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수의 중국통신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4)-새로운 한의학의 패러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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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수의 중국통신 ‘역사는 어디로 흐르는가’(4)-새로운 한의학의 패러다임
  • 승인 2004.04.2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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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도그마가 아닌 ‘논리’에 근거해야
사상의학으로부터 ‘사상일심’론 발전
새로운 패러다임 - ‘인간의 동질성’이 핵심

사진설명 - 필자가 연수과정을 밟고 있는 ‘중국제일군의대학 외국인 연수부 건물’의 건물의 외부 모습(上)과 1층 현관내부 모습(下).

6. ‘테제와 안티테제의 변증법적 발전론’에서 ‘패러다임 전환론’으로
- ‘사상일심’론 - 새로운 한의학의 패러다임을 위하여

근대 학문의 발전에 있어서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헤겔이 발전시킨 ‘테제(thesis)와 안티테제(antithesis)’의 논리체계이다.

즉 어떠한 ‘지적 발전’은 어떤 ‘순서’를 통해서 진행되는 것이며 여기에는 어떠한 하나의 개념(테제 - thesis : 正)이 반대되는 개념(안티테제 - antithesis : 反)를 유발하고 이 서로 반대되는 두가지 개념은 새로운 ‘통합체’(合)로 종합되어서 또 하나의 개념(테제-thesis)이 되는 그러한 ‘正-反-合의 주기’가 반복된다는 설명이다.

이 개념은 변증법(dialectics)이라는 형태의 논리적 주장으로 발전되었으며 근대 학문발전의 강력한 원동력이 되어 왔다.

과학과 의학의 분야에서 이러한 ‘변증법’적인 시각으로 학문 발전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즉 서구유럽에서 르네상스 이전까지의 ‘과학과 의학’을 좀 더 ‘유심론’론적인 것으로 설정하면 이에 반대되는 즉 좀 더 ‘유물론’적인 ‘새로운’과학과 의학을 르네상스 이후의 과학-의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과학적이다’라고 생각하는 학문의 성격은 이러한 르네상스 이전의 학문에 반대되는 성격의, 어떠한 도그마나 절대적인 권위를 인정하지 않고 주로 실험과 검증으로서만이 그 진실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그러한 ‘학문’의 성질을 의미하는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한의학은 비과학적이다’라고 비판하는 것은 곧 ‘한의학’을 ‘르네상스이전의 학문’적 특징, 즉 ‘일종의 도그마와 같이 거의 종교화해서 반론을 수용하지 않는 절대적 신념’에 의해서만 이해될 수 있는, ‘믿음’을 학문 이해의 선행조건으로하는, 그러한 성질의 학문이라고 규정하는 것과 같을 것이다.

그러다면 과연 한의학은 그 학문의 발전선상에서 ‘반론’을 인정하지 않는가? 혹은 반론을 제기하는 것 조차도 엄격히 금지하는가?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모든 학문적 진리는, 그것이 종교가 아닌한, 당연히 ‘반론’의 제기를 수용한다고 생각한다.

제시된 ‘반론’에 대하여 끊임없이 고찰하고 토론하는 과정에서 그 학문의 생명력은 더욱 강해지는 것이며 또한 보다 발전적으로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단순히 몇 천년의 역사를 가졌다고 해서, 수많은 지역에서 실행되었다고 해서 ‘학문적 정당성과 진실성’을 가졌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한 논리라면 오랜 인류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봉건왕조의 체제’나 ‘신분계급의 차별제도’가 인류사의 정당성을 아직도 갖고 있고 계속 존속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인정되야 하는 것이다.

즉 과학과 의학(한의학도 물론 포함되는)은 계속되는 반론과 이의제기를 통하여 그 정당성과 과학성을 입증받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변증법적 사고의 논리라 할 수 있다.

이와는 조금 다르게 1960년대 초에 ‘토마스 쿤’(미국의 과학철학자)에 의해서 주창된 ‘패러다임(paradigm)’이론은 과학의 발전형태에 대해서 새로운 접근방법을 우리에게 제시해 준다.

