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경 시평] 전통의약과 현대의약의 기로에 선 한약
상태바
[김윤경 시평] 전통의약과 현대의약의 기로에 선 한약
  • 승인 2014.07.17 11:36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윤경

김윤경

mjmedi@http://


김 윤 경
원광대 한약학과 교수
한의사
의심할 바 없이 한의학은 한국의 전통의학이다. 그러나 전통의학 시술자 제도가 없는 대부분의 나라와는 달리 한국은 의사 약사와 대등하게 한의사와 한약사라는 전통의학 관련 전문인 제도를 두고 있다. 따라서 한의학은 세계 속의 한국 현대사회에 여전히 살아 있는 현대의학(modern contemporary medicine)이기도 하다.

때로 사람들은 수천년 간 사용되어온 전통적인 한약에 무슨 새로운 것이 있겠는가, 무슨 신기술이 필요하겠는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한의사는 그저 동의보감만 있으면 되고 한약제제는 그저 물로 추출하여 과립으로 만든 약에 불과하니 여기에는 전문기술도, 전문인력도 필요가 없다는 것인가?

그러나 현대 한의학은 지금도 현대적인 기술을 반영하여 발전하고 있다. 한약의 경우 기술이 필요 없는 분야가 아니며 한약을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기술이 현대한의학의 범주에 포함되지 않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한약은 현대과학이 발전함으로 인해서 한약의 multi compound, multi effect가 Chemical fingerprinting, 각종 OMICS와 Network science 등의 힘을 빌려 군신좌사 등 그 한방원리가 규명되고 있는 중이며 현대적인 제약기술을 적용하여 새로운 배합개발, 용량의 최적화, 효능의 극대화, 복용편리성 강화가 이루어지고 있다. 지금까지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고 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으며, 제대로 볼 수 있는 도구도 없었던 것이다. 한의약은 의약품이 지향하고 있는 맞춤의약, 예방의학을 이미 구현하고 있는 첨단의약이며 전문기술과 전문인력이 반드시 필요한 분야로 현대에 와서야 비로소 빛을 발하고 있다.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로 알려진 잇몸약 인사돌을 아는가? 인사돌 등 옥수수불검화정량추출물 성분의 잇몸약들은 프랑스에서 처음 개발되어 최근까지 국내에서 79개 품목이 생산 판매되고 있었다.

2004년 EU에서 한약제제 규정(European Directive on Traditional Herbal Medicinal Products(THMPD))이 개정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유럽의 전통적인 한약제제들은 반드시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 시설에서 제조되어야 하며 2011년 4월 30일까지 효능입증자료를 제출하여 다시 허가(authorisation)를 받아야 했다. 프랑스 보건당국은 이 규정에 의해 인사돌의 최초개발사에 효능자료를 요구했는데, 이 업체가 기한 내 관련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으므로 2011년 5월부터 인사돌의 프랑스내 판매가 중단되었다. 그로 인해 인사돌의 우리나라 허가근거가 사라지자 식약처가 올해 5월 잇몸약 79개 품목에 대해 임상재평가를 지시하여 임상시험을 하고 효능 입증자료를 제출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79개 제품 중 60개 제품은 허가의 자진취하, 수출용으로 전환하는 방법으로 국내시장에서 철수하였다.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인사돌 외의 제품 대부분이 국내 매출이 미미해 임상시험 비용을 투자하는 것보다 포기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시장잔류를 선택한 동국제약 등 10여개 업체가 10억원 가량의 임상시험비용을 공동부담하여 효능자료를 내년 5월까지 제출하도록 되어있다.

전통의학이 발달하여 천연물기원의 한약제제들이 많이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는 유럽에서도 한약제제를 관리하기 위해 이와 같이 관련 규정을 개정하고 효능자료를 제출하여 재허가를 받도록 하고 있다.

인사돌은 프랑스에서 기원한 천연물 한약제제인 것을 생각해 보면 국내 한약제제에 있어서도 이런 수순을 따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십수개의 국내 오적산 제조업체에 오적산에 대한 임상효능자료를 제출하도록 하면 여기에 투자할 여력이 없는 영세한 제약회사는 허가를 자진취하하여 오적산을 계속 생산할 생각이 있는 제약회사만 남게 될 것이다. 여기에서 전제조건은 물론 임상시험비용을 투자할 만큼 매출액이 일정액 이상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 방법은 생산량이 일정액 이상 되는 품목이나 보험급여 한약제제 등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소수의 제약회사들이 임상시험에 투자하고 그 임상결과에 의해 보험약제로 급여적용 될 수 있도록 하면 한약제제도 효능자료를 갖춘 제품이 급여대상이 되어 국민건강증진에 더욱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몇 년 전에는 다수의 한약처방을 의약품의 표준제조기준 목록에 올린 적이 있었다. 의약품 등 표준제조기준은 오랜 기간 사용해 안전성·유효성이 확보된 의약품, 의약외품의 성분 종류, 규격, 함량 및 처방을 표준화해 제품화할 수 있는 기준이다. 국내 제약사들이 일반의약품을 더욱 쉽게 개발·판매할 수 있도록 표준제조기준에 들어간 제품은 허가 신청자료 일부가 면제돼 제품 개발이 쉬워지고 허가·신고 간소화를 통해 처리기간 단축이 가능하며 신약과 같은 대규모 연구개발 투자를 생략할 수 있다. 표준제조기준에 올라간 이부프로펜 등 배합가능 유효성분들과 감초 등 한약·한약처방들은 별도 허가관련 자료 제출 없이 신고만으로도 판매할 수 있도록 확대되었다. 이 품목들은 서로 배합하여 종합감기약처럼 일반의약품으로 생산 판매할 수도 있다.

한약제제는 이미 기존한약서에 수재된 처방은 안전성·유효성 자료제출이 면제되어 제품개발이 매우 쉽다. 한약을 다시 의약품 표준제조기준에 올려 더 개발이 쉽도록 할 필요가 없다. 우리 스스로 한약을 도매금으로 넘길 필요가 있는가? 한약사용이 저조한 것은 제품개발이 어렵기 때문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안전성·유효성 정보가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한약은 전통한의학이냐 현대한의학이냐의 기로에 서 있다. 한약에 필요한 것은 전통적인 한약서에 적혀 있다는 이유로 안전성·유효성 자료제출을 면제해주는 제도가 아니라 현대사회의 현대인들이 납득할 수 있는 의약품으로서의 품질 및 안전성·유효성 정보를 갖추어 허가를 받도록 하는 제도이다. 이제는 다성분 프로파일도 다효능의 임상적 입증도, 새로운 배합의 한약제제도 가능하며 미국이나 유럽 등은 이미 10년 전인 2004년부터 그 방향으로 가고 있다.

한의약은 전통의약이기보다는 현대의약이다. 적어도 21세기 현대를 사는 한국에서는.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G9in 2014-07-17 16:48:09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고는 이가탄 CF입니다만.(냉무)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