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 한의학을 빛낸 인물18] 又川 朴寅商(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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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 한의학을 빛낸 인물18] 又川 朴寅商(下)
  • 승인 2004.02.27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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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험에서 비롯된 소신있는 처방


우천은 사상의학에 대해 치료효과와 질병예방을 위한 건강관리 지침으로서의 의미도 있지만 다음과 같은 중요한 세가지 의미가 있음을 강조했다.

첫째는 모든 의학이 병만을 치료하는 것이었음에 비해 사상의학은 병을 갖고 있는 사람을 치료한다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했다는 점이고, 둘째는 사상의학에서 말하는 체질은 타고난 바탕을 네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그것이 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그에 따라 병도 다르고 치료도 다르며 양생하는 법도 다르다는 것을 체계화했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몸과 마음을 하나로 볼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마음을 고쳐서 병을 고친다(治心治病)’는 관점에서 각 개인의 특징에 따라 치료한다는 것 등이 사상의학의 중요한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사상의학은 아직 미완성이므로 그게 다라고 생각하면 안된다”고 강조했다. 어느 한 사람의 연구, 한가지 학설이 훌륭하다고 해서 그것이 마치 전부인 것처럼 논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라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나만 제일인 것은 아니듯 사상의학도 이제마 선생이 혼자한 학문이 아니며, 사상의학만이 제일인 것도 아니며 남의 학문도 인정할 건 인정해주어야 의학에도 발전이 오는 것이라고 했다.

70년대 경희의료원 중풍센터시절 우천과 함께 근무했다는 송일병(64) 경희대 교수는 “후배로서 선배를 평하기는 어려우나 고방이든, 사상방이든 두루 섭렵하신 분”이라면서 “약 처방을 할 때 용량은 적게 쓰면서 조심스럽게 조금씩 늘리는 것이 보통인데, 우천선생은 약 처방을 할 때도 한번에 많은 양의 약을 과감하게 처방하고, 임상할 때도 사상의학만 고집하지 않고 증상에 맞게 다른 방법도 적용할 줄 아는 소신이 분명하고, 대범한 분이었다”고 기억했다.

송 교수는 “그런 소신있는 약처방과 임상을 할 수 있었다는 것은 오랜 경험과 연륜에서 비롯된 자신감으로 주위에서 보기 드문 능력자”라고 극찬하면서 “특히 넓게 포용해서 임상하는 면에서 배울점이 많은 분”이라고 평했다.

한편 김경요 전 사상체질의학회장은 “사상의학적인 면에 얽메이지 않고 기존 한의학과 접목하려는 시도를 많이 하신 분으로 평소 한의계 후배들에게 귀감이 되는 분”이라고 말했다.

■ 한의사로서 본분 잊지 말아야

한번은 나이가 70정도 되어 보이는 한 노인이 큰 규모의 양방병원 심장권위자로부터 아들을 수술받게 해 외적으로는 완치되었는데 무슨 이유에서인지 잠을 못 이룬다며 그에게 데려왔다고 한다.

증상을 살핀 우천은 환자의 얼굴에 화기가 있기 때문이라고 판단해 약을 두첩 지어주었고 환자는 차츰 화기가 가라앉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나중에는 화기가 거의 사라져 환자는 잠도 편안히 잘 자게 되었고, 마음에도 평온을 얻게 되어 몇 번이고 고마워하더라는 것이었다.

그는 “지금 현대의학이 극도로 발전해서 대부분이 과학적으로 증명된다고 하지만 증명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면서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氣’도 바로 그런 것 중 하나”라고 말하고 “경험에 비추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 증상이나 의학도 꽤 있다”고 했다.

우천은 물질을 좇는 요즘 젊은 한의사들에 대해 “병을 고치는데 성의를 다하다 잘못된 건 용서받을 수 있지만, 돈이나 물질을 좇다 잘못된 건 죄를 짓는 일”이라며 의사로서 아무리 하찮은 병일지라도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 “남에게 은혜입은 것은 잊지 않되, 남에게 은혜를 베푼 것에 대해선 연연해하거나 생각지 않아야 한다”며 “의학은 인술이니 무엇보다 자기 본분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우천은 시대적인 흐름상 언어가 중요한 만큼 한자공부는 기본적으로 하되 중국어·영어·일어 등 적어도 3개국어 이상은 반드시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선배와 후배 한의사들이 자리를 자주 마련해 서로 흉금없이 토론하고 끊임없이 대화를 나눠야 앞으로 한의계의 길도 열리는 것”이라며 한의계가 나아갈 길을 제시하기도 했다.

■ 공해속에서 마음도 병들어

우천은 지금 현대인들은 전부 죽는 연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바쁘게 살면서 생활의 리듬도 깨지고 전체적으로 균형이 안 맞아서 병이 생기는 것이라며 편식을 하지말고, 될 수 있으면 골고루 먹되 내 체질에 맞는 걸 먹고, 외국 음식보다는 우리 몸에 맞는 우리나라에서 난 음식을 먹는 게 건강을 지키는데 도움이 된다고 충고했다.

그는 “딴거 없어. 원시로 돌아가면 되는 거야. 흙냄새 못 맡고, 욕심을 못 버리고, 인성교육이 잘못되어서 요즘 부부이혼, 살인같은 흉흉한 사회문제도 생기는 거야. 노력을 해서 댓가를 바래야지”라며 어지러운 세태를 꼬집었다.

공해속에서 살면서 우리 마음이 병들었으니 스스로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좋은 일을 많이 해서 내 마음이 편할 때, 비로소 육신의 병도 낫는 것이 아니겠냐는 것이다.

우천은 그 연세에도 그렇게 건강할 수 있는 비결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집 근처에 있는 양재천을 매일 아침 3㎞, 저녁에 2㎞씩 걷는다”면서 “아침·점심은 잘 먹고, 저녁은 조금 덜 먹으면서 술·담배를 안 하는 것 뿐”이라며 특별할 것은 없고 그저 기본적인 것들만 지키고 있다고 했다.

우천은 이러한 본인의 평소 노력으로 건강을 유지하면서 학계 모임과 강의에 참여하고, 진료도 하는 등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 삼대째 대를 잇고 있는 아들 박석준 씨는 “자식으로서가 아니라 한의계의 한 선배로 볼 때 끊임없이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대단하다고 본다”며 “요즘은 한의사들이 환자들에게 권위로 다가서려는 경향이 있는데 오랜 세월 임상을 해온 부친이지만 어떤 환자에게든 인간적으로 다가서려 하는 모습이 늘 존경스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요즘도 매일 새벽 3시면 어김없이 잠자리에서 일어나 돋보기를 쓰고 책을 읽거나 자료를 모으는 등 연구작업을 하는 것으로 하루일과를 시작하는 우천은 “내 명이 붙어있는 한 사회와 후학들에게 뭔가 하나 도움을 주고 가는 것이 나에게 남은 마지막 바람”이라고 말했다.

강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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