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163] 醫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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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163] 醫本
  • 승인 2003.06.27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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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런 필치로 적은 醫業의 本分


사실 이 典雅한 한 권의 필사본 의서가 누구의 손에 의해서 언제, 어디서 저술되었는지 전혀 밝혀져 있지 않다. 작성자의 서문이나 다른 사람의 발문도 없기 때문에 집필경위나 배경 역시 알 수 없다. 다만 160여 쪽에 달하는 본문에 요모조모 담긴 내용이 여느 醫方書 못지 않게 조목조목 알차게 구성되어 있다.

내용을 개괄해 보면 총론에 해당하는 服藥法, 服藥食忌, 藥性相反, 合藥吉日, 服藥吉日, 求醫療病日, 避病方이 먼저 수록되어 있고 본문의 각 조문은 짤막하게 구절을 나누어 空圈을 치고 구분하였다. 또 각 구절 아래에는 『동의보감』식으로 출전을 약호로 밝혀 놓았는데, 대개 寶鑑, 本草, 東垣, 入門, 直指, 類說 등의 방식으로 간략하게 표기하였다. 合藥吉日, 服藥吉日, 求醫療病日, 避病方 등의 내용은 오늘날 다소 생경한 느낌이 들 수 있겠지만 『鄕藥集成方』이나 『撮要新書』와 같은 조선 전기의 문헌 속에 드물지 않게 등장하는 메뉴이다.

병증 각문은 風, 寒, 暑, 內傷, 虛勞, 氣, 神, 血, 痰飮, 五臟, 小便, 大便, 頭, 眼 등 별다른 특징이 없고 다소 무질서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수록 처방과 내용은 『동의보감』이후 새로운 임상기법을 보충한 색다른 것이 많이 들어 있다. 예컨대 虛勞편에 수록된 戊戌酒, 羊肉湯, 鷄膏와 같은 것은 고기와 藥料를 결합한 老人補養方으로 오늘날 많이 애용하는 개소주나 염소육즙, 닭곰탕 같은 것의 元祖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 용법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원래 戊戌酒는 노인의 원기를 보충하기 위한 처방으로 찹쌀밥 서 말과 개고기 육즙을 버무린 다음 누룩을 넣어 발효시킨 것이다. 羊肉湯은 陽虛에 쓰는 음식처방으로 생강, 계피, 건강 등 助陽材를 첨가하였다. 또 鷄膏는 원래 가난한 집안에서 虛症에 인삼을 살 돈이 없다거나 血燥肺火에 인삼 대용으로 쓰던 방법으로 생도라지, 생강, 官桂, 산사와 黃栗 등을 넣어 만든 것이었다.

또 ‘透鐵關法’이란 특수요법 한 가지를 소개해 보자. 耳聾에 쓰는 방법으로 대추씨 만한 질 좋은 자석 두 덩어리를 구해 麝香을 조금 찍어 발라 양쪽 귓구멍에 막아 놓고 입안에 한동안 生鐵을 머금고 있으면 귀가 뚫려 말소리가 들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 방법은 磁氣場을 형성하여 耳內壓을 조절하는 방법으로 비침습적이며 약물의 동반 상승효과를 거둘 수 있어 유효한 치료법이며 발상이 매우 기발하다. 이미 『동의보감』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기재되어 있으니 참고해 볼 만하다.

解毒門 烟熏毒에는 생 무즙을 마시라고 되어 있는데 炭熏頭痛에도 역시 蘿복汁을 마시거나 씨를 갈아 먹이라고 되어 있어 60~70년대 그 흔하던 연탄가스 중독사고에 동치미 국물을 마시게 하던 것이 이런데서 비롯되었음을 뒤늦게 깨달아 씁쓸한 미소를 머금게 한다.

약물에 관한 설명 중에는 의외의 이야기도 있다. 補陽藥의 대표격인 紫河車에 대해 “대개 이 약물은 식용하면 안 된다. 예전에는 쓰지 않았는데 근세에 들어 흔히 먹게 된 것이다”라고 비판하였다. 이 약은 사람의 胎盤을 말하는데 混沌衣라고도 부른다. 이미 陳藏器의 『本草拾遺』에 등장하였으나 조선에서는 윤리적 문제로 상용화되지 못했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 燈点法에는 입춘 전날 물에 불린 燈心을 햇볕에 바짝 말려 두었다가 여름철에 꺼내서 등불을 켜면 모기를 쫓을 수 있다고 하니 한번쯤 실험해 볼 일이다.

한편 ‘夫婦相愛法’이란 구절을 읽어보면 ‘布穀鳥’라는 이름이 등장하는데 뻐꾸기의 한자식 표기다. 뻐꾸기는 ‘伐谷鳥’라고도 부르는데 잘 우는 새로, ‘布穀’은 뻐꾸기의 울음소리를 본뜬 것이리라. 『大東韻府群玉』에 써있는 그 유래는 다음과 같다. 고려 예종 때 자신의 정치에 대한 여론을 듣고자 言路를 개방했으나 신하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므로 이를 한탄하며 뻐꾸기에 비유하여 ‘布穀歌’를 지었다고 전한다. 여하튼 5월 5일 단오일에 뻐꾸기의 다리와 머리뼈를 차고 있으면 부부 금실이 좋아지게 된다고 하니 따라 해 볼 수는 없지만 夫唱婦隨를 그리는 옛사람의 애틋한 바램이 투영된 것이리라. 마지막 장에 적힌 ‘救民水火, 是直指事, ……’란 필사자의 題辭가 이 책의 집필의도를 대변해 주고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 상 우
(02)3442-1994[204]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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