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채한 박사의 American Report(6)
상태바
[해외동향] 채한 박사의 American Report(6)
  • 승인 2004.02.27 14: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한방 과학화는 의미없는 소모적 논쟁
과학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차세대 의학 제시해야


■ 한의학은 과학인가?

한의학이 과학인가, 혹은 과학화가 필요한가는 새삼스러운 주제가 아닙니다.
한약분쟁을 통해 수면위로 드러나게 되었지만,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한의학을 둘러싼 논쟁(註1)에 빠지지 않았던 주제입니다.
한의학과 과학에 대한 논쟁에는 지금까지 대략 두가지 논리가 있어왔던 것 같습니다.

첫째는 한의학은 과학이 아닌 미신이나 잡술로, 높이 평가한다고 해봐야 단편의 약물 지식과 대증요법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20세기 초 서양문물이 유입된 이후, 모든 전통지식 체계에 가해진 서구 침략주의 혹은 자기 비하에서 시작된 것으로, 21세기에 들어선 지금까지 수많은 전통 지식 체계에 가해지는 가혹한 가치폄하였습니다.

빵을 포크로 먹는 것은 좋은 것이고, 숟가락으로 밥을 먹는 전통 방식은 모두 버려야 한다는 논리였지요.
개화기 혹은 해방 이후의 서구 문물에 대한 ‘과학 콤플렉스’에 기반한 이러한 논법은, 수십년간 한국 정치사에서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되었던 ‘빨갱이’ 논법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모든 학문적 토론이나 객관적 연구는 건전한 토론과 평가를 거치기 이전에 힘의 논리에 의해 좌우되었습니다.
수많은 전통 기술과 고유문화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으며, 박해와 말살 속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학문이 한의학임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한의학이 이렇게 살아남아 부활의 날개를 펼침은 그 의학적 존재 가치가 단순한 가치폄하와 박해로는 감추어질 수 없었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과학의 나라 미국 NIH의 연구비와 연구인력이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둘째는 이에 대한 한의계의 반박 논리로서, 한의학은 현대과학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수많은 임상 증례로만 그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한의학은 과학이 아니다’라는 주장에 대한 반론으로, ‘현대과학과 서양의학에 의한 한의학의 증명은 불가능하다’는 주장입니다.

현재의 과학기술로는 ‘자연의 도(道)’인 음양오행(陰陽五行)과 경락(經絡)을 이해조차 하지 못하며, 수십 년간의 화학분석으로도 인삼의 모든 효능을 밝혀내지 못함을 볼 때 한의학 처방을 설명하기에도 너무도 낮은 수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낮은 수준으로 높은 수준의 학문을 평가함은 어불성설이며, 한의학의 그 무엇을 증명하거나 작용 기전을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소위 과학적 접근은 무의미한 것이며, 다만 치료 효과(임상례)의 통계적 입증만이 유일한 방법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현대 과학계는 Nature에 실렸던 논문(註2)의 통계 분석 자체도 한순간 부정되는, 한마디로 ‘통계도 믿을 바 못되는 현실’입니다.
안개 속에 흔들리는 이파리와 가지만으로 기둥과 뿌리를 가늠한다는 것은 학문에 대한 바른 태도가 아니며, 학문의 근본 이론과 실제적인 활용에 서로 다른 잣대를 들이대야 함은 한의학의 자존심에 대한 모욕이라 생각됩니다.

Mechanism이 빠진 단순 ‘효과 검증’에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수천 종에 이르는 처방과 침구법, 수기법의 효과를 일일이 검증한다고 하여 학문에 어떤 이론적 기여가 있을 것이며, 백보양보하더라도 검증 이후에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의문을 갖게 됩니다.

한의 처방의 효과를 검증하여 유효성분을 추출해내면, 이미 한의학과는 상관없는 서양의학이 되어버리는 현실입니다. 한국 한의학의, 한의학을 위한, 한의학만의 구체적인 그 무엇이 만들어지지 않는다면, 이러한 연구는 한순간 스쳐가는 바람에 그칠 뿐입니다.

냉정히 생각해 보면, 이러한 해묵은 논쟁은 ‘과학(science)’이라 불리웠던 신기술에 대한 100년 묵은 콤플렉스 속에서 ‘한의학≠과학’이라는 무의미한 영가설에 대한 소모적인 논쟁만을 이끌어 왔을 뿐입니다(註3).

현실적으로 수능점수 상위 1%의 수험생만이 한의과대학을 지망할 수 있고, 국민 의료 보험이라는 국가 행위의 일부이면서, 수많은 소위 ‘과학자’들이 한의학 연구를 통해 국가 연구비를 사용하고 있는 것, 수많은 한의사들이 군의관과 공중보건의를 통해 국가 제도속에서 활동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의학만을 위해 국가가 설립한 연구기관이 존재함은 ‘한의학은 과학인가’ 라는 논쟁이 이미 무의미함을 뜻합니다.

