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수의 중국통신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7)-단하루동안의 홍콩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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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의 중국통신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7)-단하루동안의 홍콩방문
  • 승인 2004.04.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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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다른 홍콩과 광저우 문화
중국병원, 한약수액주사 임상적용중

사진설명 - 광저우시 제일군의대학의 조직해부학교실 주임교수로 재직중인 중국동포 박영걸 교수(71·오른쪽) 연구실에서 기념촬영. 왼쪽은 필자.

8. 이틀간의 홍콩 그리고 광저우 여행

지난 주에는 우연한 계기로 ‘홍콩’에 다녀오게 되었다. ‘홍콩’이란 발음은 ‘칸토니즈(중국 남부의 광동성 지역 방언으로 북경표준어와는 완전히 달라서 서로 알아들을 수가 없다)’식 발음으로 북경식으로 읽으면 ‘샹항’이 된다.

즉 같은 중국글자를 놓고 서로 다르게 읽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은 오히려 이 칸토니즈 즉 광동어가 현재 한국어의 한자발음과 비슷한 면이 있다.

숫자에서 ‘이’라고 말하면 북경표준어는 ‘1’을 의미하지만 광동어로는 한국과 같은 ‘2’를 의미한다.
이를 두고 역사가들은 한나라시대의 ‘한자 문화집단’이 그 당시 한반도 문화집단과 같은 ‘한자문화’를 가지고 있다가 ‘북방민족’이 남하하면서 양쯔강 아래로 넘어 오게 된 것이 바로 현재의 ‘광동어 문화집단’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꽤 설득력이 있는 이야기다. 사실 중국에서 ‘한나라, 당나라, 송나라, 명나라’는 ‘한족 주류’에 의한 나라였다면 ‘원나라, 청나라’ 등은 북방민족인 몽골족이나 만주족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였던 것이다.

‘중국’문화가 단일하게 통일된 문화가 아니란 것을 느낄 수 있는 단면이다. 얼핏들으면 광동어는 꼭 노래를 듣고 있는 것 같다.

단어와 단어가 술렁술렁 넘어가고 톤이 상당히 높다. 북경어가 좀 더 딱딱 끊어지는 면이 있는 반면에 광동어는 물흐르듯이 흘러온다.

때로 필자는 한국인과 거의 구별이 안가는 중국사람들이 서로 알아듣기 어려운 북경어와 광동어를 쓰고 있는 것을 보면서, 그것도 거의 같은 의미의 ‘한자’를 거의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과연 ‘언어’란 무엇인가를 생각해보곤 한다.

무엇이 한국사람과 북경사람, 그리고 광동사람 들을 ‘다르게’ 만들었을까.
전날 서울에서 홍콩에 도착한, 서울에서 소아전문한의원을 운영하고 있는 졸업동기생인 최혁용 원장으로부터 전화연락을 받고 주말인 토요일 아침 일찍 숙소를 출발하였다.

최원장은 역시 동기 한의사인 부인과 함께 은사이신 안덕균 교수님과 함께 ‘홍콩약재시장’ 방문을 목적으로 홍콩에 오게 된 것이다.

아침 7시 반 제일군의대학 ‘동문’에서 택시를 탔다. 그런데 말로만 듣던‘빙빙도는 택시’를 경험하게 된 것이다.

아마 필자가 ‘외국인’이란 걸 알았던 것 같다. ‘광저우 동역’에 가달라고 지도를 보여주면서까지 설명을 했는데 내 발음을 잘 못 알아듣겠다는 식으로 되물은 후에 출발을 했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보니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다. 분명 지도상으로는 남쪽으로 가야하는데 차가 자꾸만 서쪽으로 가고 있는 것이 아닌가. 처음에는 ‘빨리 가는 길이 있는 거겠지?’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느덧 기차시간은 다가오는데(아침 8시 20분 첫차를 타려했다) 택시가 공항쪽으로 가고 있는게 아닌가! (공항과 광저우 동역은 거의 반대방향이다)

이런 세상에!! 낮익은 공항건물들하며~ 갑자기 놀라움과 함께 황당해졌다.
기사에게 큰소리로 “광저우 동역!” 하면서 계속 뭐라 그러니깐 그제서야 “어? 기차역?” 하면서 U 턴한다.

이런 세상에. 오던 길을 다시 간 뒤에 차를 세운 곳은 ‘광저우 역’( 참고로 광저우에는 두개의 기차역이 있다. 공항쪽에 ‘광저우 역’ 그리고 반대편 동쪽에 ‘광저우 동역’)이었다.

계속되는 택시기사의 어처구니 없는 행동에 화가 났다. “북경어를 모르는가? 나는 ‘광저우 동역’에 가야 해!” 하고 소리치니까 한다는 대답이 자기는 북경어를 잘 모른단다.

세상에 이말을 믿어야 되는 건지…. 차를 다시 돌려 가까스로 광저우 동역에 도착했다. 20분거리도 안되는 곳을 한시간이 걸려서 온 것이다.

물론 요금도 3배가 넘게 나왔다. 미터기에 찍힌 요금은 102위엔, 그러나 이미 기사도 각오했다는 듯이 요금을 덜 내도 된다는 표정을 보였기에 65위엔을 주었다.

