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턴 통신(6) - 채한(美 하바드大 의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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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스턴 통신(6) - 채한(美 하바드大 의대 연구원)
  • 승인 2004.04.19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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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精髓 빼고 모두 바꾸자
수퍼스타급 연구인력 양성해야
국제적 안목·감각 키워야

■■■ 한국 한의학의 미래상 ■■■

미국 땅에서 한국인의 자존심을 세워주는 것 중의 하나가 삼성(Samsung)의 휴대폰입니다. 지난해 뉴스위크가 선정한 ‘선물용으로 추천하고 싶은 히트상품’ 1위에 꼽혔다는데, 이곳 젊은이들 사이에서의 인기는 외국인인 저로서도 실감나는 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런 한국 대표기업 삼성의 20년 전의 모습은 지금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고 하더군요.

삼성의 변신을 주목하라

『변하지 않는 삼성그룹의 현실과 세기말적 변화에 대한 위기감에 등골이 오싹해질 때가 많았다. 이대로 가다가는 삼성그룹 전체가 사그라들 것 같은 절박한 심정이었다』 (이건희 에세이 - 생각 좀 하며 세상을 보자, 1997)

『국내 제일이라는 자만심에서 벗어나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현장에서 직접 체험해 보고, 세계 속에서 우리의 현재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를 피부로 느껴보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당시 국내 최고라고 하는 삼성이었지만 일부 제품을 제외하고는 국제시장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매장 한쪽 구석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거나, 이렇게 싼 물건도 있다는 본보기로 쓰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당시 삼성은 20년 동안 천배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알게 모르게 양 위주의 성장 관행이 조직 구석구석에 팽배해 있었습니다. 이대로 가다가는 삼성은 물론이고 사회 전체가 삼류로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빨리 質 위주로 변화하여 세계화와 정보화의 새로운 변화 흐름에 대응하지 않으면 큰일나겠다는 절박한 심정에서 위기의식을 가졌던 것입니다』 (월간조선, 2000년 7월호)

이건희 회장의 20년 전 ‘삼성’을 ‘한국 한의학’으로 바꾼다면, 지금의 한국 한의학계 현실에 대한 가장 적절한 표현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십년전 한약분쟁 때만 하더라도 기대도 할 수 없었던 - 국립 한의학연구소, 국립대 한의학과, 독립적인 한의약법, 독립된 한의약청 등 - 양적 성장도 있었지만 중국세가 모든 것을 장악하고 있는 냉엄한 세계 현실 속에서 한국 한의학의 위상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면서, 질적 성장, 세계화, 정보화의 새로운 흐름에 대응하지 못해 생기는 ‘오싹한’ 위기감도 마찬가지로 절박합니다.

실제로 외국에 나와서 동양의학에 대한 서구인들의 시각을 살펴보면, 한국 한의학은 그 정체성을 찾기 어려운 어정쩡한 위치에 놓여 있습니다.

많은 한국의 의사들이 대안상보의학을 배우러 미국으로 몰려오고 있습니다만, 정작 본인의 나라와 핏줄 속에 흐르고 있는 수천년의 의학 전통은 너무 쉽게 무시되고 있습니다.

위기는 기회

그러나 차거운 세계 조류를 몸으로 느끼면서 ‘위기는 기회’라는 심정으로 ‘아내와 자식만 빼고 다 바꾼다’면 20년 후의 한국 한의학의 미래상은 지금의 삼성과 같은 세계 일류의 차세대 의학을 제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첫째로 국제적 안목, 국제적 감각을 키워야 합니다. 중국이나 러시아에서 온 연구자들의 발표에 참석한 경험을 빌어 본다면, 발표 내용이 중요하다고 생각되면 영어 발음이나 형식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해 안되는 발음과 문법을 써가며 영어로 설명하는 러시안, 중국인, 한국인보다도 하나라도 더 알아듣고자 하는 ‘미국인’들이 더 힘들어하더군요.

세계 연구 동향을 파악하고 연구자들과의 인맥을 넓히기 위해서는 한번이라도 더 국제 토론과 학회 발표에 참가해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인맥은 연구결과에 대한 심도 있는 토론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둘째로는 국제급 연구 인력을 키워야 합니다. 한국 한의학을 전공하는 신진 연구자로서 능력만 있으면 연구와 생활을 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이런 Fellowship 프로그램을 통해 키워진 학계의 수퍼스타 (Icon) 한 사람이 해낼 수 있는 일은 과거 수십년간 이룬 것보다 더 클 수 있고, 이런 큰 일을 할 사람들은 바로 지금 한의과대학에 재학중인 학문 후속세대입니다.

예를 들어, Science, Nature, JAMA 혹은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한국 한의학자에 의한 한의학 논문이 단 한편이라도 실린다면, 현곡 윤길영 선생님 이래로 반세기간 수세(守勢) 속에서 힘들게 버텨온 ‘한의학의 과학화’ 논쟁은 공세(攻勢)로 역전될 것입니다.

셋째로는 세계 최고인 한 분야를 찾아내어 역량을 다해 키우는 것입니다. 새로운 ‘침의 기전’, ‘사상 의학’ 혹은 ‘신경과학’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지금까지 그 가치를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는 숨은 진주일 수도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한국 한의학의 모든 분야를 세계수준으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세계 최고가 되는 단 한 분야라도 있다면, 한국 한의학의 미래는 밝을 것입니다. 지금 학문적으로 가장 유행하고 있는 ‘신경과학(Neuroscience)’도 과거에는 관심 있는 몇몇 연구자들의 작은 모임에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세계 과학계의 주류될 수 있다

한국 국내의 제도적 문제나, 본인의 진료실에서 이루어지는 것들, 당장 눈앞에 보이는 문제들만으로도 한의계의 역량을 넘어설지 모릅니다.

지금 당장 필요시 되는 세계 수준의 한국 한의계 인물들이, 미래를 걱정할 만큼 여유롭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그러나, 당장 닥친 손익에만 연연하면서 쉬운 것만 찾다가는, 10년 후에는 세계화는 고사하고 풍전등화의 위급함을 실감하게 될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혼란과 어려움 속에서 모든 것을 버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도 부담스럽습니다.

그러나, 세계 속에서 한국 한의학이 사그러들 것 같은 절박한 심정에서 한국 한의학의 정수(精髓)를 제외한 모든 것을 바꾼다면, 수십년 후에는 세계 과학계를 풍미하는 주류가 될 것입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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