여기서 말해지는 ‘패러다임’이란 ‘일정 조직구성원’ 사이의 공통된 ‘규범 혹은 기준’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의 사회, 단체, 조직을 이루는 구성원들이 서로간에 공유하고 있는 ‘사고의 체계, 인식의 방법, 문제해결의 방식’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토마스 쿤은 과학의 발전은 어떤 낮은 단계에서 다음의 높은 단계로, 차근차근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패러다임’과는 다른 새로운 ‘패러다임’이 출현하고 이렇게 서로 다른 ‘패러다임 들간’의 논쟁과 반박을 통하여 결국은 어느 한쪽의 패러다임이 더욱 사실과 부합하고 더욱 합리적인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것이 ‘공감’되면 다른 패러다임은 자연스럽게 소멸한다는 것이다.

즉 패러다임과 패러다임사이의 연결성은 좀 더 희박해진다는 것이다. 과학발전의 역사는 이런식으로, 즉 순차적으로 연결되어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에서 그와는 다른 ‘세계’로 곧바로 옮겨 간다는 것이다. 이것을 ‘패러다임 전환(paradigm shift)’이라 하였다.

그것은 또한 현재 주어지고 있는 ‘문제(현재의 존재를 위협하는 도전적 상황)’에 대하여 어떠한 ‘대응방식’이 가장 적합한가를 찾아내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즉 가장 적당하고 합리적인 ‘대응방식’을 만들어내는 논리체계, 더 나아가서는 과학이나 의학이론이 결국 그 사회구성원의 ‘다수’에 의해 ‘선택’을 받아서 주도적 ‘패러다임’이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과거의 다른 ‘패러다임’으로부터 미래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의 ‘전환(shift)’이라고 설명할 수 있는 것이다.

한의학이 현재 인류사회에 제기되고 있는 많은 ‘도전들’, 특히 질병과 보건위생의 측면에서, 보다 적절하고 합리적인 ‘대응책’과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 때 ‘주도적 패러다임’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관점에서 ‘한의학’을 새로이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즉 ‘문제해결의 관점’에서 한의학을 이해하고 논의, 실행해 나가는 ‘패러다임’적 사고방식이 현재 요구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역사적 가치의 보존’이나 ‘누적된 신뢰의 보호’에 연연하는 것은 다른 ‘패러다임’과의 논쟁에 있어 그 우열을 가려줄 사회구성원 들에게서 큰 호응을 받지 못할 것이다.

좀 더 합리적으로, 좀 더 사실에 근거하는 주장과 함께 좀 더 효과적인 대응책에 대해서 고민하는 것이 중요하게 대두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기준에 따라 기존의 논리와 사고체계에 대해서 고찰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한의학에는 오랜 세월동안 그 기본철학으로 ‘음양과 오행’이 대표적으로 설명되어져 왔다.
그리고 19세기 말에 ‘이제마’라는 뛰어난 학자에 의해 ‘사상의학’이라는 새로운 의학이 제안되었으며 100여년이 넘는 지금에 와서는 더욱더 많은 호응을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우선 이것은 우리 한의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그것도 강력한 생명력을 갖는, 패러다임’의 하나로 발전될 가능성을 보여준다.
사상의학은 기본적으로 인간을 ‘네가지의 상’으로 나눈다. 즉 대략 4가지로 ‘이질화-구분화’를 이룬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인간은 ‘같은 존재’라는 인식도 가지고 있다. ‘마음’ 곧 ‘심’은 만인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것이며 이것을 통하여 인간을 ‘동일화-통일화’하여 인식할 수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의미에서 ‘사상의학’에서 보여준 새로운 ‘패러다임’의 가능성을 ‘사상일심’이란 용어로 대표하고 싶다.

그리고 이것은 새로운 한의학적 패러다임의 기본적 인식체계-기본철학 중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상’론적 인식론을 통해서 ‘인간의 개별성을 파악’한다면 ‘일심’론적 인식론을 통해 ‘인간의 동질성을 파악’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동시에 ‘사상’론이 인간의 ‘음양론적 편차에 대한 인정’을 의미하는 것이라면 ‘일심’론은 인간에 있어 ‘음양론적 평형과 공존’에 대한 인식도 내포한다고 할 수 있다. <계속>

필자 e-mail
hangl98@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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