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162] 救急易解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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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162] 救急易解方
  • 승인 2003.06.2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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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기 쉽게 풀어쓴 經驗救急方


燕山君이 재위 4년(1498) 內醫院 都提調 尹弼商, 提調 洪貴達, 副提調 鄭眉壽, 內醫 金興壽 등 관리들에게 명하여 급한 병에 필요한 약방을 알기 쉽게 한글로 풀이하여 편찬케 한 책이다. 이 해에는 조선에서 처음으로 醫科 고시가 시행된 해이기도 하여 여러 모로 의미가 깊다하겠다. 이 책은 이듬해인 1499년 왕명으로 校書館에서 인쇄하여 반포하였으며 초간본은 실전되어 발견되지 않고 있다. 이를 비롯하여 이 책은 적어도 세번 이상 간행된 것으로 확인되며, 중종 15년(1515) 乙亥活字로 重刊된 바 있고 다시 중종 18년(嘉靖癸未昆陽刊本, 1523)에 목판으로 인쇄되었다. 그러나 이 두 가지 판본에는 모두 언해부분이 빠져 있어 현재 이 책의 언해를 볼 수 없다.

洪貴達의 서문에는 “…… 撮諸方中病之最急, 藥之易得者, 編成別方, 飜以諺字以進, 旣乃賜名, 曰救急易解方”이라하여 이 책의 편찬의도가 명확히 밝혀져 있다. 또 당시 兵曹參判兼同知春秋館事의 직에 있었던 權健의 발문에는 이 책의 발간 경위가 약술되어 있는데, 꼼꼼히 살펴보면 편찬 당시의 의료정책 방향과 집필 방식까지도 엿볼 수 있다. 그는 여기서 “…… 그간 이미 편찬한 集成, 類聚, 救急方과 같은 책들이 있지만 너무 분량이 방대하여 실용에 적절치 않거나 너무 간략하여 빠진 것이 많거나 아니면 오직 국내산 약재만을 고집하여 모자람이 있다. 모두가 이 책처럼 넓게 수집한 다음 요지만을 거두어 압축하되 중요한 것을 빠뜨리지 않은 것만 못하다”고 지적하였다.

바꿔 말해서 「향약집성방」 「의방유취」로 대표되는 조선 전기에 이룩된 방대한 의약학 성과가 구급분야의 실용에 적합하도록 압축되는 과정을 밟고 있는 것이다. 또 한편으론 「향약구급방」 「향약집성방」으로 이어지는 麗末鮮初의 향약개발 정책이 병용하는 쪽으로 선회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다. 이 책을 두고 鄕藥方이 점차 쇠퇴하고 唐藥 의존의 기운이 싹트는 시기의 것이라고 보는 논점이 제시되기도 했다.

한편 홍귀달은 세조 때 梁誠之의 건의로 실시된 전문교육과정인 諸科六門(天文, 風水, 律呂, 醫學, 陰陽, 史學, 詩學)에서 교육을 받은 명문자제 출신으로 이른바 인재육성책에 의해 계획적으로 양성된 전문인력이었다. 또 권건은 이미 1489년 尹壕, 任元濬, 許琮, 朴安性 등과 함께 「의방유취」에서 「구급방」에 없는 내용을 보충하여 「신찬구급간이방」 9책을 편찬하는데 동참하였고 이 공로를 인정받아 성종으로부터 포상을 받기도 하였다. 또 1504년에는 金諶과 함께 허종의 사망으로 미처 완성하지 못한 채 방치되었던 「의문정요」 50권을 내의원에서 교정하여 간행하는데 주도적 역할을 하였다.

內醫 金興壽는 「왕조실록」의 편찬기사에 등장하는 인물 중 유일한 實職 의원이다. 1488년(성종 19) 의술로 堂上醫官에 敍品되고 1489년 세자의 瘡疹을 치료한 공로로 말과 안장을 하사받은 내의 金興守와 동일인으로 보인다. 그는 1491년 僉知中樞府事에 올랐으며 1494년 2월 왕명으로 우의정 許琮의 치료를 전담하였고 元孫이 태어나자 嘉善(從二品階)에 승급되는 영예를 누렸다. 「太醫院先生案」에는 본관은 昌原이고 ‘資憲(正二品階)知樞(知中樞府事, 正二品官)’에 올랐다고 기록되어 있다.

목차를 통해 내용을 일괄해 보면 中風, 中寒, 傷寒, 傷風, 中暑, 中濕, 眼疾, 齒病 등 각종 육음병과 잡병으로부터 小兒驚癎, 小兒啼, 瘡疹에 이르기까지 일상생활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구급성 질환에 대한 대처법이 76항목에 걸쳐 실려 있다. 또 한 가지 빠뜨려서는 안 될 것은 卷末에 붙은 本朝經驗이다. 瘡疹에 관한 경험단방 몇 조문이 수록되어 있는데 결손이 심해 전문을 판독하기는 어렵지만 「창진집」에 붙어 있는 본조경험의 내용과 유사하여 여기서 요약 발췌한 것으로 여겨진다.

序跋, 目次, 刊記와 49장의 본문을 합하여 56장의 분량에 불과하지만 세종치세에 국가백년대계의 미래 비전을 갖고 착수한 한글 창제와 의약기술의 진흥책이 점차 실생활에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단계를 보여준다고 평할 수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 상 우
(02)3442-1994[204]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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