, 루마니아, 그루지아, 쿠바 등 15개국에서 온, 종교가 다르고 민족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그래서 ‘문화’가 다른 많은 군의관들과 같이 생활하고 공부하며 토론의 와중에 점차로 가지게 되는 생각은 ‘진정 인간은 본질적으로 같은 존재가 아닌가’ 라는 것이다.

연수생활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에 제일군의대학 중의학과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의 전통의학 한의학’에 대해서 약 1시간동안의 강의와 질문·답변의 시간을 갖게 되었다.

학생수는 130여명 이었으며 강의는 영어와 중국어를 섞어서 진행하였다. 한의학에 대한 대체적인 설명과 중의학과의 차이점을 주로 ‘사상의학’을 중심으로 설명했다.

또한 위에서 논한 ‘사상일심’론과 더불어 한의학의 유심론적인 측면과 중의학의 유물론적인 측면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나갔다.

아직은 3학년 학생들이라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도 많이 있었던 것으로 보였으나 아무튼 한의학과 한국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도가 높아 보였으며 강의가 끝난 후 한국과 한의학에 대해서 중국·중의학과 관련하여 7~8명의 학생들이 질문을 하였다.

질문의 내용은 ‘중국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가’, ‘중국과 미국을 비교했을 때 어느 나라를 더 좋아하는가’, ‘사상’과 ‘일심’의 의미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달라‘ 등등 다양한 것이었다.

필자가 ‘본인의 종교는 기독교인데 중국에는 교회가 매우 적어서 한국·미국과의 차이점이 있는 것 같다’라고 했더니 ‘광저우 시에도 많은 교회가 있다. 시간이 되면 같이 가보자’라고 답변하는 학생들도 있었다.

짧았던 시간이었지만 미래의 중의학계를 담당할 학생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끼게 되었다.

또한 한국의 ‘사상의학’과 ‘사상일심’론이 중국의 중의학과 학생들에게도 ‘공감’을 받을 수 있는 논리적 설득력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번 강의는 제일군의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한글교실’과 함께 기억에 남는 일이 되었다.

또한 중국의 중의학계와 한국의 한의학계가 서로의 학문에 대해서 좀 더 많은 이해와 협력이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인간의 고통을 줄여나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의학의 중요한 의미이며 그것을 위해 서로가 공감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나가야 할 것 같다. (편집자 주: 필자는 중국 광저우의 제일군의대에서 연수 후 지난 1월12일 귀국, 원대복귀 했다) <계속>

필 자 약 력
▲경희대 한의대 졸업 ▲ KIST-경희대 협동연구과정 한의학석사 취득(94~96년) ▲경희대 대학원 한의학박사 취득(02년) ▲96년 군의관 임관(군의 26기) ▲국군철정병원 한의과장, 육군사관학교 지구병원 한의과장 역임, 현 국군수도통합병원 한방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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