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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3.05.30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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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본질 추적하는 지적 추리물


C선배 및 J원장과 했던 약속을 지키고자 조금 노력하다보니, 최근 한 달 동안은 통 책을 읽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C선배의 권유로 시작한 이 도서비평, 아니 책 소개 또한 지키지 않으면 안될 약속이었고, O기자가 말한 원고마감기한도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던 탓에 집에 있는 책들을 살피다 ‘뇌’라는 제목을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큰아들은 ‘뇌’보다는 ‘개미’를 강추하였지만 직업병(?!)인지 저는 ‘뇌’를 선택하였고, 不惑을 넘긴 나이에 걸맞지 않게 날밤을 꼬박 샜습니다.

베르나르 베르베르(Bernard Werber)! 모국인 프랑스보다 우리나라에서 더 사랑 받는다는 이 작가의 이름 - 발음이 비슷한 탓인지 저는 이 천재 작가의 이름을 뇌까릴 때마다 黃連의 지표물질성분이 자꾸 떠오릅니다 - 을 들어보지 않으신 분들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원제가 ‘최후의 비밀’인 듯한 이 ‘뇌’라는 소설은 베르베르의 일곱번째 장편인데, “우리는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가?”라는 話頭를 던지면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펼쳐갑니다.

대강의 줄거리는 유명한 의학자 사무엘 핀처가 컴퓨터 Deep Blue Ⅳ를 꺾고 세계 체스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날 밤 약혼자와 사랑을 나누다 목숨을 잃게 되자, 그의 돌연사에 의문을 품은 탐정 이지도르 카첸버그와 여기자 뤼크레스 넴로드가 함께 수사를 진행하면서 이른바 ‘최후의 비밀’에 차츰 다가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일견 진부한 작품이 될 수도 있지만, 저자는 책 뒷면의 빡빡 머리 사진 그대로 흡사 禪僧 마냥 인간 본연의 존재론적 질문을 줄곧 견지함으로써 보통의 추리소설과는 격이 다른 풍미를 제공합니다. 사람 냄새 물씬 풍기는 글귀 - “세상 모든 컴퓨터의 지능 을 다 사용한다 해도 여전히 부족한 세 가지는 웃음, 꿈, 어리석음이다” - 는 거의 덤이라고 할까요?

그런데 책을 읽다가 탄복한 것은 저자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번역을 담당한 이세욱 님의 글 솜씨가 너무 말끔 했던지라, 마치 ‘역서의 전형’을 발견한 듯 망외의 기쁨을 누린 점도 무척 컸거든요. “요즘처럼 더운 날엔 ‘아베크 팜므 라메르 퐁당’하고 싶다”는 우스갯소리 말고는 ‘옹숑숑 꽁숑숑’한 프랑스어에 대해서는 아는 바 없어 역자의 번역 능력을 평가할 자격은 없겠지만, 저는 이세욱 님이 원서를 최대한 우리말로 매끄럽게 잘 표현하였고, 적절한 각주로써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 한편 잘못된 것은 바로잡기까지(예 : 베르그송은 베르크손의 誤記이다) 하는 등, 모범적인 번역서의 귀감을 보여주었다고 느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것은 세 가지밖에 없습니다. 행위와 말과 생각이 바로 그것이지요. 사람들이 흔히 간주하는 것과 는 달리, 제가 보기에 말은 행위보다 강하고, 생각은 말보다 강한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사람들의 생각 중에서 단지 그들이 표현하는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입니다. 당신은 무엇 을 생각하고, 또 무엇에 이끌려 행동하는지요?

경희대 한의대 안 세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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