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피소드가 있는 한의원(4)… 제 1화 에피소드가 있는 한의원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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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피소드가 있는 한의원(4)… 제 1화 에피소드가 있는 한의원③
  • 승인 2012.01.01 1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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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규

김중규

mjmedi@http://


배려가 부족한 문화

다음날, 다른 날 아침과 별반 다름없이 진료실은 노인들로 북적댄다. 여느 시골의 한의원과 마찬가지로 한의원에는 고령의, 그리고 퇴행성 동통질환이 대부분인 현실, 가끔 60세의 할머니가 80세 할머니에게 “새댁이는 아직 젊은데 여는 말라꼬 왔노” 이런 핀잔을 받는 곳. 대한민국 시골 한의원 풍경이다.

간밤에 마신 술로 온몸에 진동하는 냄새를 차단하기 위해 손이며 목덜미며 알콜을 살짝 바르고는 “이게 먼 술 냄샌교?” “허허... 소독약 냄새 아임니까?” 얼버무리며 허리 어깨 무릎 발, 무릎 발을 만지작거리다 보니 밥 때가 온다.

“에 또 오늘은 뭘 먹는당가.....?”  궁리중인데, 목에 스카프를 두른 수경이와 엄마가 한의원 문을 열고 들어선다. 모녀를 원장실로 데리고 들어간 뒤,  “수경이 이노옴... 너 어제 뭘 잘못한지 알고 있어?” 푹 숙인 고개, 금방이라도 떨어질듯 눈망울엔 소금기가 그득하다. 수경이 엄마가 입을 연다.

“원장님 어제는 정말 우리 부부 머리를 잘라서 짚신을 삼아도 못 갚을 은혜를 입었심더. 이거 약소하지만 꼭 받아주소” 내미는 바구니는 손으로 한 아름이나 되는 그득한 크기다.

“이게 뭡니까?”

“꽃등심으로 맛있는 걸로만 골랐슴니더. 이걸로 인사가 되겠습니까마는, 그라고 부탁이 좀 있니더. 우선 야가 목맸다는 거는 비밀로 좀 해주이소. 동네 남사스러버서. 그카고 야 약 좀 지어 주이소.”

수경 엄마의 말은 계속 이어졌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지들 반에서 누군가 돈을 만원인가, 얼마인가를 잃어버렸는데 누군가가 수경이를 지목했고, 선생님조차 아이를 윽박질렀다는 것이다. 그리고 엄마가 학교에 불려가고 엄마마저 선생님 말이 맞겠거니 하면서 돈을 내어놓고 온 적이 있었다고. 그러자 수경이가 눈물을 쏟으며 말한다.

“진짜 그때 내가 안 했니더.”

“그때부터 너무 분하고 공부도 하기 싫고, 너무 억울해서 어어엉엉…”

삐뚤어진 아이들 뒤에는 항상 삐뚤어진 어른이 있다. 내 아이를, 그리고 나의 학생을 탓하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는 배려가 부족한 문화가 아쉽게 다가온다. 엄마가 말을 잇는다.

“그래서 혹시 야한테 적당한 약이 있는동 싶어서요.”

아이를 침대에 눕히고 맥을 보았다. 엄청 요동치는 삭맥(빠른 맥), 복진을 위해 배를 걷어올리고 만져보는데, 배꼽 밑에 손을 대었을 때 무언가 파바박하며 뛰어가는 듯한 박동. ‘흐미.... 이게 뭐당가’ 속으로 되뇌면서 다시 만져보았다.

평소 자주 보던 제하계(배꼽아래에서 느껴지는 박동)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동계. 속으로 ‘이거 책 좀 봐야되겠는 걸’하면서 다른 증상들을 들어보았다. 불안, 심계, 불면, 현훈, 오심....수족랭, 식후 비만, 심한 생리불순….

“어머니 좋은 처방을 한번 강구해보입시다. 간단히 생각할 문제가 아이니 낼 다시 오이소.”

그날 밤은 술이 없어도 심심하지가 않았다. 이리저리 책을 뒤지느라….<계속>


김 중 규 / 포항 한국한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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