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 응용은 원리로부터
상태바
[독자칼럼] 응용은 원리로부터
  • 승인 2003.12.12 14:0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ebmaster@http://


오 중 완 (서울 동제한의원 원장)


누구나 알고 있듯이 응용력은 원리에 대한 이해로부터 나온다.
원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원리로부터 연역될 수 있는 모든 경우를 이해한다는 것이고, 그런 모든 경우라는 것이 바로 원리가 응용될 수 있는 외연전체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이 외연에 속하는 사례의 단순한 나열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외연을 꿰뚫고 있는 내포를 먼저 이해하지 않고는 외연을 짐작조차 할 수도 없으므로 응용을 위해서는 먼저 원리의 내포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
의학계열로 인재들이 몰리는 것을 보면서 사람들이 이공계를 육성해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특히 금년의 입시에서는 몇 가지 특이한 현상으로 인해 이공계의 자존심이 무참하게 무너졌기 때문에 ‘이공계 육성’이라는 목소리가 더 커지게 되었다.
이공계 교수들 중에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는 한 교수가, ‘왜 이공계를 육성해야 하느냐’는 질문에 대강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우리나라의 산업과 경제를 지금과 같이 발전시킨 것은 이공계 출신들의 공로다. 요즘 기업에서는, 단추나 누를 줄 알고 자판이나 두드릴 줄 아는 사람 말고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을 대학이 길러서 기업에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한다. 이 말은 단순한 기술자가 아니라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실제로 대표적인 대기업에서는 40% 정도를 물리학과 출신들로 채우고 있다.”

물론 이 말에는 각별한 의도가 들어있으므로,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말단적인 응용기술 보다는 근본적인 원리에 대한 이해를 필요로 하는 단계에 들어가 있음을 짐작하기에는 충분하다.

기업은 생산을 통해 유지된다. 말하자면 응용분야의 최첨단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업에서 기초과학 전공자를, 그것도 상당히 높은 비율로, 채용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삼성전자의 경우는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적인 기업이 되었는데, 거기서도 기초과학 전공자를 그렇게 많이 필요로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첨단으로 갈수록 기초적이고 근본적인 원리에 대한 천착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첨단의 기업이 최첨단을 유지하려면 남들이 하지 않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해 나가야 한다.

그런데 이런 개척은 말단의 응용력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외연의 확대란 내포에 대한 보다 철저한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지금 시대 우리의 한의학은 매우 바쁜 처지에 놓여있다.
내외의 여건이 한가롭게 앉아서 근본을 따질 여유를 갖지 못하게 한다.

우리의 것을 지키기도 해야겠고, 보다 발전된 자리로 나아가기도 해야겠고, 환자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기도 해야겠고, … 이런 문제들을 쫓다보면 우리가 서있는 현재를 파악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욱 더 근본으로 돌아가고 원리로 돌아가야 한다.
여러 가지 새로운 방법이나 견해가 나와야 하지만 동시에 가장 근본적인 부분에서 한의학이 정립되기도 해야 한다.

첨단으로 나서는 사람들은 첨단에서 뒤떨어지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고, 동시에 근본원리를 세우는 사람이 있어 그들이 저력을 만들 수 있어야 한다.
가장 민족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고, 가장 특수한 것이 가장 보편적인 것일 수 있듯이, 가장 근본적인 것이 가장 첨단적인 것일 수 있다.


■ 필자약력 ■
△서울대 철학과, 서울대 대학원 철학과 졸업
△경희대 한의대, 경희대 대학원 한의학과 졸업
△경희대 강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