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특집 특별인터뷰] 허창회(한의협 명예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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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특집 특별인터뷰] 허창회(한의협 명예회장)
  • 승인 2003.07.11 1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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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 없으면 학문의 발전 없다”
최대의 걸림돌은 시대에 따라가지 못하는 법


10년전 한약분쟁이 한창일 즈음 과천에서 광화문에서 마이크를 들고 목이 터져라 외치던 사람이 있었다.

유난히 달변으로 토해내는 그의 연설은 그대로 한의계의 미래비전이었으며 당면한 투쟁의 지침이 되었다. 그는 젊은 회원들의 역동적 에너지를 이끌어냈다. 일에 임해서는 번뜩이는 기지를 발휘하고 때론 뚝심으로 밀고나가 역경을 기회로 승화시키기도 했다.

그가 바로 허창회(56) 한의협 전 회장이다. 1993년 3월 17일 당선된 이래 만3년간 한의협 회장을 맡아 분쟁의 최일선에서 한의사조직을 진두지휘했다.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는 무슨 생각을 하며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런 궁금증을 갖고 경기도 수원시 팔달문 근처에 있는 한의원을 찾았다. 전투의 지휘관이던 그는 환자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평범한 한의사의 모습 그대로였다.

시간이 흘러 지금 다시 방대한 한약분쟁을 되짚어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해야 하는 일이라면 결과를 갖고 시작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던진 첫 번째 질문이 한약분쟁의 성과였다. 허 회장의 답변은 의외로 간단명료했다. 그는 분쟁의 성과를 “정부와 국민이 한의학과 한의사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는 것으로 정리했다. 분쟁을 계기로 정부는 한의학 전담부서를 신설함으로써 한의학정책을 추진할 단초를 열었고 국민들도 한의사를 사회지도층으로 인정하게 됐다는 것이다.

광범위한 피해의식이 한의계를 뒤덮었던 분쟁 이전과 비교하면 엄청난 성과라고 한다.

◆ 올바른 명분과 방법이 힘의 원천

그렇다면 그런 힘이 도대체 어디서 나왔을까. 허 회장은 그런 힘의 비결을 이렇게 설명한다.

“당시 한의사의 힘은 약사회와 비교하면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도 맞서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명분이 옳았고 국민의 정서에도 부합됐으며, 회원 하나하나가 집행부를 믿고 따라줬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한의사의 두뇌가 우수했다는 점도 중요한 성공요인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명분이 맞고 방법까지 좋아 강력한 힘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지요.”

물론 허 회장의 상황판단능력, 순발력, 용인술, 조직운영능력이 없었으면 그만한 성과를 내기 어려웠을 것이다.

적어도 당시 허 회장과 함께 활동했던 참모진들은 그렇게 말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허 회장은 초점이 지도력에 맞춰지자 이내 부담스러운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는 잠시 생각을 더듬은 뒤 “다른 것은 몰라도 판단력만큼은 비교적 정확했다”고 밝혔다. 일하는 과정에서 많은 정보를 접한 것이 판단에 도움이 됐다는 것이다.

예나 제나 그의 상황판단력은 여전했다. 의약분업시 양의사의 최대 실수는 약무정책과가 담당토록 방치했던 것이라고 꼬집는 대목에서 그의 판단력은 아직도 녹슬지 않은 듯이 보였다.

그는 남다른 추진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재임중 한의협 앰블럼을 만들어 외적인 변화를 시도했는가 하면 내부적으로는 슬로건을 구상해내 회원들을 하나로 결집시켰다.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게 만들어놓았던 법과 제도 앞에서 절망하기보다 ‘시대에 앞서가는 세계 속의 한의학’이라는 슬로건을 창안해냄으로서 이후 한의협의 회무시스템을 수세에서 공세로 전환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냈다.

실제로 허 회장은 도전을 겁내지 않는다. 오히려 도전을 발전의 계기로 삼는다.

“기성의 학문은 끊임없이 도전받는 것이고, 도전받아야 발전합니다. 도전이 없으면 자만심이 생깁니다. 자만심은 곧 학문이 사라지는 첫 번째 조짐이지요.”

현실을 겸허하게 인정하면서도 옳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적극 대처해야 한다는 의지가 묻어난다.

한약제제나 의료기사지도권 문제에 대해서도 입장이 단호했다. 겉으로는 한의학을 발전시켜 주겠다고 공언하면서도 한의약육성법과 의료기사지도권은 반대하는 태도 속에는 한의학에 대한 무지와 편견이 자리잡고 있다고 꼬집는다.

한의사에게 진단기기를 쓰지 못하게 하는 양의사나, 제형만 편리하게 복용토록 바뀌었을 뿐인 한약제제를 양약처럼 취급하는 양약사 모두 변한 게 없다는 게 허 회장의 판단이다.

그래서 허 회장은 현직에서 물러난 지 7년여가 흘렀지만 늘 마음은 한의학 발전에 있다. 특히 한약의 주종이 첩약에서 제제 중심으로 소리없이 이행되는 시점에서 한의계의 명운이 한약제제에 걸려 있다고 보고 최근 관련 법 제정 동향을 예의주시 하고 있다.

전문가가 한약과 한약제제를 취급해야 한다는 게 한약분쟁의 정신이라면 국민의 건강을 위해서나 미완의 한약분쟁을 마무리 하기 위해서는 한의약법의 제정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허 회장은 미완이 역사를 완성해주기를 한의계에 바라고 있다. 한의학이 한의학다운 모습을 되찾고 한의사의 사회적 참여도 더욱 촉진되었으면 하는 마음은 여타의 한의사와 다르지 않다.

◆ “장학사업 하는 재미 쏠쏠”

허 회장은 요즘 환자 진료에 몰두하는 한편으로 장학사업에도 쏠쏠한 재미를 붙인다고 귀띔한다. 고향마을 초·중·고·대학생을 대상으로 운영되는 ‘청운장학회’ 일을 주관하면서 동네가 단합되는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현직에서 물러나도 마음만은 언제나 한의협에 머무는 허 회장. 그의 마지막 당부의 요지도 “한의협을 중심으로 단합하자”는 것이었다. 한의계 최대의 위기를 이끌어나간 지도자답게 한의사의 대표단체인 한의협에 대한 애정이 짙게 배어 있었다.

수원 = 김승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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