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 한의학은 한의학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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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 한의학은 한의학으로
  • 승인 2004.01.3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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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중 완 (서울 동제한의원 원장)


제임스 머레이는 옥스퍼드 대학의 수학교수였다.
어느 날 그의 어린 딸이 표범은 왜 점박이가 되었느냐고 물었다.
그 자리에서 정확한 대답을 해주지 못한 머레이는 동료인 생물학과 교수들이 그 이유를 알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생물학과 교수들은 멜라닌 때문에 그런 무늬가 생긴다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머레이나 그의 딸에게 이 대답은 충분한 것이 되지 못했다. 충분하지 못한 정도가 아니었다.
그가 보기에 보통의 사람들은 물론이고 과학자들조차도 표범의 얼룩무늬가 어떻게 하여 생겨났는지에 대하여 알지 못하였다. 모를 뿐만 아니라 아무도 그것을 궁금해 하지 않았다.

어린 딸도 궁금해 하는 것에 대하여 과학자들이 아무런 관심도 갖고 있지 않은데다 그들이 제대로 된 답을 할 수 없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래서 머레이는 자신이 그 답을 찾아보기로 하였다. 스스로 만족할 만한 해답을 얻기까지 무려 20여 년이 흘렀다. 마침내 그는 그럴 듯한 수학적 설명을 하기에 이르렀다.

그가 제기한 문제는 “세포가 특색 있는 패턴의 형태로 멜라닌을 생성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즉 “어떤 동물은 점박이로 만들고 또 다른 동물은 줄무늬로 만드는 이유가 대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그가 제시한 답은 ‘반응-확산계’(reaction-diffusion system)라는, 1950년대 수학자들이 제시한 이론적 아이디어를 도입하여 만들어낸 수학적 모델 곧 방정식이었다.
이 방정식에서 피부의 넓이와 모양에 대한 값을 바꾸면 줄무늬, 작은 얼룩, 큰 얼룩 등의 패턴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수학으로 이루어진 세상』에 소개된 이 이야기는 한의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많다.
그 가운데서도 특히 머레이의 전문가적인 태도는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생물학자들의 대답에 만족할 수도 있다. 표범에 관한 한 그들이 전문가 아닌가?

하지만 대답이 만족스럽지 않다고 느껴졌을 때 그는 자신의 전문분야를 통해 해답을 구하려 하였다. 이 점이 중요하다.
현상을 수학이라는 관점에서 해석하고 이해하려는 것이 수학자로서 가지고 있어야 할 기본적이고도 성실한 자세다.
그는 수학자답게 문제를 수학적으로 이해하고 수학적으로 해결하였다.

한의학을 하는 사람은 모든 문제를 한의학 안으로 끌고 들어와 한의학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해야 한다.
한의학 외적인 대답에 만족하는 사람에게 한의학을 향한 진지한 태도를 기대할 수는 없다.
문제를 이해하는 방법도 한의학 속에서 찾아야 한다.
머레이가 동원한 것은 물리학이나 화학의 어떤 성과물이 아니었다.
그는 선배 수학자들이 연구했던 것을 이용하여 문제를 해결하였다. 그는 수학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를 풀기 위해 다른 분야를 끌어들이지 않았다.

한의학의 문제도 그렇게 풀어야 한다. 한의학 내에서 만들어진 아이디어 곧 한의학 이론을 이용하여 한의학의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한의학 외적인 것으로는 한의학의 진면목을 드러낼 수 없기 때문이다.
수학을 수학으로 풀어내듯이 한의학을 한의학으로 풀어야 세상을 위한 한의학을 가치를 제대로 드러낼 수 있다.


■ 필 자 약 력 ■
△서울대 철학과,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 졸업
△경희대 한의대, 경희대 대학원 한의학과 졸업
△경희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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