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역과 귀납, 그리고 한의학(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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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역과 귀납, 그리고 한의학(5)
  • 승인 2004.04.1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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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진(창원 한국한의원)

Ⅷ. 체질이란 용어에 대한 오해의 실제

홍순용은 『사상진료보원』에서 한의학의 원전이자 영원한 바이블 격인 황제내경이란 책에 체질이론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그렇게 근거를 찾아가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보지만, 일단은 무조건 황제내경에 근거를 찾고,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어 보이는 구절 하나라도 찾으면 앞뒤 없이 마구 끌어다 붙이는 자세도 하나의 병폐가 아닐까? 한의학을 하는 학계의 씁쓸한 단면의 하나라 생각한다.

실제, 황제내경의 二十五人(인간이 천태만상이 아니고 5×5의 스물 다섯 형태로 나뉜다는 이론, 五形之人-木形之人, 火形之人, 土形之人, 金形之人, 水形之人-에 대해 각각 그 五色에 따라 다시 분류함)이나 五態之人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말하는 ‘체질’이란 문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체질이란 말의 기원이나 그 근거가 되는 것도 아니라 본다. 그러나 대부분 체질의 기원을 거기서 끌어오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처럼 생각하게 되는 병폐가 있다. 위의 두 출전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별 생각 없이 써오는 ‘체질’이란 말의 출전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우리가 규명하려고 하는 체질에 대한 기원으로는 인정하지 않으며 또 인용하지도 않는다.

또한 서대현(수경한의원)에 따르면, 체질이란 용어의 자전적 정의로는 體格을 의미한다고 한다. 그는 즉, 체질이란 용어의 선례는 중국 晉書에 나타나나 이는 보편적 한자어의 용법의 소수 사용례에 속하는 것이며, 사용되는 경우도 體格의미의 차용일 뿐이라고 하였다. 말하자면 체격이란 것을 나타내는 용어의 하나로서 체질이란 말을 혼용해서 사용한 용례가 진서라는 문헌에 있는데 어떤 한 학자가 다행히 이 용례를 찾아냈다. 그러나 그 학자는 단어의 의미를 무시한 채 같은 글자가 씌어 있다는 이유만으로 이 부분을 인용하며 체질이란 말의 기원을 발견했다고 한다면 이는 견강부회가 되고 결국 진실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서대현에 따르면, 한의학 내에서 체질이란 말이 사용된 것은 중국 청대 徐大椿이 氣體와 體質을 합쳐서 사용하였고, 葉天士(섭천사)가 비로소 체질이란 말을 사용한 것을 확인할 수 있으나 개념적으로 정리되어 있지는 않다고 한다. 그러므로 서대춘이나 섭천사의 경우에서도 우리가 생각하는 체질이란 개념어를 사용한 것은 아니라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체질’이란 용어의 유래에 대하여 박찬국은『贓象學』 ‘제5장 체질’에서, “고대한의학에 체질이란 용어는 없었다. ... 淸代 후기에 비로소 ‘체질’이란 용어가 의학서적(兪根初, 『通俗傷寒論』)에 나타난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근래 출판된 책으로서 이 『贓象學(1992)』은 한 章을 할애하여 체질을 논한 보기 드문 특이한 책이다. 이 책은 20세기라는 비교적 근세에 등장한 체질의 모호한 개념을 마치 내경 시대 이후 수천 년 동안에 걸쳐 지속적으로 논의되어온 문제인양 취급하는 이상한 시각을 가지고 있다. 저자 스스로도 첫 머리에 ‘체질’이란 단어가 淸대 후기의 서적에서 비로소 보인다고 하면서도, 굳이 〈황제내경〉이래로 〈千金要方 -唐-〉, 〈婦人良方 -宋-〉, 〈望診遵經 -淸-〉 등과 같은 후대의 서적을 언급하며 고집스레 체질을 논한다. 그런데, 최초로 체질을 언급한 兪根初의 『통속상한론』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그 저작시기를 명백히 하지 않고 모호하게 처리하고 있다. 단지, ‘청대 후기’라고만 소개한다. 홍원식의 『중국의학사』를 보면, 兪根初의 『통속상한론』은 그 책의 가장 끝부분에 간략히 소개되어 있다. 「‘통속상한론’은 원래 乾隆時(청, 高宗, 1736~1795) 兪根初의 所著로, 何秀山이 選按하고, 1916년 何廉臣(何秀山의 孫)이 정리하여 紹興醫藥月報에 발표했고, 완성을 보지 못하고 何씨가 죽자, 후에 曹炳章이 이어서 완성하였다.

현재의 通行本은 周榮薺의 重訂을 거친 것이다.」『중국의학사』의 내용에 의하면 『통속상한론』의 원 저술시기는 청대 후기가 아니라 청대 중기다. 그런데 완성되지 못한 채 발표되지 않고 있었고 최종 완성본이 발표된 시기는 20세기 초로서 최근세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이는 중국의 경우라 하더라도 20세기로 넘어와서야 체질이란 말이 세상에 나왔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그러나 그 체질이란 단어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러한 의미를 가지고 사용되었는지를 박찬국의 『장상학』은 자세히 밝히고 있지 않다. 즉, 『贓象學』의 경우, 兪根初의 체질의 개념이 어떤 점에서 의의가 있는지 論究하지 않은 채 그를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학술적인 비중이 없고 인용의 가치가 없다. 박찬국은 무엇 때문에 잘 알려지지도 않은 兪根初의 『통속상한론』을 인용하여 체질이란 말의 기원을 고찰하려고 한 것인지 도무지 의아할 뿐이다. 아무튼 그가 지은 『贓象學』의 보고가 정확하다면 兪根初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체질이란 말을 쓰지 않았음을 입증한 것이라 볼 수 있고 그렇다면 한의학 내부에서는 체질이란 용어나 개념을 사용해 오지 않았음이 자명하게 드러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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