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의계의 난관, 한의사 탓인가 한의학 탓인가
상태바
시평 | 의계의 난관, 한의사 탓인가 한의학 탓인가
  • 승인 2011.10.20 08:56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기왕

김기왕

contributor@http://


한방의료의 입지가 줄어들고 있음을 걱정하는 소리가 자주 들린다. 이러한 걱정이 객관적 사실을 반영하는 것인지는 알지 못하나 의료보험 점유율 변동, 한의원의 주된 치료 病種 변화, 한의대 입학성적 추이 등을 보면 경각심을 가질 필요는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지금껏 이에 대한 답은 흔히 외부의 요인을 지적하는 것이 주종이었던 것 같다. 즉 현대의 의료시스템이나 현대사회의 하부구조가 한방의료를 발전시키기에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 때문인지 그간 한의계는 국가의료시스템 안에서의 소외를 극복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이는 어느 정도의 성과를 이루었다고 생각한다.

이제 더 중요하게 고려해야 할 것은 우리 내부의 문제가 아닐까 한다. 헌데 이처럼 내부의 문제로 논의의 초점이 맞추어지면 문제의 원인이 종종 ‘구성원의 문제’로 귀착되곤 한다.

한의학은 선조들이 물려준 훌륭한 자산이지만 못난 후손들이 이를 갈고 닦지 못해 빛을 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까이는 윤리적 문제가 있는 일부 한의사에 대한 비판으로부터 시작하여, 지금의 한의사들이 과거의 名醫만한 실력이 없다거나, 기득권에 집착해 한의계의 발전을 막는다거나, 아니면 초보적인 양방지식에도 어두워 의사들로부터 비웃음을 산다거나 하는 등등의 갖가지 비난을 쏟아내곤 한다. 후배들은 후배들대로 아무것도 해 놓은 것이 없는 선배들을 질책하고 선배들은 선배들대로 주체성 없이 시류에 휩쓸리는 후배들을 아쉬워하는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의 어려움이 과연 한의사의 탓일까? 아니다. 예를 들어보자. 90년대 초부터 약 10여 년간 한의대는 전국의 수재들이 모인 고급 두뇌집단이었다. 그 전후의 기간에도 크게 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사회에서 자리를 잡아가고 있는 지금, 한의계는 충분한 질적 성장을 이루었는가.

이것은 굳이 한국에서의 상황만은 아니다. 이름을 밝힐 수는 없지만 필자와 각별한 관계에 있는, 평소 미국의 실력을 무척 높이 평가하시던 교수님 한 분이 십여 년 전 미국 국립보건원(NIH)에서 막대한 예산을 쏟아 부으며 대체의학연구를 시작했을 때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이제 그들이 연구를 시작했으니 10년 뒤에는 지금의 한의계와는 질적으로 다른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놓을 것”이라고.

하지만 별로 달라진 것은 없는 것 같다. 약간의 성과가 있다면 ‘이러이러한 믿음은 사실이 아니다’는 부정형의 명제들이 많이 쌓이게 되었다는 것이랄까.

노벨상 수상자들이 모여 한의학연구를 하면 뭔가 달라질까? 글쎄다. 지금 한의계가 당면한 성장지체의 상황은 결코 ‘일부 몰지각한’ 한의사나 시대에 뒤떨어진 한의계 구성원들 때문에 초래된 것이 아니다.

그 주범은 무엇인가? 모두 알고 있지만 말하려 하지 않는 것, 그렇다 바로 한의학 자체다. 학문의 기저가 믿을 수 없는 도그마로 가득 차 있다면 제아무리 뛰어난 재주를 가진 사람이 덤벼들더라도 이를 입증하거나 발전시켜 갈 수 없다. 분자생물학, 양자역학… 별의별 도구를 동원해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답은 분명하다. 바로 우리의 학문을 바꾸어야 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정말 솔직해 질 필요가 있다. 애꿎은 한의사 탓하지 말고 문제의 원천을 정직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학문의 개조를 말하면 무언가 거창한 것으로 생각하여 지레 포기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다. 하지만 일본의 한방의학도 종래의 한의학(금원의학)으로부터 상당히 개조된 학문이었고, 오늘날의 중의학도 과거의 한의학(청대까지의 한의학)보다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가진 개조된 학문이다. 우리에게 요구되는 수준은 이보다 더 큰 비약적인 개조이겠으나,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본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학문의 개조만이 작금의 난관을 헤쳐 갈 최종적 답이자 불가피한 해답이란 것이다.

문제의 본질을 직시하자. 그리고 지적 도약을 위한 용기를 갖자.

김 기 왕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인창식 2011-11-09 00:21:36
합리적인 의문과 문제제기입니다 개인적 수월성 탓으로 돌려왔던 한의학의 치료성과, 학문적 논리, 과학성 문제를 집단지성으로 학문의 힘으로 해결해야 할 때입니다
김기왕 교수님과 같은 많은 분들의 건전한 문제의식이 한의학을 더욱 합리적이고 강력한 학문과 임상으로 발전시키는 성과로 이어지길 기원합니다 논란과 의문을 외면하거나 철학담론화해 논점을 흐리는 한편으로 허술한 옛 도그마를 고수하는 모습도 사라져가겠죠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