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약대 6년제 왜 추진하려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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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약대 6년제 왜 추진하려 하나
  • 승인 2003.10.17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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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한 위상 재전문화로 만회 의도
의약분업으로 잃어버린 1차의료인 꿈꿔
늘어나는 수업 한약과목으로 대체 뻔해
전문대학원 설치, 커리큘럼 재조정론 외면


약대 6년제를 둘러싸고 한의계와 양의계의 반대 목소리가 점차 커져가고 있는 가운데 약대 6년제의 진정한 의도가 뭐냐는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약사회 주장대로 학문발전 차원의 순수한 동기에서 출발하고 있는지, 아니면 영역확장의 수단인지 논란이 분분하다.

표면적으로 약사회의 명분은 정부가 약대 6년제 전담추진반을 두기로 발표하면서 든 4가지로 집약되고 있다.

즉, 의약분업 시행이후 약사의 복약지도가 의무화되면서 약물치료효과를 극대화하고, 오남용 피해를 최소화하며, 임상약학, 생명과학분야 등 신지식 습득을 통한 약사직능을 제고하고, 특히 시장개방에 대비해 국제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약학교육제도로의 개편을 위해서 학제연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논리적 결함으로 인해 의료계로부터 공감을 얻지 못하고 있다. 복약지도나 약물오남용 관리는 현재의 지식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인식되고 있다. 임상약학도 의료진을 도와 합리적인 약물치료효과를 거둔다면 좋은 일이지만 학제연장의 사유가 되겠느냐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양약계는 꽤 오래 전부터 학제연장방안을 끊임없이 주장해 왔다.
의약분업론을 30년 주장해서 관철시킨 노하우(?)를 바탕으로 학제연장도 언젠가는 실현시키려는 것일까?
학제연장론의 허와 실을 따져보는 것도 올바른 비판과 대안모색을 위해 좋을 것이다.

□ 갈수록 단순화되는 약사 업무

의약분업은 양약계의 환경을 크게 변화시켰다. ‘약은 약사에게 진료는 의사에게’라는 슬로건을 바탕으로 의약분업을 성공시킨 약사회는 양약의 조제권을 장악하고, 한약분쟁으로 한약의 조제권까지 탈취하는 데 성공했다.

한 마디로 의료인에게 분산되어 있는 조제권을 양약사가 완전하게 확보한 셈이다. 대신 양약사는 임의조제권을 의료인에게 내주어야 했다. 준의료인 자격을 잃게 됐다.

이렇듯 의약분업은 양약사에게 조제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보유하게 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면서도 내면적인 고민을 안겨주는 계기도 되었다.

우선 의약분업은 약사의 위상을 크게 떨어뜨렸다. 이는 비단 의약분업 때문만은 아니지만 의약분업은 약사의 역할을 의약품의 단순 공급자로 전락시켰다.

복약지도나 약물의 이중점검으로 약물 오남용 방지에 일조하게 된 것은 나름대로의 역할이 신장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처방조제나 일반의약품의 판매로는 역할에 한계가 분명해졌다.

더욱이 지난 1백년간 제약산업의 꾸준한 발달로 약사의 기능이 단순화됐을 뿐만 아니라 의약이란 업종 자체가 타 사회직능의 변화속도보다 더뎌 직능의 정체가 심화되었다.

시민사회의 발달로 보건환경이 바뀐 것도 학제연장에 집착하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사회가 다양화, 개성화, 합리화됨에 따라 약의 선택권도 공급자인 약사로부터 수요자인 국민으로 중심이 이동되었다.

약사회 스스로 약국이 갖는 유효성인 공간적 접근성, 경제성, 친밀도 등 물리적 조건의 유효성이 갈수록 박약해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있다. 소비자의 구매력 상승과 서비스의 질적 추구가 기존의 유효성을 능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은 의약분업으로 더욱 가속화됐다. 실제로 환자들은 1차적으로 찾는 보건기관을 과거 약국에서 의원으로 바꾸는 추세에 있다.

□ 전문직능 변신 몸부림치는 약사

사회적, 산업적, 역사적 토양의 변화로 전문직능으로서 위상이 실추됐던 양약사들은 전문직능으로의 재변신에 몸부림치게 됐다. 양약사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식과 기술을 존중받는 길이 전문직화의 필수조건이라고 보고 전문직화에 심혈을 기울이게 된 것이다.

이런 움직임은 1995년 11월 2일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서울시약사회 주최로 열린 ‘21세기 보건의료와 약사’라는 주제의 심포지움에서 그 단초가 엿보인다.

여기서 언급된 내용을 보면 ‘처방조제가 제약산업의 발달 및 자동화로 더욱 단순해져가는 경향을 극복하고 약국 및 약사가 가진 장점과 전문성을 이용하여 보다 환자지향적인 서비스로 접근해가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며…’, ‘의사의 처방에 의한 조제라는 명확하게 구분된 역할 이상으로 약물요법의 전문가로서 약사의 위상을 공고히 하려는 것이 최근의 경향이며…’, ‘의사에 대한 대체인력을 개발하고자 하는 정책과 맞물리면서 간호사나 약사에게 처방권을 주는 문제가 미국에서는 상당한 관심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기도 하다’ 등의 표현이 눈에 띤다.

