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의학의 시사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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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학의 시사점
  • 승인 2015.11.1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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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동

이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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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의계의 현재와 앞으로의 발전 방안은?’ <6> 이선동 상지대 한의대 교수

서양의학의 시사점

지난 글에서는 최근 중의학에 대해서 알아보았다. 그동안 한의계와 소원한 사이에 상당한 학문적, 제도적 변화와 발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번에는 서양의학의 시사점에 대해서 쓰고자 한다.

이 선 동
상지대 한의대 교수
현대의 시대에서 서양의학을 차치하고 정상적으로 의학을 하는 게 불가능하며, 지난 수십년 간 서양의학의 발전과 변화속도는 엄청나다. 그 힘은 무엇이며 한의학을 하는 우리들에게 시사점은 무엇인지 생각해 보고자 한다.

그동안 여러 면에서 한의계와 거의 적대적 관계인데 서양의학의 긍정적인 측면을 한의사들이 보는 신문에 기고하려고 하니 조심스럽다. 과거를 되돌아보면 양 의료인 간에 불필요하거나 필요 이상의 대립과 갈등이 지속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큰 걱정이다.

다만 이 글은 의협이나 의사를 대상으로 하는 게 아니며 서양의학이라는 학문이다. 필자가 아는 범위에서 서양의학의 발전과 변화의 원동력을 잠시 생각해보려고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상당기간동안 한의학의 영향력은 서양의학보다 컸으나 지금은 그 반대이다. 무엇이 그 이유인가? 무엇이 두 의학의 발전을 역전시켰는가?

- 무엇보다도 과학적 방법을 통한 철저한 증명과 입증정신이다.
과학적 방법은 결과를 중시하기보다는 결과가 얻어지는 과정을 중시한다. 가설을 세워서 상식적이고 보편적 방법의 눈으로 보이도록 하는 것이다. 믿는 게 아니라 믿게 하는 것이며 믿을 수 있게 한다. 중요 연구방법은 직접 실험하거나 대조군을 두어 실험 전과 후, 실험군과 대조군 간 차이의 비교를 통해서 새로운 현상이나 가설을 입증한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인류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수많은 원인과 치료법을 확인했고 그 원인을 없애거나 지연시킨 놀라운 방법들을 알게 되었다. 1%의 가설과 99%의 실험, 그리고 1%의 가설수정과 99%의 실험을 셀 수도 없는 횟수를 거듭한다. 이렇게 하여 엄청난 과학적 발견이 이루어졌다.

예를 들어 혈액형을 발견한 카를 란트슈타이너, 인슐린을 찾아낸 프레데릭 밴팅, 콜레스테롤 억제제를 개발한 엔도 아키라, 페니실린을 만든 하워드 플로리, 백신개발을 한 존 엔더스, 종두법의 제너, 여러 세균의 존재를 발견한 루이 파스퇴르, 무려 606번의 실험을 거쳐 얻어진 매독치료제인 살바르산 등 수없이 많다.

가설을 세우고 실험을 하여 증명과 입증하는 과정으로 축적된 지식은 몇 명의 천재에 의해 학문전체가 좌지우지될 수 없으며 잘못된 결과나 지식은 곧바로 사라지게 된다. 학문의 변화속도와 발전은 더욱 빠르게 지속되며, 지식의 반감기도 짧을 수밖에 없다. 한의계의 역사상 천재들인 황제, 장중경, 유완소, 장자화, 주단계, 장계빈, 조헌가 등의 영향력이나 이론도 이러한 과학적 검증방법을 통해서 이미 박물관의 박재가 될 수도 있다.

왜냐면 후세 의학자들에 의해 이들의 의학이론과 치료법을 과학적 방법으로 철저히 검증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반대로 이들의 이론과 효능이 과학적으로 입증되어 더욱 큰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다.

이들 천재들이 제시한 가설이나 경험적 수준의 지식을 증명하고 입증하는 것은 후세의 의학자들의 책임이며 의무이다. 그것을 그대로 받아쓰고 자랑하는 무임승차의 태도는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아직 경험적 수준으로 근거수준이 낮으며 그들의 이론과 치료법이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문이 주관적 사실 또는 객관적 진실수준으로 존재하는 것은 검증과 입증의 전과 후이지만 그 의학적 영향력의 차이는 매우 크다. 주변의 많은 한의사들은 한의학이론이 증명되고 입증되어야 하기 보다는 깨닫고 믿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다. 과학적이라는 것은 진실을 발견하는 더 나은 방법을 찾는 과정이다.

- ‘공개’이다.
자신의 경험과 연구결과를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논문이나 글을 통해 발표한다. 공개의 의미는 긍정적 또는 비판적 평가를 통해 자신의 이론을 점검하는 행위로 학문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결과로 발표한 본인 뿐만 아니라 동료, 소속 학문분야 모두가 발전과 변화의 계기가 된다. 공개된 나의 이론과 가설, 치료법과 남의 방법을 비교연구하여 제3의 새로운 치료법이 등장할 수 있다. 모두가 혜택을 받게 된다.

지난 봄에 한국사회를 뒤흔든 메르스가 유행할 때 필자는 서양의학 전문가들을 자세히 살펴본 적이 있다. 역학전문가, 미생물전문가, 임상의사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연구팀을 즉각 만들어 현장에서 메르스 해결 및 관리방안을 연구하는 것을 보았다.

벌써 메르스 관련 논문이 국내외 각 학회지에 수십 편이 발표되었다. 치료방법의 발전과 변화는 경험, 연구결과 등의 공개에서부터 비로소 시작된다. 2015년 중국의 노벨생리학상을 받은 투유유 교수도 오래전 개똥쑥의 말라리아 치료경험을 누군가가 발표하지 않았다면 가능했을까.