과연 미신에 불과하거나 혹은 단순 대증 요법을 위해 ‘국민의 혈세’로, 국가 행위의 일부로 이만큼 많은 일들이 벌어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현실적으로 ‘한의학이 신뢰할 만한 학문’인 것은 이미 인정된 셈입니다. 아니라면, 왜 대한민국의 공중보건의 제도를 비판하는 사람들과 ‘한의학/한약이라는 잡술’에 집착하는 양방 의약업계의 자성에 찬 소리를 찾아볼 수 없는지 반문해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서양은 어떻고, 과학 강국인 미국은 어떻다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영어를 사용할 줄 아는 지성인이라면, 정치적(politics)인 의미를 배제한 ‘Science가 아닌 한의학을 Science로 만든다’는 ‘과학화’라는 콩글리쉬(broken English)는 존재하지 않음을 이해할 것입니다(註4).

과학이 아닌 것을 어떻게 과학으로 만든다는 것인가요. 과학(Science)이란 학문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과, T. S. Kuhn의 과학철학적 접근은 차치하고라도 말입니다.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지금까지의 ‘한방 과학화’란 상업주의를 전제로 한 속빈 강정에 불과한 것 같습니다.

‘한방 과학화’를 주창한 사람들치고 경제적 이득을 외면하면서 한의학 연구에만 목숨걸었던 사람을 본 적 없습니다. 여타 의료 단체에서는 ‘한방 과학화’를 본인들이 하겠다지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혹은 왜 그들만이 할 수 있는지 진짜 구체적인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한 것 같습니다.

한의학을 수십년간 고민하셨던 선배님들도 자신있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것을, 왜 무지한 그들이 자신있게 이야기하는지요.
그렇다면 이제는 지금까지의 소모전에서 벗어나 새로운 방향 제삼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입니다.

■ 한국 한의학은 과학(Medical Science)이다!

한국 한의학은 과학(Medical Science)입니다. 한국 한의학은 서양의학과 학문적 체계와 사용 언어가 다를 뿐, 신뢰할만한 학문이며, ‘질병에서의 인간 해방’을 지향한다는 공통분모에 입각해 있습니다. 상대방을 꺽고 흡수하여 내 것을 늘린다는 19세기적 제국주의 사고, 전근대적인 과학 콤플렉스에서 우리가 먼저 벗어나야합니다.

근거조차 모호한 기계나 검사법, 장돌뱅이 박람회, 유전공학, 파동, EBM, 대체의학, Well-being 같은 fancy한 용어에 대한 강박적 집착을 떨쳐야 합니다.
자기만족에 그치는, 알맹이 놓아두고 이름만 바꿔 뭐하겠습니까? 지금까지는 너무 다른 역사적 배경속에서 서로를 이해하지 못해왔지만, 이제부터는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고 한 사람이라도 더 치료해야 합니다. ‘꿩 잡는게 매’인 법입니다.

세계적인 유수 연구지에 실리고 있는 침구, 한약, 사상의학에 대한 논문은 이러한 견지에서 이해 가능하겠습니다.
이들은 한의학의 학술적 가치를 당연시하며서 모든 논의를 시작합니다. 한의학의 존재 가치에 회의적인 논문은 단 한편도 보지 못했습니다.

한의학 논문이 발표된 Journal, 한의학 논문을 발표한 Scientist, 한의학 연구를 위한 연구비를 타간 Researcher들은 모두 한의학이 신뢰할만한 학문이라는 전제 위에 서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논문은 한국에서 유행하는 무의미한 영가설에는 관심조차 없습니다. ‘왜?, 어떻게? 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끊임없는 추구일 뿐입니다.

연구자 본인들도 의식하지 못하는 가운데, 학문적 관심은 이미 제3의 단계로 넘어가 있습니다. 논문 속에서 밝혀지는 작용 기전(Mechanism)은 한의학과 서양의학이 서로의 언어를 이해하는 ‘번역 도구’이며,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매개 함수’이자, 한의학의 차세대 변용(變容)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본다면, 사상의학에 대한 본인의 논문(J Alt Compl Med. 2003. 9:519-528)은 각 사상인의 유형별 생리적 특징을 life science를 전공하는 서양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용어와 틀로 바꾸어 설명했을 뿐, 사상의학의 그 무엇을 증명하려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어떻게 하면 한국 한의학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는가, 어떠한 맥락 위에서 한국 한의학을 이해하여야 하는가, 환자를 치료함에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구체적인 내용을 제시함으로써 한국 한의학의 범주 확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조류위에서 한의사로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 진정 서양의 언어로 이야기되어야 할 것은 학문의 근간인 陰陽五行, 臟腑論, 東醫壽世保元 四端論, 氣味論과 經絡學입니다.
이 또한 한국 한의학을 더 쉽게 설명하고 이해를 통해 학문적 외연(外延)을 넓히자는 것이지, 존재 여부에 대한 증명이라는 넌센스를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음양(陰陽)이 존재하는가, 간지(干支)가 왜 10과 12인가와 같은 ‘존재 이유’에 대한 질문은 Science가 이미 오래전에 외면한 Philo-sophy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백년 전의 틀에서 먼저 깨치고 나와야 합니다. 한의학이 언제까지나 지금과 같은 모습이어서는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음양은 한의학의 근본입니다.
십년전 한약분쟁에서는 국가의 정책적 지원을 목소리 높여 요구했습니다만, 무한 경쟁의 세계화 속에서 국가의 정책적 지원은 무색해지고 있습니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시대 변화를 넓게 보고 구체적인 실행대안을 먼저 제시해야 합니다.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온실 속의 화초처럼 한국 현실에만 안주할 것이 아니라, 넘어지고 깨지면서 거친 폭풍 속에서 자신을 끌고 나가야 합니다. 진정,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습니다.