이런 논리의 연장선에서 나오는 대안은 투약지도 등의 형태로 약물 요법에 관한 약사의 전문적 개입을 강화함으로써 약국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방향으로 약사 업무의 중심축을 이동하는 것이다.

임상약학 혹은 藥療(Pharmacal care), 사회약학으로의 변신도 그런 몸부림의 하나다. 약사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약물요법의 결정과정에 참여하자는 것이다.

결국 약사가 임상에 참여하고 약국은 전문적인 보건의료기관의 하나로 기능하자는 논리와 맥이 닿는다.

더욱 심각한 것은 임상약학, 혹은 藥療 개념의 최종적인 귀착지는 한약이라는 사실이다. 이런 근거는 앞서 언급한 심포지움 자료에 나타나 있다.

자료에 따르면 ‘藥療는 일차적 보건의료전문가로서 약사가 약사-환자 이중체를 바탕으로 양·한방의 상호보완적이고도 합리적인 약물요법을 통하여, 환자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는 목적으로 결과를 끝까지 책임지는 전문적 약국서비스를 일컫는다’고 정의하고, 이어서 ‘藥療가 구현되도록 임상약학의 영역에 양방과 한방을 모두 포함하는 새로운 약물요법의 패러다임을 구축하여… 21세기를 선도하는 세계적 수준으로 자리매김…’이라고 밝히고 있다.

육창수 전 경희대 약대 학장의 발언은 학제연장의 목적이 한약교육에 있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현행 4년에서 6년으로 연장교육을 하고 다시 임상을 하여야 진정한 한약교육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특히 6년제가 된다고 가상한다면 약학대학의 한약교육의 방향은 자연적으로 해결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대한약사회지 Vol. 5 No 3 1994 특집1 韓藥 - 변화와 새 방향에서)

□ “학제연장이 대안일 수 없다”

임상약학이나 사회약학으로의 변신은 필연적으로 약학교육을 재편하는 일이 수반된다. 기존의 약대교육을 제약과 판매 중심의 기초약학 위주로 짜여져 있는 커리큘럼의 무게중심을 임상쪽으로 방향선회하여 보자는 시도가 바로 그것이다. 여기에 학제연장의 동기가 스며 있다.

전문직화하자는 양약계의 취지에 공감이 가는 부분이 없지 않지만 논리적 맹점이 곳곳에 노정되어 있다.

우선 학제연장으로 임상 참여 의지를 호도하려 한다는 발상 자체가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설령 임상약학이 필요하다 해도 전체 면허약사의 2.8%, 신고약사의 5%인 병원 임상약사를 양성하기 위해 1천200명을 일률적으로 2년 추가 교육시킬 필요가 있느냐는 반론에 부딪힌다.

이 경우 경제적, 사회적 낭비라는 주장에 마땅한 답변이 있을지 의문이다.
또 약대 학제 연장이 이루어진 뒤 다른 직능이 학제연장을 주장하게 될 때 교육당국이 어떤 논리로 학제연장을 반대하게 될지 궁금하다.

무엇보다 학제연장에 논리의 정합성이 없다. 약사 스스로 ‘약사의 역할이 교육되는 수준에 비해 실제 수행되는 역할이 비교적 단순하다는 점에서 약사 인력이 재전문화 논의가 인다’고 시인한 것과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배우는 것은 많은데 수행되는 역할이 단순하다면 4년제의 테두리내에서 커리큘럼의 재조정으로 충분히 보완할 수 있다는 의료계의 주장에 대해서도 답변해야 할 것이다.

양약계와 보건당국, 교육당국은 한의계의 주장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양약사의 기본정서가 임상약학에 있다면 학제 연장으로 얻는 추가 과목과 실습을 한약관련과목에 치중하리라 예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설사 과목의 명목은 한약과 관련 없다 하더라도 한약사시험의 전제였던 95학점 중 한약과 전혀 별개의 과목조차 ‘한약관련과목’으로 인정받은 전례가 있었던 만큼 늘어나는 과목을 한약관련과목이라 주장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경우 한약학과의 존재 이유를 일거에 무너뜨리고, 결국 한약사제도마저 부정할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

의료계 전체의 입장에서는 약사의 1차 의료행위가 기존 의료직능의 면허를 침해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보아 반대하는 입장을 갖고 있다.

학문내적인 요인보다 학문외적인 요인에 따라 움직이는 약대 학제 연장안. 전문가들조차 전문대학원과정을 설치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주장하는데 정부는 대통령 공약사항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밀어부칠 태세다. 무리하게 추진되는 이 방안이 현실화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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