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기반 없인 한의학 발전 없다(5·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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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적기반 없인 한의학 발전 없다(5·끝)
  • 승인 2004.03.15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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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하는 의료 만들자

학문도 정책도 한의학적 기준 요구돼

논문, 증례보고도 음양오행 기준으로 객관화해야

정부가 행정을 하는데 통계가 없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일차적으로 국고수입을 예측할 수가 없을 것이다. 누가 어디서 얼마를 벌고 세금은 얼마를 거둬야 적정한지 알 도리가 없다. 반대로 적정수입을 추산하기 위해서는 지출분야를 예측해야 하는데 통계가 없으면 어디에 얼마를 써야 할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국가운영 자체에 합리성이 없어 주먹구구식으로 운영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통계가 없는 나라는 상상할 수 없다.

통계는 국가운영에 있어 필수적이지만 일반 소규모 기업이나 단체에서도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의학에서는 더더욱 필요한 게 통계다. 인구의 사망률과 질환의 이환률 등 기본적인 질병통계 뿐만 아니라 진단의 정확도와 민감도, 치료효과 등을 측정할 수 있어야 가치를 인정받기 때문이다. 이런 배경에 따라 발전해온 의료통계는 통계전문가들 사이에서 그 수준을 인정받고 있을 정도다.

한의학은 양방적 진료시스템과는 약간 상이하여 의료통계를 즉각적으로 요구하지는 않지만 ‘객관화’라는 측면에서 필요하기는 마찬가지다.

학계의 관계자들은 한의학을 객관화하기 위해서는 용어와 행위의 표준화부터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까지는 아니더라도 대략적이나마 설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표준화를 한다고 해서 딱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떤 통계든지 ‘오차범위내’라는 전제를 바탕으로 일반성을 가진는 데 불과하다. 그러므로 표준이든 일반화든 객관화든 하나의 기준을 정하는 데 의미가 있지 100% 정확성을 드러내지는 않는다. 적어도 하나의 기전을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하자는 데 통계의 의미가 있다고 보여진다. 이것도 아니라면 하나의 경향성을 설명해주는 지표 정도로 정의해 두는 것도 좋을 듯 싶다.

논리적으로 설명돼야

한의학에서 누구나 감기는 한의학으로 치료가 잘 된다고 말을 하곤 하지만 일반 국민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그것도 어린 아이가 열이 펄펄 나 40°를 오르내리고 있는데 한의학으로 치료하자고 자신있게 주장할 사람이 얼마나 될까? 물론 이런 질문을 하기 전에 한의학에 대한 홍보가 충분히 되어 있고, 지리적으로 접근성이 용이하며 진료비의 부담이 적을 뿐만 아니라 한의사의 치료능력이 균일하다는 전제를 충족시켰다고 가정했을 때 이야기다.

그러나 적어도 한의학으로 감기치료가 우수하다면 대학병원에서 치료결과를 통계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어떤 유형의 환자를 어떤 방법을 사용해서 얼마간 치료했더니 치료되었다’라는 식의 설명이 있어야 국민은 신뢰할 수 있지 않을까? 한의학적으로 체질에 따른 변수와, 개개의료의 특성상 치료효과를 단일한 지표로 나타내기 어렵다면 국민을 납득시킬 ‘한의학적 근거’는 없을까?

한의학적 기준을 찾아라

의학통계에는 실험데이터도 있지만 임상데이터의 비중도 못지 않게 크다. 환자를 관찰하고 그 관찰한 내용을 체계적으로 기술하는 임상증례보고는 오래전부터 그 가치를 인정받아 왔다. 양방의 어느 의사는 “가장 훌륭한 의학교육은 환자로부터 직접 배우는 것”이라는 말로 환자관찰의 중요성을 강조한 바 있다.

가깝게는 중국중의사들이 불과 몇 건의 환자에 대한 임상보고서를 작성하여 학술지에 발표하는 모습을 중의임상잡지에서 본다. 일본의 의료잡지에도 이런 임상증례보고의 경우를 자주 볼 수 있다.

이와 관련해 이수완 원장(서울 구생한의원)은 “개원가에서도 자신이 환자를 진료한 자료를 바탕으로 크고 작은 증례보고서를 발표할 수 있는데 잘 안 되는 것 같다”고 아쉬워했다. 또한 그는 통계라고 해서 단순히 ‘어느 처방을 쓰니 낫더라’ 식으로 통계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나타냈다. 오히려 그는 “한의학적으로 변증을 잘 해서 다른 한의사가 응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한의학적인 통계의 지름길”이라고 말한다.

한의학 학위논문을 분석하여 석사학위를 취득한 바 있는 박종운(서울 다호라한의원) 원장도 이수완 원장과 근접하는 판단을 해 관심을 모았다. 그는 “서양의학적 교육에 영향을 받다보니 한의학적 증례보고는 과학이 아니라는 이유로 외면되고, 서양의학적 방법은 실험적 방법을 찾기 어려워 주저하는 것 같다”고 분석하고 ‘음양오행론’을 설명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희대 고창남 교수(한의학회 기획·총무이사)는 “임상데이터를 내기 위해서 좋은 데이터를 생산하기 위한 교육이 필수적”이라면서 “어떤 관점에서 어떤 교육이 필요한지 연구해야 할 것”이라는 견해를 밝혔다.


정책도 한의학적으로

한의사의 생각은 사람마다 다양하다. 학파마다 관이 다르고 여기에 서양의학이 들어와 뒤섞이고 제도권 교육과 도제식 교육간의 미묘한 차이도 존재한다. 한의학이 제도권으로 편입되면서 원치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 점도 더러 있다. 양방이 선점한 법과 제도에 꿰어맞추는 듯한 행태가 오늘의 혼란을 불러일으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많은 한의사들은 그간의 타성이 종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학문의 특성을 고려치 않은 제도와 정책은 양적인 성장을 가져왔지만 학문의 성숙에는 기여한 바가 적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높다.

이에 따라 일선의사들은 기본적으로 한의학의 학문적 특성을 살리는 방향으로 제도나 정책이 시행되기를 희망한다. 기술적 측면보다는 치료율을 높이는 방향에서 모든 제도와 정책이 결합될 때 학문도 살고 정책도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주변환자를 잘 고치면 주변에서 한의학을 도와준다는 논리다. 감기약 한 첩을 짓더라도 변증을 잘해서 낫게 하는 것이 그 어떤 제도적 장치보다 효과적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다. 정부의 제도운용이나 한의협 정책은 바로 이런 분위기를 유도하는 방향에서 이루어질 때 한의학은 한의학답고 국민의 신뢰를 받을 수 있지 않을까? (끝)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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