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역과 귀납, 그리고 한의학(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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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역과 귀납, 그리고 한의학(6)
  • 승인 2004.04.1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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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偏象人’이란 용어를 제안하며
“체질의학은 서양의학의 한 분과일 뿐이다”

조종진(창원 한국한의원)

Ⅸ. 한의학은 체질의학인가?

체질을 ‘개인차에 따른 특이성’이라 정의할 때 체질의학이라는 학문이 있다고 하면 체질에 관한 것을 연구하는 의학이라 규정할 수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알레르기를 연구한다고 하자. 우선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분화의 패러다임을 따르는 현대의학의 고전적 방법으로 알레르기를 이해하고 연구할 수 있다.

그러나 분화의 패러다임에 따르는 경우 ‘개인차’에 따른 특이성을 이해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으므로 개인차에 따른 알레르기를 온전한 대상으로 놓고 연구하고 치료하기가 곤란하게 된다.

알레르기가 개인차에 따라 다른 편차를 가지고 발현하게 되면 당연히 치료 기전이나 치료 약물을 달리해서 접근해야 될 것이다. 즉, 미분화 그대로인 관점 또는 통합화의 패러다임인 체질(constitution)의 관점에서 접근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체질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아직은 연구자들이 잘 알지 못한다.

따라서 다양한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을 검증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으로 조사하고 또 다양한 경우에 대한 통계를 분석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유전 정보 해독술의 발달에 힘입어 유전 정보를 분석하면 개인차에 대한 일정한 결과가 드러나지 않을까 기대하기도 한다. 이와 같이 연구 접근해 나가는 학문을 두고 정확한 의미에서 체질의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며 그것은 완성된 학문이 아니라 막 태동되어 움트기 시작한 학문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체질의학은 대충의 어림짐작으로 추리하는 소설이 아니라 정확한 이론과 분석에 따라 합리적으로 결과를 도출해 내야 하는 과학(science)이라야 할 것이고 그것은 귀납의 원리를 따르게 된다.

그러면 한의학은 이와 같이 파악되고 이해되는 체질의학에 해당하는가?
한국의 한의학은 황제내경의 소문·영추에서 연원하여 허준의 동의보감으로 집대성되고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는 6년제 대학교육을 통하여 한의사라는 한의학의 전문가가 양성되어 배출된다. 한의사는 말하자면 내경의학의 후예이자 허준의학의 후예이고 이제마의학의 후예로서 한의학의 정통을 모두 물려받은 전문 의료인으로서 내경이나 보감, 그리고 수세보원의 본질을 정확히 꿰뚫는 안목을 가진 최고의 권위로서 단순 치료술사가 아님이 분명하다. 여기서 우리는 ‘최고의 권위를 가진 전문 의료인’과 ‘단순 치료술사’를 극명하게 대비하여 기술하려는 나의 의도에 대하여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앞서 한의학은 연역의 방법으로 연구와 임상을 전개해 나간다는 점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그러나 연역의 방법으로 연구를 해 나간다고 하더라도 그 결과물에 대하여는 귀납의 방법을 도입하여 응용할 수 있다.

인삼에서 추출한 엑기스를 외과 수술 후 회복단계에 있는 환자에게 투여를 하였더니 일정한 비율로 호전반응을 보이는 통계를 얻을 수 있다.

이 통계에 근거하여 호전반응을 보이는 환자의 유형을 분석하고 인삼 엑기스의 성분을 분석하여 유효성분을 동정하여 일정한 치료제제로 사용하게 된다면 이는 귀납적 방법으로 접근한 것이 된다.

한의사가 인삼을 사용할 때 이와 같은 엑기스의 유효성분 통계 자료에 근거하여 투약할 경우가 있다. 이 때는 한의사는 귀납에 의한 의술을 전개한 것이다.

이제 인삼의 효능을 본초 약성가에서 제시하는 기미론을 기초로 환자의 상태를 변증하고 인삼의 기미론적 근거인 溫凉補瀉, 寒熱虛實, 升降浮沈과 같은 원리에 투영하여 적합한 용량과 가감을 시행하여 투여하였다면 이것은 연역의 방법으로 의술을 펼친 것이다.

한의사는 연역과 귀납을 모두 시행할 수 있다. 그러나 귀납의 원리밖에 모르는 의사라면 神·聖·工·巧로 가를 때의 공의나 교의에 해당한다. 즉, 위에서 말한 ‘단순 치료술사’에 불과하다. 연역의 원리에 입각하여 귀납의 원리도 잘 구사할 수 있는 의사라면 신이나 성에 해당하는 의사로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전문 의료인’이라 할 수 있다.

쉬운 예로 마황은 에페드린을 주성분으로 하고 있다. 한의학 서적에 있는 마황을 에페드린인 줄로만 인식하고 처방을 구성하는 부류가 있는데 한약조제약사가 바로 그들이다.

