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7) - 윤창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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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醫學·歷史遺跡 探訪記(7) - 윤창열
  • 승인 2004.04.02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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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광이 빼어난 東湖 □

중국의 대부분 여행지에 西湖가 명승지로써 유명하지만 무한만은 東湖가 유명하다.
동호의 크기는 항주에 있는 서호의 6.5배에 달한다고 하니 그 크기가 대단함을 알 수가 있다.

동호의 서쪽에는 바람이 불면 파도소리가 거문고 소리처럼 들린다는 聽濤軒, 초나라의 애국시인 屈原을 추모하여 지은 行吟閣(굴원이 지은 漁父辭에 行吟澤畔이라는 말에서 따온 말이며 이 건물 앞에는 굴원의 전신 塑像이 서 있다), 書畵를 전시하고 있는 瀕湖畵廊, 太平天國의 亂때 起義軍에 참가하였다가 희생된 9명의 婦女를 추모하여 지은 九女墩, 그리고 屈原記念館 등이 있지만 우리는 시간에 쫓겨 호숫가의 도로를 따라서 천천히 풍경만 감상하였다.

호숫가에는 무한의 상징나무라는 水杉나무가 열 지어 서 있었는데 물속에서도 썩지 않고 뿌리를 깊게 내리고 있는 모습이 특이하였다.
東湖를 가로지르는 沿湖大道를 따라 앞으로 나아가니 湖光閣이 있고 멀리 磨山에는 楚天臺가 보인다.
초천대는 일명 章華臺라고도 부르는데 초나라 靈王이 지은 화려한 宮殿인 章華臺를 모방하여 지은 건물로 규모가 웅장하다.

역사의 기록을 보면 초나라 靈王(B.C 541~529)은 오나라를 치러 갔다가 아무 공도 없이 돌아오자 홧김에 工事를 크게 일으켜 章華宮을 지었다 한다.
장화궁의 가운데에는 높은 대(臺)를 쌓았기 때문에 사방을 바라볼 수 있었다 하며 높이가 30인(인)이나 되었다.

그래서 세상사람들은 章華臺라고도 하고 일명 三休臺라고도 했다고 하는데 즉 너무나 높아서 그 꼭대기까지 오르려면 누구나 세 번은 쉬어야 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영왕은 괴상한 성미가 있어 허리가 가는 여자를 좋아했다고 하고, 또 남자도 허리가 굵으면 미워했다고 한다.

장화궁이 낙성되자 초영왕은 허리가 가는 미인만을 뽑아서 거처하게 했으므로 장화궁을 일명 細腰宮이라고 했다고 한다.
1999년 6월에 이곳을 방문하여 이곳에서 증후을묘에서 출토된 편종의 연주를 들은 적이 있는데 베토벤의 9번 교향곡까지도 연주할 수 있다고 자랑이 대단하였다.

호수의 왼쪽에는 인공으로 칸을 막아서 고기를 기르고 있었다.
주마간산이 아닌 走車看山으로 동호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우리 일행은 자매대학인 호북중의학원을 방문했고 이날 저녁 호북중의학원의 領導者(영도자)들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 李時珍의 고향 기春 □

8월 7일, 오늘은 무한의 동남쪽에 있는 李時珍의 고향 기춘현(기春縣)과 소동파가 적벽부(赤壁賦)를 읊은 동파적벽을 관광하는 날이다.
호텔에서 버스를 타고 기춘현으로 달려갔다. 우리 동포인 조선족 가이드는 정말로 밤새도록 공부를 많이 해 와서 하나라도 우리들에게 더 많은 것을 알려주었고 여행이 지루하지 않도록 수많은 이야기를 전해 주었다.

그 중에서 삼협(三峽)댐에 대한 이야기를 자세히 해 주었는데 290억 달러가 들어가는 이 공사에 중국정부에서 단 한푼도 별도의 돈을 투입하지 않고 단지 착공을 시작한 1992년부터 완공이 되는 2009년까지 17년 동안 전기세를 7전씩 올려서 만든 비용만으로 충당한다고 한다.
그리고 2009년 이후 전기세를 인하하면 투자된 모든 돈을 국민들에게 되돌려 줄 수 있다고 한다.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 옆에는 수많은 못이 있었고 못마다 고기를 기르고 연(蓮)을 심어 땅을 조금도 놀리지를 않았다.
우리의 고정관념 속에는 연못은 관상용 아니면 그저 고기들이 노니는 못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곳의 연못은 우리나라의 논, 밭 이상으로 먹을 것을 생산해내고 있었다.

자라, 뱀장어 등을 많이 기르고 황소개구리 등도 양식을 한다고 한다. 그래서 호북성의 요리에는 물고기와 연근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고 한다. 호북성의 쌀로는 고양이 이빨처럼 길고 뾰족한 包牙米와 赤米가 유명하다고 한다.
차는 어느덧 黃石長江公路大橋를 지나 기춘현의 경내로 접어들었다. 다시 기河大橋를 지나자 가이드는 기춘현에 대한 여러 가지 소개를 해 주었다.

기춘현은 “기水悠悠出大賢”이라는 말이 있듯이 수백 명의 전문가 학자들이 배출되어 기춘은 敎授縣이란 영예로운 명칭으로 불리며 특히 기주진에 있는 500여m에 이르는 東長街는 30여명의 國內外의 유명한 교수·학자들이 탄생하여 博士街라는 美稱도 있다 하는데 그 중 10여명은 미국에서 활동하고 있다고 하니 정말 대단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마 이것은 기주진의 주위에 있는 麒麟山(기주진의 중앙), 鳳凰山(기주진의 서남쪽), 龍鳳山(기주 서북쪽), 銀山(迎山이라고 하며 남쪽 雨湖村 부근) 등의 地靈과도 관계가 있으리라 하는 생각이 든다.
기춘현과 기주진은 개혁개방이후 “醫藥興縣”이라는 목표아래 1991년부터 2000년까지 5차(2년 1회)에 걸쳐 李時珍醫藥節행사와 10차(매년)에 걸쳐 藥物交易會를 개최하여 기주진의 발전을 도모하였다.

그 결과 기주진의 中藥材市場은 국가로부터 전국 17개 中藥材전문시장중의 하나가 되었고 또 기州鎭은 호북성으로부터 두 차례에 걸쳐 “楚天明星”의 칭호를 받았고 국가로부터는 “中國鄕鎭之星”이라는 호칭을 받았으며 전국小城鎭建設의 “示範鎭”으로 지정되었다고 한다. <계속>

필자약력
▲경희대 한의대 졸(한의학박사) ▲대전대 한의대 교수(1985~현) ▲중국 요령중의학원 연구교수(1993~4) ▲현 대전대 한의대 학장 ▲저서 : ‘증보 중국의학사’ ‘난경연구집성’ ‘詳解의학한문’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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