- 근거중심의학과 표준화이다.
근거중심의학은 표준화의 한 수단이다. 전에는 인터넷이나 스마트폰이 없어 각자의 의학적 경험과 치료법을 서로 비교할 수 없었다. 지금은 의학논문이 발표되는 순간 전세계로 퍼지게 되며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비교분석할 수 있는 세상이다.

이들 논문이나 치료법 중에 비슷하거나 같은 수준의 근거를 갖고 있는 방법 중에서 환자에게 최고의 치료효과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을 선택하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적 치료와는 다른 것으로 의사와 환자 모두가 만족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진료의 시작을 과거의 몇 가지 자기가 좋아하는 치료법이나 경험적 치료수단으로 하는 게 아니며 여러 전문가들이 사용한 방법을 환자에게 사용하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 전문가와 같은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

전문가는 학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며 치료의사는 본인의 치료효과를 전보다 높일 수 있다. 경험적 진료야 말로 객관적이지 않는 치료이며 얼마든지 잘못되거나 실수를 할 수 있다. 의료인이나 환자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 있으며 손해이다.

이러한 근거중심의학적 진료 및 표준화는 진료의 안정감과 자신감을 줄 수 있으며 학문의 신뢰성을 크게 높이는 계기가 된다. 환자가 신뢰하게 되고 근거는 더 쌓여 학문이 발전하는 선순환관계의 계기가 된다.

- 적극적 교류 및 수용성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게 없다고 한다. 다시 말하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어디엔가 있다는 뜻이다. 어디엔가 있는 것, 더 나은 것을 받아들여 모방하고 이것을 바탕으로 더 나은 것을 만드는 것이다.

수용성은 현재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더 채우는 노력이며 유연성을 의미한다. 배척, 배제, 고립의 반대이다. 수용성은 발전과 변화를 말한다. 교류와 상호영향을 말한다. 역사적으로 서양의학은 중의학보다 학문적 수준과 발전이 늦었거나 낮은 적이 있다.

그러나 최근은 어떤가? 서양의학은 받아들이고 활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이용했으며 적용했다. 서양의학의 최대목표는 아예 인간의 삶 자체를 서양의학화(medicalization)하는 것이다. 현재는 한의학까지 사용하거나 활용하려고 하고 있다. 서양의학의 영역확대는 끝이 없다.

- ‘현장성’이다.
환자가 있는, 질병이 있는 곳의 어디든 서양의학과 의사가 있다. 응급실에도, 사스, 메르스 같은 전염성질병이 유행한 곳이든. 지난 메르스 유행시 직접적인 치료제가 없어 서양의학의 대단한 공헌은 없었지만 죽음의 현장에서 환자를 지켰던 것은 의사였다.

이러한 모습에 사람들은 감동하고 존경한다. 이 부분은 중의사도 마찬가지였다. 거의 아무런 역할을 못한 채 어느 곳에 있는지의 존재감도 없는 한의사와는 비교할 수 없는 존중감이 있었다. 생명이 있고, 질병의 위험이 있는 곳에 의료인이 있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 철저성과 세밀함, 엄격성이다.
의학은 엄격하고 철저할수록 좋다. 왜냐면 생명은 하나이며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것으로 무엇과도 바꿀 수 없기 때문이다. 의학적 이론, 치료방법이나 관리방법 등 의학적 조치 등의 철저한 점검과 확인이 필요하다. 작은 실수나 잘못, 혹은 확인되지 않은 이론으로 환자의 생명에 나쁜 영향을 줄 수 있다. 효과와 안전성은 의학에서 최소한의 필수요소이다.

다양한 지표나 지수화를 통한 객관화와 수량화가 필요하다. ppm, ppb정도의 측정과 DNA, RNA, protein의 분자, 원자수준의 측정은 대단한 기술이다. 인체 내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정확하고 세밀하게 알아야 의학을 더 잘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너무 세밀하고 철저한 것이 문제가 될 수 없다.

얼마 전 민족의학신문에 한의사들이 생각하는 ‘本治’란 무엇인가의 기사를 보았을 것이다. 토론자인 한의사마다 생각도, 정의도 다른 것을 보고 놀랐다. 표치는 증상만을 해소하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으며 본치는 원인을 치료한다는 인식이 많았지만, 실제로 증상만 치료하는 방법과 원인을 치료하는 방법이 다른가이다. 문제의 심각성은 한의사마다 ‘治病必求於本’의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표치는 각각의 증상중심의 치료이며, 원인치료는 병중심의 치료이다.

잘 아는 것처럼 서양의학도 완벽하지 않으며 아직도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다. 그네들의 좋은 점은 언젠가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열심히 최선을 다해 노력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가설과 이론이 자주 바뀌어 혼란스럽기도 하지만 많은 실험과 연구가 쌓여 안정화되며 이론화되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최근 서양의학의 발전속도는 더욱 빨라지고 있다.

침체의 늪에 빠져있는 요즈음 한국 한의계에 시사하는 점이 많다. 한의계의 어려운 요인을 많은 한의사들은 정부탓, 제도탓 등으로 돌리는 경향이 있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한의계는 최선을 다해 잘하고 있는가이다. 남을 탓하기 전에 우리 자신을 철저하게 되돌아보고 우리의 할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게 먼저라고 본다.

엉뚱한 질문이지만 전통시장이 잘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정답은 무엇보다도 전통시장의 상인이 변하는 것이다. 상인이 변하지 않고는 싼 가격이니, 육성제도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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