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수의 중국통신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8)-중국에서의 한글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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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의 중국통신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8)-중국에서의 한글교실
  • 승인 2004.04.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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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차이성과 독자성 존중돼야

사진설명 - 광저우의 남방병원 전경. 내과계 입원환자용 건물로 비슷한 크기의 외래환자용과 외과수술환자용 건물이 별도로 있다.

9. 중국 대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치며

필자는 현재 이 곳 제일군의대학 1학년 학생들 몇 명에게 1주일에 두 차례씩 한국말을 가르치고 있다. ‘한글교실’을 열게 된 까닭은 한국말을 배우고 싶어하는 한 중국 학생 때문이었다. ‘원’이라는 이 학생은 광동성 출신으로 평소에 한국 배우(장동건? 확실치는 않다)를 좋아해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 했던 것이다.

마침 이곳에 연수교육차 와 있는 스리랑카 군의관을 알게 된 후 그를 통해 나를 소개받고 드디어는 한글을 배우게 된 것이다. 처음에는 15명 정도의 또래 동급생이 같이 와서 배웠다. 덕분에 나는 갑자기 한글의 모음, 자음 글자표와 영어식 발음설명, 쉬운 단어 예, 간단한 문장들 등 한글교실 교재를 만드느라고 애를 먹기도 했다. 그리고 10월 중순부터 현재까지 매주 금, 토요일 저녁 7시부터 약 1시간 반동안 한국어를 가르쳐 왔다.

15명의 한글교실 제자들

한글의 발음이 워낙 다양해서 따라하기 어려워하는 면도 많았다. 그래서 발음과 문장들을 외국인 배우기에 쉽게 되도록 간단하게 정리하였다. 예를 들면 모음 중에서 ‘외, 왜, 웨’는 모두 ‘외’로 발음하고, ‘애, 에, 얘’는 모두 ‘애’로 발음하도록 표를 만들었다. 왜냐하면 때로는 나조차도 구분하기 힘든 발음을 외국인들에게 처음부터 분리해서 발음하라고 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하였다.

또한 우리말의 대표적인 인사말인 ‘안녕하세요’를 ‘안녕’으로 해도 된다고 설명했다. 물론 한국인 입장에서 본다면 조금은 ‘불경’스러운 인사가 될 수도 있겠지만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 들여보면 외국인이 우리말을 알고 우리 인사말을 쓴다면 오히려 더 기쁘게 받아 들여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또한 중국의 학생들에게 한글을 가르칠 때 ‘쉬운 한글’의 입장에서 설명을 하였다. 즉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알려 줄 때는 따라하기 쉽고 배우기 쉬운 방법으로 가르쳐 주어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우리말은 말한 대로 쓰고, 들은 대로 쓰고, 쓰여진 대로 읽고, 사실 얼마나 편하고 합리적인가. 표음문자라는 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 라틴 계열의 언어도 사실상 완전히 발음과 표기가 일치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한글은 배우기 쉽다고 설명하였다. 또한 우리말 문장 중에는 물어보는 문장과 답변하는 문장이 같은 경우가 많다는 것도 알려 주었다. 예를 들면 ‘밥 먹었어요?’와 ‘밥 먹었어요!’가 같다. 단지 문장 끝의 톤이 올라가느냐(의문문) 내려가느냐(답변, 평서문)의 구분만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참 쉽다. 그래서 이러한 ‘쉬운 문장’ 위주로 강의를 진행해 나갔다.

언어란 무엇인가? 인간이 ‘정보’를 교환하기 위한 방편이다. 말하기 쉽고 쓰기 쉽다면 결국은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어를 배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치게 ‘예절과 예법’을 중시하는 우리말에서 조금 벗어난다 할 지라도 외국인이 ‘배우기 쉬운’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도 수긍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영어제일주의 사고방식

이렇게 한국어를 배우려는 중국 학생에게 어떤 외국군의관이 이렇게 반문한 적이 있었다. ‘왜 한국어를 배우려 하느냐? 지금은 영어를 잘 하면 세계 어디에 가도 편리하게 생활할 수 있다’ 즉, 외국어를 배우려면 차라리 영어를 좀 더 열심히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물음이었다. 그리고 여러가지 외국어를 배우면 언어가 ‘칵테일(뒤죽박죽 섞여버린다는 의미)’처럼 된다고 말했다. 이 학생은 답변을 하지 않았으나 옆에 있던 캄보디아 군의관들은( 이들은 자국의 학술용어 대부분이 프랑스어이기 때문에 영어보다는 불어에 더 친숙하다) 그 말에 반대하였다. 다양한 문화를 접하듯이 다양한 언어를 배우는 것은 좋다는 것이다.

이러한 ‘영어 제일주의’를 이곳 중국에서도 가끔은 느낄 수 있었다. 한번은 필자가 이곳 통역가와 이야기를 하다가 내가 ‘quilt(이불)’란 단어를 잘못 알아 듣자 ‘당신의 빈약한 영어때문에 유감스럽다’란 말을 나에게 했다. 그런데 평소에 그 통역가의 영어발음 또한 너무 딱딱해서 귀에 거슬린다고 생각했던 나의 입장에서는 황당함을 느낄 수 밖에 없었다. 그래서 나중에 그 사람 뿐만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되물어 주었다. ‘나는 한국사람이다. 내가 왜 영어를 반드시 잘 해야만 하는가? 내가 영국사람인가? 미국사람인가? 당신 또한 중국사람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영어를 잘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식민주의적 사고방식이다’라고.

나는 한국인이다. 모국어가 ‘영어’가 아닌 사람들에게 ‘유창한’ 영어를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상대방, 상대국가를 생각해 주지 않는 ‘획일적’ 사고 방식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좀 더 유연하고, 서로를 인정하는, 다양성에 대한 인정과 열린 마음 자세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중국에서의 한의학과 중의학

한의학과 중의학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본다. 서로의 ‘차이성’과 ‘독자성’을 존중해야 할 것이다.

때때로 중의학계는 한국의 ‘한의학’을 ‘중의학(Traditional Chinese Medicine:TCM)이라고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다. 한의학의 설명에 있어 중국의 ‘유산’이라고 생각하는 ‘한자’와 ‘한문’을 이용하고 ‘황제내경’, ‘상한론’, ‘본초강목’, ‘금원 사대가’ 등등을 ‘주요 고전’으로 설정하고 대부분의 한의학용어가 중의학과 같은 ‘한의학’은 결국 ‘중의학’이라고 부르는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같다’고 할 수 있는가? 때때로 이곳의 중의학계 인사들, 혹은 외국인 의사들이 이와 같은 질문을 하곤 한다. 그에 대한 나의 답변의 주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어떤 부분은 같고 어떤 부분은 다르다. 한의학은 보다 유심적이고 중의학은 보다 유물적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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