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의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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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들의 전쟁
  • 승인 2003.09.19 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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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한 西의학 이론사의 격돌


며칠 전 또다시 1주일간의 여정으로 선생님과 함께 프랑스 파리를 다녀왔습니다.
지난 6월에는 미국당뇨병학회(American Diabetes Association ; ADA)에 참석하느라 재즈의 본 고장을 방문했는데, 8월 23일부터는 제18차 국제당뇨병협회 모임(18th International Diabetes Federation Congress ; IDF)이 유럽 역사의 중심지인 파리에서 펼쳐진 덕택에, 두 달만에 당뇨병에 관하여 세계에서 가장 권위가 있다는 양대 학회를 경험하게 된 것입니다.

이번의 IDF 학회장은 개선문 근처에 자리 잡았던지라, 그 유명하다는 샹젤리제 거리를 덤으로 거닐 수 있었는데, 이틀간의 포스터 논문 발표 후에는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등은 물론 파리 근교의 베르사이유 궁전까지 즐겁게 둘러볼 수 있었습니다.

저녁에는 함께 간 고려대·인하대 교수님과 맥주 한잔 곁들이며 활발한 토론을 벌였는데, 대부분의 과학자들이 그러하듯이, 그분들이 한의학을 경험의학이라 규정하는 듯한 말씀을 하시는 바람에 그만 버럭 목소리를 드높이고 말았습니다. 그분들의 평소 인격으로 볼 때 ‘비하’의 의도는 전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저는 언제부턴가 우리 한의학을 단순한 경험의학으로 치부해서는 곤란하다는 사고가 지배적이었거든요. 취기가 돈 저는 술기운을 등에 업고 칸트가 주창한 ‘先驗的 主觀’, 공간만의 세분화에 집착한 서양의학의 실험방법, 우주와 시공간 및 음양오행 등등을 횡설수설 하였는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는 간밤의 과잉반응에 일말의 부끄럼을 느끼면서도 “토론만은 유의미했다”며 애써 자위하였습니다.

주제, 질, 그리고 그 정도 -오죽하면 제목을 ‘전쟁’이라고 옮겼겠습니까 - 에 있어서 제가 파리에서 겪었던 것과 는 도무지 비교가 안되겠지만, ‘의사들의 전쟁(Great Feuds in Medicine)’ 역시 서양 의학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굵직한 사건들과 그 사건의 중심부에 있었던 의사들끼리의 격렬한 토론을 다루고 있습니다.

저자는 근대 과학의 형성기부터 20세기말까지 인간 생명을 두고 펼쳐진 의학자들의 격렬한 논쟁 10가지 - 하비의 혈액순환론, 생체전기에 의한 근육수축론,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산욕열의 원인 등등 인데 그 중의 으뜸은 베이컨과 관련된 과학적 경험주의에서 나온 최초의 의학적 발전으로 꼽히는 윌리엄 하비의 혈액순환론인 까닭에, 지은이 역시 하비와 갈레노스 학파의 대결 에피소드를 제일 먼저 언급하고 있습니다 - 를 소개하였는데, 저는 이 책을 통해 서양의학 이론의 발전상과 주요 의학자들을 입체적으로 흥미진진하게 파악할 수 있었을 뿐더러, 仁術의 실천자라는 의사 역시 의학지식이라는 권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씁쓸함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 몇 년 사이 우리 한의학계에서의 연구모임이 제가 입 문하던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아주 많아졌습니다. 누구든 자신의 새로운 이론을 발표할 때는 기존의 이론을 부정하고 반박하게 마련인데, 그로 인한 논쟁이 우리 한의학 발전의 촉매제로 작용할 수 있게끔, 열린 토론의 장이 더욱 드넓게 펼쳐졌으면 좋겠습니다. 물론 저 자신부터 학교에 몸담고 있다는 기득권을 포기할 수 있을 만큼 더욱 유연한 사고를 길러야겠지만…….

안 세 영(경희대 한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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