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통신(8·끝) - 채한(美 하바드大 의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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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통신(8·끝) - 채한(美 하바드大 의대 연구원)
  • 승인 2004.04.1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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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의학의 세계화를 위한 제언
자신감 갖고 서양의학과 대화해야
서양과학자 여전히 ‘동양적 관점’에 관심

■■■ 한의학의 세계화 ■■■

한국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함께 이야기하는 것은 정말 어려운 주제입니다. 그간 많은 선배 한의학자께서 여러모로 말씀하셨고, 정치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매우 복잡하게 물려 들어가는 한국 한의학계의 화두입니다.

이러한 주제를 들고 나온 것은, 한국 한의학을 전공했으면서도 현재 미국에서 서양의학, 서양과학을 매순간 몸으로 부딪히고 있는 필자로서는 항상 머릿속에 맴도는 空案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미국 생활 속에 느낀 것은, ‘보스턴 통신’의 서두에 꺼낸 이야기(泉中不在月)처럼, 생명현상에 대한 탐구가 한국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공통된 목적이라는 점에서 모든 이야기가 시작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혀 달라 보이는 두 의학 체계가 실제로 지향하는 바, 진짜 중요한 진리가 ‘인간의 이해’와 ‘생명 현상의 기전’이라면, ‘생명의 신비’를 추구한다는 점이 두 체계의 근본적인 공통점이 될 것이며, 두 체계의 장단점을 파악하는 것이 앞으로의 행보에 있어 나침반이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미국 학계에서 동양 의학에 접근하는 방식은, 철저하게 과학적인 방법 - 즉 서양의학의 연구에 사용되는 방법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학계의 접근 방식은 서양의학과 동양의학이 생명의 기전을 추구한다는 공통점을 이해하고 있으며, ‘생명 현상을 보는 관점’과 ‘의학 체계’가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수십년간 기존의 한의학 교육에서 받아들여져 왔던, ‘서양은 질병만 보지만, 동양은 질병과 인간을 함께 고려한다’ 혹은 ‘서양=물질, 동양=정신’이라는 논리는 이제 지나간 과거가 되었습니다.

가장 동양적이라고 생각되었던 風水(Fengshei), 젓가락(Chop -stick), 생선회(Sushi) 등은 이제 저들 사회의 젊은 엘리트가 되기 위한 필수 교양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대상 속에서, 한국 한의학이 지닌 현대 사회에서의 무한한 가능성을 가시화하기 위해 가장 중요하게 고려돼야 할 사항은, 한국 한의학에 대한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한국 한의학계가 노력하지 않는다면 ‘동양의학=중국의학’이 되어버린다는 것입니다.

첫째 서양의학과의 건설적인 대화가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한국 한의학의 범주와 내용을 ‘줄여야’ 할 것입니다.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 혹은 허준의 ‘동의보감’ 만으로도 한국 한의학은 충분히 과학적이며, 세계 수준에서의 무한한 임상적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육하원칙에 따라 검증될 수 없고, 상세한 기전을 논리적으로 서술할 수 없는 ‘가설 의학’, ‘추측 의학’이나, 한의학을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추상적’이고 ‘비과학적’인 기계나 검사 법들은 버려져야 합니다. 미국 혹은 한국의 ‘서양의학계’가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숨겨져 있는 이러한 ‘비논리적(unreasonable)인 부분’을 말하는 것이지, ‘현대 한의학(Modernized Traditional Korean Medicine)’ 자체에 대해서는 무한한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둘째로는, 한국 한의학 고유의 이론체계에 ‘집착’하여야 할 것입니다. ‘한약’에 집착한다면 ‘약장사’이고 ‘침구’에 집착한다면 ‘침쟁이’밖에 안되지만, 한의학 이론에 집착한다면 명의는 못되더라도 최소한 ‘한의학자’는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한국 한의학과 서양의학의 차이가 ‘생명 현상을 보는 관점’, ‘의학 체계’에 있는 것이지, 한자, 한글, 영어와 같은 사용 언어의 차이나, 주사기, 아스피린, acupuncture, herb, 청진기와 같은 의료 도구의 차이, 혹은 수천년 전부터 내려왔다는 것과 근대 이후에 성립된 것이라는 시간적 차이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서양 의학계가 가장 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생리적, 병리적 현상을 바라보는 ‘동양적 관점’이라는 한의학의 精髓입니다. 이러한 세계 조류 속에서는, 변하지 않는 ‘理’와 끊임없이 변화하는 ‘氣’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이 현대 한의사, 한의학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닌가 합니다. 오늘의 최신 치료법이 내일은 부정되는 현대 의학계의 현실 속에서 구태여 과거의 방법만을 고수할 필요는 없고, 한의학적 이론으로 설명될 수 있는 새로운 醫術을 개발해야 할 것입니다.

저는 이제 하버드에서 진행했던 그간의 연구를 일단락 짓고, Cleveland Clinic, Lerner Research Institute에서 새로이 시작하는 Center for Integrative Medicine에 Research Faculty로 옮겨갑니다. 이 연구 센터는 기존의 CAM Center들이 임상에만 주력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좀더 근본 원리와 기전에 충실한 기초학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지금까지의 연구 경험을 토대로, 한국 한의학이 지니고 있는 Individualized medicine, Preventive medicine으로서의 가능성을 현실화함으로써 ‘차세대 의학’은 곧 ‘한국 한의학’이라는 등식을 과감하게 제시하려 합니다.

미국의 CAM은 이제 막 시작되는 학문 분야로, 기초 한의학 분야는 중국세가 장악한 임상에서 볼 수 있는 한국인에 대한 보이지 않는 장벽이 아직은 없습니다. 한의학적 연구방향에 대한 멋있는 아이디어와 이를 추구하려는 열정만 있다면, 충분히 시도할 만한 ‘신세계’라는 인식을 갖습니다. <끝>

▷ 필 자 후 기 ◁
지금까지 8회에 걸친 ‘보스턴 통신’에 보여주신 뜨거운 관심에 감사 드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성원에 힘입어 앞으로 ‘Dr. Chae의 미주 통신’을 통해 연구 현장에서 접하게 되는 미국의 최신 서양의학과 대안상보의학(CAM)의 연구 동향을 이야기해 보고자 합니다.
필자홈페이지 : www.chaelab.org
필자이메일 : han@chaela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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