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역과 귀납, 그리고 한의학(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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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역과 귀납, 그리고 한의학(1)
  • 승인 2004.04.19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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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偏象人'이란 용어를 제안하며

최근 한 방송사의 ‘체질 믿어도 되나?’가 방송된 후 일반인 사이에서 ‘사상체질’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AKOM 게시판에도 이른바 사상과 체질에 대한 논쟁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본지는 한의학 발전을 위한 건전한 토론문화의 장을 마련한다는 차원에서 문제를 제기한 조종진 원장의 기고를 수회로 나누어 원문대로 싣는다. 이 기고의 논조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도 있음을 밝혀 둔다. <편집자 주>


Ⅰ. 갑·을·병의 코끼리 연구

우리가 지금 코끼리를 연구하고 있다고 하자. 코끼리가 웬만큼 크므로 몸통 전체를 한눈에 연구를 하기는 요령부득의 형편이다. 할 수 없이 갑이란 자는 코끼리 귀를 가지고 코끼리를 분석하기로 한다. 을이란 자는 뒷다리를 가지고 들여다볼 작정을 하고 있고, 병이란 자는 코끼리 상아를 만지작거리면서 아프리카니 인도니 하고 있다. 이렇게 제각각 한 다리씩 붙잡고 코끼리를 두고 왈가왈부하는데, 갑·을·병이 제각각 말이 서로 맞지 않는다. 갑은 갑대로 자기가 연구한 내용이 옳고 을은 을대로, 병은 병대로 제각각 자기의 것이 옳다고 우긴다. 사태가 이렇게 되니 코끼리 코가 코끼리인지 코끼리 귀가 코끼리인지 아니면 뒷다리가 코끼리인지 갈피를 못 잡을 지경이 되어 버렸다.

갑은 귀의 생김새로 분석한다고 한다. 귀가 둥글넓적하면 태음코끼리고 좁게 늘어지면 소양코끼리가 분명하다고 우기는 것이다. 을이 나서며 말한다. 뒷다리가 늘씬하게 뻗은 놈은 태양코끼리가 틀림없고 짜리몽탕한 놈은 소음코끼리가 틀림없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드디어 병이 나선다. 상아가 길쭉 날씬하면 태양코끼리거나 소양코끼리가 분명하고 짧달막하거나 몽탕 하면 분명 소음코끼리 아니면 태음코끼리라며 기염을 토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보고 있는 코끼리는 코가 길고 귀가 둥글넓적하고 상아가 배배꼬여있고 뒷다리가 늘씬하게 뻗었는데, 갑·을·병의 판정에 따르면 제각기 딴판이어서 도무지 들어맞지 않는 상황이다.

Ⅱ. 연역적 방법

그러나 사태가 이럼에도 갑·을·병의 경우 대체로 비슷한 기준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가령 크기로 말하면 큰 것과 작은 것을 구분하여 큰 것은 양이고 작은 것은 음이라 한다든지 하는, 매우 원론적인 의견에는 거의 비슷하여 서로가 동의한다. 큰 것은 다시 더 큰 것과 보통 큰 것을 구분할 수 있고 작은 것도 아주 작은 것과 보통 작은 것으로 구분할 수 있으므로 이렇게 두 번 갈라서 모두 네 가지로 구분한다면 이름하여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이라 하는 것도 서로가 다를 바 없다. 크기가 아니라 무게로 구분한다고 해도 무거운 것, 가벼운 것, 더 무거운 것, 아주 가벼운 것으로 네 등분해서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이라 하는 데도 서로 같다. 크기나 무게 뿐 아니라 어떠한 것을 가지고도 넷으로 구분한다면 이러한 원칙을 적용한다. 이런 원칙을 이름하여 ‘사상’이라 한 것이고 이 ‘사상’을 가지고 사물의 분류에 적용할 수 있게 된다. 이때 코끼리를 분석한다고 할 때 코끼리 전체를 두고 분석하기는 너무나 복잡하다. 그래서 갑은 귀를 분석하여 그 결과로 코끼리 전체를 유추해 보기로 한다. 을은 코끼리의 뒷다리를 가지고 분석하면 좋겠다 생각한 것이고 병은 상아를 가지고 분석하려한다. 이렇게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의 기준을 귀와 뒷다리와 상아에 적용해서 나온 결과를 코끼리라는 전체에 갖다 맞춰 보게 된다. 갑은 코끼리의 귀에 관한 한 단연코 전문가로서 귀의 크기나 모양 그리고 세세한 특징까지 감안하여 매우 엄밀하게 사상을 판정할 수 있다고 한다. 을은 을대로 병은 병대로 뒷다리나 상아에 대한 전문가로서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코끼리를 분석하였는데 갑과 을과 병의 판정이 서로 어긋나고 있다.

판정이야 어찌되었든 이렇게 유추해 나가는 방법은 연역법에 속한다. 원리에 입각하여 현실세계를 구분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원리가 옳다고 전제한다면 현실세계는 원리가 제시하는 틀 속에서 분석되어야 하며 예외는 인정될 수 없는 것이 연역의 방법이다.
우리가 예로든 갑·을·병의 경우는 판정이 서로 어긋났다. 갑과 을과 병은 자신이 생각한 원리의 예외 없는 범주 내에서 철저한 연역의 방법에 입각하여 코끼리를 분석하였다. 그리고 코끼리를 사상 가운데 한가지에 속하는 코끼리로 확정지어 놓았다. 그러나 판정은 일치하지 않았다. 이렇게 갑과 을과 병의 판정이 서로 다른 까닭을 생각해 보면 우선 그들이 물리적으로 생겨먹은 외모나 체형의 비교만을 중시하였을 뿐, 거기에서 드리워지는 상[象]의 파악에 정밀하지 못하였을 가능성을 원인으로 생각할 수 있다. 만약 그들이 드리워진 상[象]을 정확히 파악하였음에도 판정이 서로 일치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다른 방향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즉, 그들 개개인이 상아나 귀 또는 뒷다리에 드러난 상[象]을 통해 전체[본질]로 들어가야 하는데 이때 완전히 배제하기 매우 어려운 자의적인 해석이 그 과정에 개입되어 최종 판정에 영향을 줄 수가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현실적으로 철저한 연역의 방법을 구사하기가 지난하다는 점에 대하여 이제마 스스로도 절감한 바 있으며 후학인 한의사들도 곤혹스럽게 느끼는 부분이다.

Ⅲ. 귀납적 방법

현실세계는 그러나 원리대로 되는 세계가 아니다. 한가지 원리로 규율할 수 있는 세계가 아니고 수없이 많은 원리로 얽히고 설킨 세계다.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매 사례 한가지 한가지가 제각각 독자적이랄 수 있다. 그러므로 수많은 사례를 모아서 통계로 처리하여 분석해 나가려는 방법을 모색하게 되는데 이렇게 해 나가면 귀납적인 분석이 되는 것이다.

코끼리를 귀납적으로 분석하는 경우를 생각해 보면 조직해부학적인 방법이나 형태구조학적인 방법과 같은 예를 들 수 있을 것이다. 아원자, 원자, 분자, 세포, 조직, 기관의 단계를 밟아가며 분석하는 것이다. 이런 귀납적인 방법의 분석은 앞서 예시한 연역적인 분석의 틀 속에 규격화되지 않는다. 즉, 귀납적으로 분석한 코끼리는 태양, 소양, 태음, 소음의 범주로 규격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계속〉

조종진(창원 한국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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