지난 한약분쟁의 와중에서 한의사가 그들의 자의적인 한약사용을 극구 반대하고 부득이하다면 극히 제한된 범주의 한약취급만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한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 에페드린이 비록 마황의 주성분이어서 일정한 범위에서 유사한 작용을 나타낸다고 할지라도 에페드린에 관한 지식으로는 한의학의 마황을 이해하지 못한다. 즉, 그들이 마황을 귀납의 원리로 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단순 기술자라는 것이다.

단순 기술자로서는 자신의 지식 범주 밖의 사항에 대하여 그릇된 판단을 내릴 수도 있으며 또한 자신들의 이해의 범주를 넘어선 정보에 대한 오해를 일삼게 되면 일반을 오도할 수도 있고 실제로도 그들에 잘못된 정보가 올바른 정보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환자를 임상에서 자주 접할 수 있다.

이러한 결과 그들의 오류는 다수의 무지한 일반인의 건강과 생명에 심각한 위해를 가할 가능성이 많은 것이므로 따라서 그들의 한약취급이 실로 부당하다는 것이 한의사측이 제시하는 주장의 당위성이었던 것이다.

즉, 약사가 되는 과정에서 한약관련 과목을 공부하였다 하더라도 귀납적 방법에 관한 지식이 전부이고 유효성분과 같은 귀납적으로 정리된 정보에 관하여 숙지하는 정도일 뿐, 한약의 기미 약성론과 같은 연역적 접근 방법에 대하여는 전혀 이해가 없다는 점이 약사의 임의적인 한약 취급 불가의 결정적 이유가 된 것이다.

연역의 방법과 귀납의 방법은 대상에 접근의 방법에 대한 구분이다. 접근의 방법이 다르므로 대상을 기술하는 언어도 서로 다른 범주를 가지게 된다. 일반적으로 귀납의 방법에 의하여 대상을 기술하는 언어는 과학(science)의 언어라 하고 연역의 방법에 의하여 대상을 기술하는 언어는 取象(취상)의 언어라 하여 크게 대별할 수 있다.

인간을 과학의 언어로 분석하면 정신과 육체(물질)로 분석해 나가게 되고 취상의 언어로 분석하면 마음과 몸의 심신으로 분석해 나가게 된다.

즉, 정신과 육체는 귀납에 의한 것이고 심신은 연역에 의한 것이라 보면 귀납이나 연역에 따른 정교한 개념으로 세분할 수 있다. 육체는 조직 해부학의 대상이 되는 인간의 신체라면 심신에서 말하는 몸은 臟象論의 대상이 되는 인간의 신체가 된다. 즉, 해부학은 귀납적으로 연구해 나가는 학문으로서 과학의 언어로 기술되어 있고 장상론은 연역의 방법으로 연구해 나가는 학문으로서 취상의 언어로 기술되어 있다.

여기서 체질의학을 생각해 보자. 체질의학은 개인차에 따른 특이성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귀납의 방법으로 연구를 전개해 나가는 학문이며 연구 방법으로 보거나 학문의 기원으로나 보아도 서양의학의 한 분과의학에 속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한의학은 취상의 언어를 통하여 심신을 연구하는 것을 본질 영역으로 하는 학문인데 반하여 체질의학은 과학의 언어를 통하여 정신과 육체를 대상으로 연구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늘의 현실을 보면 한의학의 심신의 범주에 속하는 취상의 언어에 단순히 ‘-체질’이란 접미어를 붙여 놓고 그것을 체질의학이라 오해하는 사례를 일상으로 접할 수 있다. 한성체질, 습성체질, 열성체질, 담음체질, 습담체질, 비습체질 등, 심지어 중풍체질개선이란 말이 사용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중풍체질도 있는가 의아할 정도로 언어의 오염이 심하다.

물론 이러한 체질의 분류가 불가능하지 않으며 그렇게 분류해 놓고 그러한 분야를 연구해 나가면 안될 것도 없다. 그러나 우선 한성이니 습성이니 열성이니 담음이니 하는 용어는 결코 체질이란 접미어와 동시에 사용될 언어가 아니다.

이 용어들은 취상된 용어로서 과학의 용어가 아니다. 그러므로 귀납으로 연구해야 제대로 될 체질 연구가 연역의 방법으로 연구되어 들어가게 되므로 혼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본질적 모순에 봉착하는 것이다. 알레르기 체질이란 분류나 아토피 체질이란 분류는 매우 올바르다. 왜냐하면 알레르기나 아토피라는 용어가 과학의 용어고 그것을 귀납적으로 연구해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精·氣·神·血이나 風·寒·暑·濕·燥·火나 진액·담음과 같은 취상의 언어로 된 영역을 어떻게 귀납적으로 연구해 나갈 것인가? 취상으로 파악이 가능한 오운과 육기를 어떤 과학으로 풀어나가려고 그렇게 용을 쓰는가?

볼수록 가관인 것이, 급기야는 사상의학의 태양인, 소양인, 태음인, 소음인의 사상인을 태양체질, 소양체질, 태음체질, 소음체질이라 하며 사상체질이란 정체불명의 체질이론을 펼치는 한심한 작태가 그것도 최고의 전문가를 길러내는 교육기관인 상아탑에서 교육자들에 의하여 솔선 자행되고 있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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