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정유옹의 도서비평] 당신은 왜 치료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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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정유옹의 도서비평] 당신은 왜 치료하십니까?
  • 승인 2017.03.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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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옹

정유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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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美, 의학과 미술사이

얼마 전 SNS에 화제가 되었던 사진이 있었다. 수술복을 입은 양의사들이 실습한 카데바(의학교육 및 연구목적의 해부용 시신)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은 것이다. 이 사진은 일파만파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되었고 의료 윤리 문제와 결부되어 여론의 지탄을 받았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의사의 모습과는 괴리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전주홍·최병진의 『醫美, 의학과 미술사이』를 읽다보니, 의사들의 이러한 전통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었다. 1632년 램브란트의 작품인 「해부학 수업(The Anatomy Lesson of Dr. Nicoraes Tulp)」에서는 해부학 실습 장면을 화폭에 담았다. 뭔가 어색하다. 카데바의 손만 절개한 것도 그렇고 실습하는 사람들이 카데바에 집중하기 보다는 화가를 보고 있다. 당시 지식인들에게 유행이었던 해부학 교육을 받았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린 것이다.

『醫美, 의학과 미술사이』에서는 시대 순으로 의학과 관련된 작품들이 나온다. 저자는 예술 작품에서 의학사적 의미를 찾는다. 예술가의 눈으로 바라본 의학과 의사들에 대한 시각을 읽을 수 있어 흥미 있었다.

화가들은 고대 의학의 신이라 불리는 아스클레피오스를 그려 건강과 질병의 완쾌를 기원하였다. 그리고 해부학과 생리학의 창시자인 에라시스트라토스나 의학의 창시자라고 하는 히포크라테스와 같은 신화적인 명의들을 작품의 대상으로 삼았다. 또한 16세부터 대학에서 해부학 교육이 실시되면서 실습하거나 정교한 수술하는 장면을 그리기도 하였다.

의사를 보는 시선은 1891년 루크 필즈의 「의사(The doctor)」와 피카소가 1897년 15세의 나이로 그린 「과학과 자비(Science and Charity)」에서 극명하게 갈린다. 필즈는 작품에서 새벽이 다 되도록 아이를 관찰하면서 정성껏 치료하는 의사의 모습을 담았다. 반면에 피카소는 맥박을 잡으면서 당시 과학의 산물인 시계만 보는 의사의 모습을 환자의 어린 아이를 안고 누워있는 환자에게 따뜻한 차 한 잔 건네는 수녀와 대비하여 그렸다.

동시대의 작품이라도 의사에게 바라는 마음에 따라 다른 작품으로 나타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신과 같이 항상 따뜻하게 품어 줄 수 있는 의사, 세련된 지식과 기술로 나의 질병을 깨끗하게 치료해 줄 수 있는 의사, 내 가족처럼 나를 치료해 줄 수 있는 의사 등등 다양한 의사의 상들이 작품 속에 녹아 있었다.

미술에 대해 문외한이지만, 이 책을 읽으며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남들에게 비춰지는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 의학의 신처럼 환자를 조건 없이 사랑으로 보살피며 치료하고 있나? 아니면 카데바 사진을 올렸던 양방의사처럼 의술을 뽐내기 위해 진료하고 있는가? 아니면 먹고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컴퓨터만 쳐다보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가?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값 2만원)

 

사암한방의료봉사단, 한국전통의학史 연구소
정유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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