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역과 귀납, 그리고 한의학(4)
상태바
연역과 귀납, 그리고 한의학(4)
  • 승인 2004.04.19 14: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조종진(창원 한국한의원)

Ⅶ. 체질은 무엇인가 (전회에 이어)

파스칼 세계대백과사전에서 체질의 현대적 개념을 간략히 살펴보자.
「체질(constitution)은 현대의학에서 말하는 증후군(syndrom e)·증(症symptom)·병(disease)으로 유형화되어 있는 것과는 착안점이 본질적으로 다르다.

증·병·증후군 등의 유형은 장기·조직·세포에 나타난 증상의 특징에 따라 분류한 것이 많지만, 체질의 경우는 장기·조직·세포까지 세분화하지 않고 개체가 지니고 있는 전체적인 경향이나 성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즉, 증·병·증후군은 근대 과학의 방법론이라고도 할 수 있는 분화의 패러다임을 따르고 있고, 체질은 미분화인 그대로 또는 통합화의 패러다임에 속하는 개념이다.

체질의 대부분은 유전적인 것으로 생각되며 이들을 유전체질이라고 한다. 유전적으로 제약되지 않는 비유전 체질은 환경적 요인의 영향이 큰 것으로 생각되고 있다.

체질은 신체적인 면뿐만 아니라 정신적인 측면으로도 파악된다.

E. 크레치머는 순환성기질·분열성기질·점착성기질 등으로 분류하였고 세장형 체질은 분열성기질에, 비만형 체질은 순환성기질에, 투사형 체질은 점착성기질과 각각 친화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체질은 과학적 사고법으로 친숙한 분화적 사고로 대처할 것이 아니라 통합적 사고로 대처해야만 혼란을 피할 수 있다는 데 유의해야 한다.」

여기서 ‘체질은 통합적 사고로 대처해야 혼란을 피할 수 있다’라는 언급에 유의하여 보면 이 말은 바로 한의학의 특성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서양의학 전반은 분화의 패러다임으로서 서양의학의 입장에서 볼 때 미분화의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에 속하는 체질은 오히려 서양의학적이라기 보다는 한의학적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에 통합적 패러다임인 전일성을 중시하는 한의학의 입장에서 본다면 한의학은 자신의 무한의 통합적인 특질을 체질이란 개념어를 사용하여 스스로를 한정하는 것은 동어반복의 번삽한 일일뿐이며 굳이 그런 새로운 용어로써 한의학의 무한한 전일적 통합성을 좁은 개념 속에 제한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즉, 체질이란 용어를 만들어 자신을 수식해야 할 필요성이 없으므로 한의학에는 체질이란 용어가 사용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서 서양문물과 함께 서양의학이 도래하여 한의학이 극심하게 위축되어 한의사는 의생이라는 굴욕적인 신분으로 격하되고 한의학이 말살될 위기에 처한 일제치하의 조헌영의 시대를 생각하면 상황이 다르다.

그는 영문학을 전공한 정치가의 입장이었지만 한의학을 살려내기 위해 『통속한의학원론』을 위시하여 학문적으로 전혀 손색이 없는 한의학에 관한 다수의 서적을 저술하였다.

그는 혼신의 노력으로 한의학의 도태를 막아내고자 한 것이다. 이때 그가 착안한 점이 서구에서 번역된 체질이란 관점으로서 ‘개인차’라는 개념이다. 여기에 『통속한의학원론』에서 제기한 조헌영의 생각을 한번 살펴보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서양의학은 劃一主義를 취하고, 동양의학은 應變主義를 취한다.
西醫도 물론 개인의 特異質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나, 병리학이란 독립된 부분을 정하여 질병을 관찰할 때 항상 어떤 보편타당적·병리적 법칙의 틀 안에 집어넣으려고 하며, 치료에 있어서도 보편타당적 방법을 정하려고 하는 것이 사실이다. …중략…이 체질을 따라서 소화기병에 잘 걸리는 사람도 있고, 호흡기병이 발생되기 쉬운 사람도 있으며, 소화기병에도 양증형·음증형이 있고 호흡기병에도 양증형·음증형이 구분된다.

이런 것을 ‘個人差’라고 해서 질병 치료상, 영양 섭취상 대단히 필요한 것이다. …중략…이 체질과 개인차를 명확히 구분하는 것이 동양 의학의 특징이니, 그 체질과 병증의 差別相이 각 방면의 생활 현상에도 나타나므로 그것을 정밀히 관찰하여 그 개인차를 기초로 한 치료법과 강장법을 정하는 것이다. ...중략…서양의학에 있어서는 병명이 결정되어야 치료를 하는 것이다.

진단의 목적은 병명의 결정에 있으며, …중략…한의학에 있어서는 병명을 몰라도 치료에 하등의 구애가 없건마는 근래는 더우기 서양의학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일반 병자들이 모두 병명을 알고 싶어서 그 설명을 요구하게 되며, 그 요구에 의하여 漢醫들도 대개 병명을 제시하게 된다. …병명에 의하여 치료방법이 고정된 의학은 ‘병자 개개의 특질’을 沒却할 우려가 있다.」

조헌영이 강조한 ‘개인차’라는 개념이 말하자면 체질이란 관점이고 ‘병자 개개의 특질’인 것으로서 이야말로 조헌영이 찾던 한의학의 특성을 단적으로 드러내 주기에 가장 마땅한 개념어였던 것이다.

즉, 서양의학으로는 접근이 용이하지 않은 알레르기 현상과 같은 체질적인 특성이 한의학으로는 오히려 접근이 용이하고 치료 결과도 서양의학에 비해 월등한 성적을 보이게 되는데 이것은 바로 한의학이 병자 개개의 특질을 고려하는 체질이론의 특성이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따라서 한의학은 말살되어서는 안될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하는 점을 극명하게 부각시키고자 노력하였던 것이며 그 과정에 체질이란 말이 보편성을 획득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나는 체질에 대하여 그가 인식하고 있는 이 개념이야말로 일반적으로 한국에서 말해지고 있는 체질이란 말에 대한 정확한 뜻이 된다고 생각한다. <계속>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