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역과 귀납, 그리고 한의학(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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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역과 귀납, 그리고 한의학(3)
  • 승인 2004.04.1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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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종진(창원 한국한의원)

Ⅵ. 사상의학과 체질학설

사상의학은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연역의 방법으로 연구하는 학문이다. 체질을 중시하여 연구하는 분야를 체질학설이라 한다면 체질학설은 귀납의 방법으로 연구하는 분야가 될 것이다. 저명한 학자들조차 사상의학이 체질학설인 것으로 착각을 해서 태양인, 소양인, 태음인, 소음인이라야 할 명칭을 각각 태양체질, 소양체질, 태음체질, 소음체질로 잘못 지칭하고 있다면 문제는 매우 심각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마는 사상의학의 원전인 동의수세보원에서 체질이란 개념으로 사상인에 접근해 들어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제마의 사상의학에 따른 사상인을 지칭할 때는 반드시 태양인이면 태양인이라 칭해야 하며 태양인을 두고 태양체질이라 칭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 말은 즉, 태양체질, 소양체질, 태음체질, 소음체질을 거론하는 체질학설은 이제마의 사상의학과는 무관한 전혀 별개인 체질이론으로 전락해버린다는 뜻이다. 이럴 때 사상체질이론은 결국 연역의 방법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귀납의 방법으로 분류되어 나오는 것이 되며 그것은 분류하는 관찰자의 임의적인 분류에 좌우되므로 사상체질의 고유성은 입증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체질학설을 쫓아 사상의학을 체질이론의 범주로 한정하여 사상인이 아니라 사상체질에 관한 것을 추구하게 되면 사상의학의 고유한 연역의 틀은 붕괴되어버릴 수밖에 없다. 그러면 이제는 귀납의 방법으로 체질을 도출해 내어 사상이라는 틀에 강제로 끼워 맞추지 않으면 안 되는 모순된 상황에 처하게된다.

이러한 상황에 봉착하면 어쩔 수 없이 통계처리와 같은 갖은 귀납적 방법이 동원될 수밖에 없는 것이며 이미 그로써 사상체질의 체질이론은 일정한 한계를 드러내게 되어버리는 것이다. 따라서 이와 같은 체질학설에 입각한다면 태양체질 몇%, 소양체질 몇%인 이해 못할 짬뽕체질도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마의 사상의학에 의거하여 사상인을 판정하는 경우라면 명백히 태양인이면 태양인인 것이지, 몇%의 태양인에 몇%의 소양인인 합성사상인은 존재할 수가 없다.

이러한 까닭에 사상체질의 판정이 판정자의 통계처리 수준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로 나올 수밖에 없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함에도 사상을 하는 전문가라 자처하는 이들은 귀납으로 전개되는 영역에 연역의 규격화를 적용하여 스스로 혼란에 빠져들고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 자가당착의 모순이 바로 오늘 우리가 처해있는 체질 논의의 왜곡된 현실을 투영하고 있는 정확한 모습이 아니고 무엇인가?

Ⅶ. 체질은 무엇인가

동의보감은 조선 선조 시대에 완성된 대표적인 한의학 서적이다. 간행된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특히 한국의 한의사에게는, 최고의 교과서이자 임상 지침서라는 두 가지 역할을 충분히 해내고 있다. 대학교육 제도를 통하여 한의사를 양성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500여 년을 내려오면서 허준의 동의보감은 한국의 한의사들이 자신의 한의학 학문과 임상을 펼 때 중요한 지침이자 기준이 된다. 그러나 그 동의보감에도 체질이란 용어가 없고 그러한 유사한 개념조차도 찾아볼 수가 없다. 이 사실은 즉, 체질이란 용어가 앞에서도 살펴본 바와 같이 수 천년을 이어온 전통의 한의학과는 아무런 상관성이 없던 말임을 증명하는 것이며 더구나 한의계 내에서도 체질이란 모호한 개념에 기초하여 한의학 학술을 논해야 할 하등의 이유가 없음을 말해준다.

그런데 1930년대에 출간된 대표적 한의학 입문서인 조헌영의 『통속한의학원론』에서 ‘병자 개개의 특질’이라며 체질이란 용어를 소개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체질에 관한 최초의 언급인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통속한의학원론』이 소개하는 체질이란 용어의 개념을 보면 이제마의 사상의학과 같은 한의학 내의 특정 학설을 설명하기 위해 체질이란 말을 언급하고 있지 않다. 저자인 조헌영은 한의학과 서양의학을 두루 섭렵한 입장이었고 제헌국회의원을 지낸 정치가로서 당시의 사회에서는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뛰어난 인재였다. 당시 서양의학이 밀물 듯 밀어닥쳐 한의학이 날로 위축되어 가는 위기적 상황임을 절감한 저자는 서양의학과는 완전히 차별되는 한의학의 특징을 내세워 한의학을 보호할 필요가 있음을 절감하였다. 그는 주요 일간지에 여러 차례에 걸쳐 서양의학자와 지상대담을 펼칠 만큼 탁월한 이론가였고 한의학 옹호론자였다. 그의 대표작 『통속한의학원론』은 당시의 식자라면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언어로 난해한 한의학의 개념을 쉬운 현대적인 관점으로 풀어놓은 역작으로 한의학의 저변을 넓히는데 지대한 기여를 하였다. 저자가 『통속한의학원론』의 전편을 통하여 줄곧 부각시켜 내려고 하는 측면이 바로 한의학의 전일적 특성이 갖는 장점에 관한 것이다. 조헌영은 한의학에 내재한 이러한 전일적 특성은 서양의학의 국소적이고 병소적인 특성이 갖는 제한적인 장점과는 비교할 수 없는 우월한 특성이므로 이를 하나의 특별한 용어로 개념화하여 널리 부각시키려 하였다.

나는 체질이란 용어가 서양의학이 일본을 통하여 동양권으로 진입하면서 constitution이란 용어가 번역될 때 조어된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 이는 philosophy가 일본에 의하여 철학이란 신조어로 번역된 것과 같은 경우에 속한다. 따라서 체질이란 말은 한자문명권의 용어가 아니라 서구문명권의 용어다. 근자에 들어 체질이란 용어가 세간에 광범하게 붐을 조성하자 체질이란 낱말의 기원이나 사용례를 한자문명권 내에서 찾고자 시도가 많이 있었으나 아무도 명쾌하게 이를 밝혀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바로 체질이란 단어가 일본에 의해 만들어진 신조어라는 사실을 간과하였기 때문이다. 20세기 이전으로 거슬러 한자문명권내에서 철학이란 단어의 기원과 용례를 찾아본다고 할 때 철학이란 단어를 사용한 경우를 몇 가지 발견해 낼 수는 있겠지만 그 단어 속에 우리가 사용하는 philosophy에 해당하는 철학과 연관을 지을 수 있는 개념은 없다. 마찬가지로 체질이란 단어를 과거로 거슬러 찾아 볼 수는 있겠지만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constitution의 체질이란 개념은 없는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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