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195] 醫科八世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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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195] 醫科八世譜
  • 승인 2004.03.2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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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리 八代 醫官 지낸 醫家族譜

醫科八世譜란 다소 낯선 이름의 이 책은 조선 후기 역대로 의원을 많이 배출한 중인 가문의 위아래 8대의 가계를 기록해 놓은 의인의 족보이다. 좀 더 부연하자면 醫官들 8대조까지의 직계를 정리하고 외조부와 장인[妻父]의 신분과 출신까지 밝혀 놓았다.

1책 32장 분량의 소책자로 이루어진 이 책은 작성자와 집필과정 그리고 작성연대 등이 모두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수록되어 있는 대상 인물들이 대략 1840년대에서 1890년 사이에 醫官職에서 면직(除職) 또는 승진(陞敍)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작성 시기는 그 이후로 보인다. 수록 대상인물들의 출생년[生年] 다음에 기재한 干支와 陞, 元, 新 등의 축약어는 관직에 오른 연도와 그 방법을 밝힌 것으로 보인다.

기술방식은 일반적인 족보의 구성과는 달리 주요 수록 대상자인 본인 항목 아래 차례로 부, 조, 증조, 고조, 5대조, 6대조, 7대조, 8대조까지 연달아 위로 8대를 기록하고 아울러 그 밑에 외가와 처가까지 10항을 채워놓았다. 따라서 본인을 합해 내리 11칸의 격자를 두어 차례로 기록하되, 선후 관계없이 의원한 형제가 있으면 그 곁에 함께 실었다. 또 직계 위주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집안 마다 8대의원을 낸 집이 여럿인 경우도 있다.

옛말에 “삼대를 내려온 의원집이 아니면 약을 짓지 않는다(醫不三世, 不服其藥)”고 했는데, 무려 팔대를 내리 의과로 입신출세하였으니 대단한 영광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또 기술직 전문인이 사대부 계층에게는 末技로 폄하되던 시기였으나 점차 중인들의 사회적 신분의식이 상승하고 상업 자본을 형성함에 따라 자신들의 정체성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증거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수록 내용을 보면 전주 이씨, 성주 이씨, 합천 이씨, 안산 이씨, 정읍 이씨, 경주 김씨, 청양 김씨, 광산 김씨, 김해 김씨, 설성 김씨, 보령 김씨, 낙안 김씨, 고성 김씨, 경주 최씨, 직산 최씨, 순흥 안씨, 온양 정씨, 함평 정씨, 삭령 박씨, 밀양 박씨, 청주 한씨, 남양 홍씨, 순창 조씨, 풍양 윤씨, 승평 강씨, 풍기 진씨, 천령 현씨, 밀양 변씨, 온양 방씨, 한양 유씨, 하음 전씨, 현풍 곽씨 등 32성의 의원집안 55항이 수재되어 있다. 따라서 兄弟同榜의 경우를 제쳐두고서라도 어림잡아 500 ~600명 정도의 적지 않은 인물의 간단한 사적이 정리되어 있는 셈이다.

가장 많이 수록된 집안은 경주 최씨로 최규승, 최상우, 최용, 최명식, 최인원 등 5가문 61명이 실려 있어 가장 많다. 그러나 이들의 직계상하 8대가 모두 의과만 한 것은 아니고 경우에 따라서는 雲科, 譯科, 律科, 計士 혹은 무과 출신자가 섞여 있어 이들이 대개 중인계급으로서 공감대와 계층의식을 갖고 있었음을 볼 수 있다.

역사상 유명인물로는 康命吉의 昇平 강씨 집안이 두드러져 보일 뿐, 의외로 이름난 인물은 보이지 않아 이들이 다만 의원직의 전습에만 머문 것이 아닌가 싶다.

이밖에도 의과고시나 의원집안 관련 문헌으로는 『醫科榜目』, 『醫科先生案』, 『醫登第譜』, 『醫科譜』 등이 있다. 본 책은 본격적인 의관명단이 기록된 『의과선생안』이나 『太醫院先生案』에 비해서 개인 기록은 다소 미약하지만 조선시대 중인계층 대대로 이어진 직업의 세습과정과 의관의 신분배경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또 이 책은 중인가문의 내력을 수록한 『姓源錄』의 기초자료가 되기도 하는데, 이 자료들을 비교하면 조선후기 의관직을 세습하는 가문의 형성과정을 파악할 수 있다. 아울러 전반적으로 醫, 譯, 算 등 조선후기 전통적인 중인신분 연구에 폭 넓은 참고 가치가 있다하겠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 상 우
(042)863-9442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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