실제 평소요금은 30위엔 정도이다. 기사가 손해를 본 건지 안 본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그리고 그 택시기사가 고의로 그런건지 아님 정말 몰라서 그런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그러나 이 일을 통해 택시를 이용할 때는 반드시 종이에 목적지를 써서 보여주어야 한다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중국어가 완전히 익숙해 지기 전까지는.

어쨌든 오전 11시 발 광저우-홍콩 급행열차를 타고 1시에 홍콩에 도착했다. 도착역인 九龍(홍함)역에서 받은 홍콩의 첫인상은 상당히 깨끗했다.

역시 명성대로 깨끗하고 국제화 돼있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 곳곳의 ‘외국돈 환전소’ 그리고 공용어로 사용되는 영어가 익숙한 분위기도 그랬다.

물론 나중에 침사추이 역 등 홍콩 중심가를 걸으면서 느낀 ‘좁은 도로, 빽빽하게 솟은 건물, 그리고 높지만 낡은 빌딩에서 길위로 떨어지는 알 수 없는 물’ 등은 이런 신선한 느낌을 많이 줄어 들게 했다.
대신 사람들의 표정과 얼굴로부터 왠지 모를 ‘힘겨움’을 느꼈다면 필자 만의 느낌일까.

홍콩여행을 하고 온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화려한 홍콩’처럼 그렇게 환상적이고 낭만에 깃든 도시만은 아닌 것 같았다.
물론 ‘야간 유람선’을 타고 구경하는 ‘홍콩의 야경’을 보면 다른 생각이 들지도 모를 것이다.

지하철을 두번인가 갈아타고 (주말오후라 그런지 지하철에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홍콩의 지하철은 오래돼서 그런지 한국의 지하철보다 좁고 낮았다. 짐을 올려놓는 선반도 없었다) 최원장 일행이 묶고 있는 호텔을 찾아 갔다.

반가운 상봉과 그 동안의 이야기를 잠시 나눈 후 식사도 할 겸 중국 입국비자를 받기 위해 침사추이 역으로 이동했다.

주말이라 평소에 없던 ‘특행료(?)’를 홍콩현지의 한국인여행사에 내고 당일 비자를 받았다.
도중에 길에서 만난 ‘한국인 아주머니’의 도움으로 ‘부산식당’이라는 한국식당에 들렀다. 그 곳의 가격이 광저우 시내 한국식당의 2배 정도 되었다. 홍콩의 물가가 광저우보다 훨씬 비싼 것으로 보였다.

식사 후 여권을 찾아 전차를 이용해 홍콩의 북쪽 끝 역인 ‘로우역’에 갔다. 입국심사를 거쳐 중국 ‘본토’인 ‘심천’에 들어가는 것이었다.

심천에 들어서니 역시 홍콩과는 다른 ‘중국’의 ‘분위기’로 바뀜을 느꼈다. 곧바로 심천 기차역을 저녁 8시 10분에 출발해 광저우 동역에는 밤 9시 30분에 도착했다.

역에서 택시를 타고 군의대학 숙소에 도착하니 10시 반. 이곳 군의대학의 유일한 조선족 교수인 박영걸 교수(71·조직해부학)댁에 가서 환담을 갖고 뒤늦게 저녁식사를 했다

박 교수님의 환대로 피로가 풀리는 듯 하였다. 이분은 식민지시대 만주에서 태어나 하얼빈의대를 졸업하고 이곳 광저우 제일군의대학으로 옮겨 와 거의 30년여를 근무해 온 것이다.

대개의 교수들이 60세에 퇴직하는데 박 교수님은 연구능력을 인정받아 지금까지 재직하고 있는 ‘인정받은’ 조선족인 것이다.

밤 12시 반쯤 숙소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 후 다음 날 오전 박 교수님 연구실을 방문해 간단한 설명을 들은 뒤 ‘남방 병원’으로 갔다.

거기서 우리 일행을 맞이해준 ‘중의계 주임교수’로부터 대략적인 ‘중의계’ 병동 설명을 들었다(풍습병과 뇌질환에 관하여 중국 정부로부터 중점연구병원으로 지정받았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중의계 병동을 돌아보는 중간에 ‘한약 추출액’을 일반 양방의 수액과 섞어서 ‘체액주사’하고 있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오가피, 당귀 등 한국의 한의학계가 보기에 상당히 ‘실험적’인 방법으로 ‘한약’을 응용하고 있는 것이었다.
중의학계에서는 이런 식의 ‘한약 수액 주사’를 이미 오래 전부터 실행하였던 것이다.

점심때는 박교수님과 같이 숙소로 돌아와서 광저우 총영사 내외를 맞이하고 함께 이곳 ‘외훈계 주임’이 마련한 ‘연회’에 참석하여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식사 중간에 군의대학교 학교장도 잠시 와서 환영의 인사를 하였다(학교장은 계급이 준장으로 같은 날 북경에서 고위직 간부가 학교를 방문한 관계로 그들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후에는 광저우시의 ‘청평 중약재시장’을 방문하였고 저녁때는 다시 총영사의 식사초대를 받고 ‘가든호텔’ 옆에 있는 ‘제주도’란 한국식당에서 만찬을 가졌다.

이날 오후 일정에는 박교수님이 같이 해주셨고 남방병원 침구과 과장(왕 교수, 외국인교육 담당 교수)도 동행하였다. 식사를 마친 후 최 원장 일행은 고속버스 편으로 홍콩으로 돌아갔다. <계속>

필자 e-mail
hangl9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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