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160] 朝鮮解語花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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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160] 朝鮮解語花史
  • 승인 2003.06.07 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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醫女制度에 관한 연구보고서


無能居士 李能和(1869~1943)가 남긴 저작 중 하나로 역대 기생들의 역사와 실상을 밝힌 책이다. 그의 나이 58세인 1927년 신활자로 인쇄하여 翰南書林에서 처음 간행하였으며, 이때는 朝鮮佛敎通史, 朝鮮巫俗考, 朝鮮女俗考가 나온 직후였고 뒤이어 朝鮮基督敎及外交史 등 그의 역작이 출판되었다. 이 책은 삼국사기, 삼국유사, 고려사, 조선왕조실록 등 정사와 野史, 각종 文集에서 수집한 자료를 근거로 삼국시대로부터 조선 말기에 이르기까지 역대 기녀들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소상히 고증하여 밝혀놓았다.

제목의 “解語花”란 ‘말을 알아들을 줄 아는 꽃’이란 뜻으로 妓生을 일컫는 말인데, 속내를 알고 보면 그리 고상하다고만 볼 수 없다. 조선의 歌客들은 흔히 창녀를 “海棠花”에 비유하곤 했는데 이는 기녀들이 일반인의 생활주변 가까이 머무르면서 여러모로 영향을 끼쳤던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한편으로는 가장 소외된 계층이었음을 암시한다.

하지만 정작 우리가 이 오래된 연구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다른데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책의 8장에 나타나는 醫女에 대한 기록 때문이다. 이것은 아마도 간호사나 여성 의료 인력에 대한 최초의 역사적 접근이자 본격적인 연구의 성과를 담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은 제목만큼이나 흥미로운 내용을 많이 수록하고 있으나 지면관계상 모두 소개할 수는 없으며 醫女와 針婢에 대한 부분만 살펴보면, 太宗六年醫女始設, 三南童女選上敎訓, 經國大典醫女記事, 醫女治療術, 醫女從良及招遊問題, 內侍醫女, 醫女不許入內, 醫女衣服依京妓例, 醫女入內 看護王妃, 針婢醫女 各占風流, 醫女闕額 擇定諸邑, 醫女服飾, 醫女畵讚 등이 수록되어 있다.

의녀 제도는 조선 태종임금 때 濟生院事 許도의 건의로 처음 설치했다고 하며 부인환자만을 치료했다고 적고 있다. 애초에는 제생원에 속해 있다가 후에 혜민서에 소속되었다.

의녀의 선발은 三南의 官婢 중에 나이가 어리고 영리한 자를 뽑아 올렸으며 鍼灸術을 가르쳤기 때문에 의녀는 반드시 鍼筒을 차고 다녔다. 의녀 중에 內醫院(內局藥房)에 속한 사람은 기생을 겸했으므로 藥房妓生이라 불렀으며 기생 중에 가장 기품이 높은 것으로 여겼다는 기록도 있다.

선발된 의녀들에게는 먼저 글자를 깨우치고 醫方을 習讀시켰을 뿐만 아니라 孝經, 正俗篇 등의 글을 가르쳤다. 실록 기사 외에도 經國大典에 이들의 교육과 선발과정에 대해 좀 더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이들이 공부한 주 교과서는 바로 銅人經과 纂圖(纂圖脈訣)였으며 診脈과 點穴에 대해 시험을 보았다. 이들은 애초에 따로 선발하여 교육이 이루어졌으므로 기생과는 하는 일이 달랐지만 별도의 급료가 없었으므로 妓生의 예를 따라 월 1섬의 給米를 지급하였다.

또 선조 때에는 의녀 愛鍾이 뛰어나다고 하여 入診시키고자 하였으나 왕은 애종이 의술을 알지만 娼女라는 이유로 內庭의 出入을 허락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런 기사로 미루어 의녀가 모두 기생을 兼業한 것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숙종 때 편찬한 『典錄通考』에는 의녀의 衣服은 京妓의 예를 따르도록 한 것으로 보아 직책은 다르지만 신분상의 처우와 급여 등 제반 복무조건이 기생을 기준으로 이루어졌던 것으로 여겨진다.

또 자세히 살펴보면, 저자가 醫女와 女醫의 표현을 구별하여 사용하지 않고 있는데, 女醫는 중국 고대 문헌에도 드물지 않게 등장하는 용어로 오늘날의 여성의사에 해당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간호사 혹은 진료보조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는 醫女제도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조선조 의사제도와 의녀의 역할직능이 이처럼 분명하게 나뉘어져 있었다는 근거는 보이지 않으나 좀더 심도 깊게 고찰할 필요가 있는 부분이다. 또 醫女가 妓業을 겸했다는 이능화의 말에 대한 신빙할 만한 역사기록은 갖추어져 있지 않다. 다만 조선시대 여의이든 의녀이든 비천하고 열악한 대접을 받았던 것만은 분명해 보이며, 그들은 여성으로서 어려운 여건에도 불구하고 예능인 혹은 기술직 전문 직업여성으로서 선구자적 모습을 남겼다.

한국한의학연구원 안 상 우
(02)3442-1994[204]
answer@kiom.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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