절대 진리를 불신하는 과학이 ‘서양의학’에만 절대성을 부여하지는 않을 듯 합니다. 지금은 위대해 보이는 현재의 서양의학도 이백년 전(1799)에는 미국의 George Washington 대통령을 tracheotomy라는 맹랑한 치료를 통해 출혈 과다로 살해했습니다(註5).

당시 의학계는 정당한 치료라고 인정했지만, 지금은 그 누구도 인정하지 않는 미신이며 잡술입니다. 과거 전근대 한의학 속에 그런 불합리가 숨어 있었다고 하여, ‘현대 한의학’을 폄하하는 것은 지성인의 태도가 아닌 편견과 오만입니다.

해묵은 과거의 콤플렉스에서 먼저 벗어나, 정당한 자존심과 서양의학에 대한 포용을 통해 차세대 의학, 21세기 의학의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하는 것이 한의학의 시대적 사명입니다.

미국은 이미 위에서 말씀드린 제3의 길 - Integrative Medicine (통합 의학)으로 접어들었습니다.
제가 있는 Center for Integrative Medicine은 Integrative Medicine의 기치하에서 다양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소속된 Cleveland Clinic Foundation(www.ccf.org)은미국 5대 병원의 하나로 심장에 관련해서는 세계 최고의 권위를 지니고 있습니다.

25년간 혈관세포에서의 세포내 신호전달체계를 연구해 왔으며 현재 CWRU (Case Western Reserve University)의 세포 분자생물학 교수인, 통합의학센터 소장 (Director) Fox 박사의 통합의학에 대한 언급은 심신의학(心身醫學)을 설명하는 한의사의 이야기로 착각될 만큼 익숙하며, 도리어 한발 앞서 나가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The Integrative Medicine is a name given to a way of practice in which traditional health care is combined with effective alternative treatments, with the recognitionof the importance of patients’ involvement and the ability of the mind, emotions and spirit to affect physical health.”

“It is well known that cardio-vascular disease correlates with anxiety and character, the well known Type A personality. The placebo effect, in which saline injections produce the same brain activity as an active drug, has been demonstrated with brain imaging. Such studies also have shown that acupuncture affects opioid production in the brain.”

“While such concerns have not traditionally been the realm of the Western physician, accumulating scientific evidence means we can no longer ignore the fact that the mind can be used to affect the body or that the emotional well-being of patients can have significant effects on physical health. As the field of psychoneuroim-munology has matured, it has brought understanding of mechanisms by which the mind, emotions, and body communicate, with resulting acce-leration of the rational for creating more integrated health care approaches.” (“Connection” Cleveland Clinic Alumni Newsletter, 2002, Vol 12, No 3)

21세기의 화두(話頭)는 퓨전(fusion)인 듯 합니다. 이미 생활의 일부가 되어버린 인터넷도 Java, Windows, Linux와 같은 이질적인 요소들의 유기적 통합일 뿐이며, 전혀 상이한 IBM-PC와 Macintosh, 핸드폰과 PDA가 함께 돌아갑니다. 함께 하니 편하고 좋지 않습니까?

참고 문헌
(註1) 하니 리포트 (www.hani.co.kr/ hanireporter), [의학논단] 한의학과 서양의학 (김승열, 윤여동, 홍재경)
(註2) Warrington, E.K. & Weiskrantz, L. (1970). Amnesic syndrome: Consolidation or retrieval? Nature, 228, 628-630.
(註3) 최종덕. (2003, 겨울) 한의학계의 과학 콤플렉스. 과학사상
(註4) 메리언-웹스터(www.merriam-webster.com), 브리태니커 백과사전 (www.britannica.com), 네이버 (www.naver.com), 야후!사전 (kr.alldic. yahoo.com)
(註5) Morens DM. (1999). Death of a president. N Engl J Med. 341(24), 1845-9

채 한 (한의사, 한의학 박사)
현 미국 클리브랜드 클리닉, 통합의학센터, 전 하버드의대, 한국 한의학연구원 근무
Email : chaeh at ccf.org
Web : www.chaelab.org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