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4)-서울시 동활인서 복원 추진 위원회 이경성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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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4)-서울시 동활인서 복원 추진 위원회 이경성 원장
  • 승인 2011.09.01 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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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윤 기자

정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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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 지식, 한방문화제 복원사업에 제공

홍익한의원 이경성(50) 원장은 ‘서울시 동활인서 복원 추진위원회’ 위원장이다. 한의계에서 조차 한방 문화재 복원에 대한 관심도가 적고 할 일이 많은 작업이지만 이 원장은 기꺼이 총대를 멨다. 얼마 없는 한방문화재를 복원하는 일이 한의사가 가진 지식을 사회에 기부하는 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의사가 사회공헌에 이바지하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이경성 원장을 만났다.

 

동활인서 복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경성 원장
숨이 넘어갈 듯 봉두난발의 여인이 진료실로 뛰어 들어왔다. 품 안의 아이는 두 돌이나 지났을까. 젖먹이 어린아이였다. 경기(驚氣)인 것 같다는 여인의 말과 달리 호흡이 이상했다.  젊은 한의사는 가운을 입은 채로 아이를 안고 응급실로 달려갔다. 그러나 한 시간 반쯤 뒤, 아이는 숨을 거두고 말았다. 한약방을 운영하셨던 부친의 영향으로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약재에 관심을 가졌고 의구심 없이 한의사의 길을 선택했던 청년 한의사는 이 일을 계기로 ‘좋은’ 한의사가 되기 위해 주먹을 굳게 쥔다. 그가 바로 이경성 원장이다.

 

병이 아니라 사람을 보라

“그 때가 1986년도였습니다. 졸업한 후 바로 임상가로 나와 환자를 진료하기 시작했을 무렵이었지요. 신참 한의사로써 당시의 자괴감은 컸습니다. 몇 달 동안 머릿속에 ‘조금 더 다른 방법으로 했다면...’이라는 생각이 떠나지 않았지요.” 지금이라면 더 여유 있게 대처했을 것이라며 말끝을 흐리는 이 원장의 눈가엔 회한이 감겨들었다.

“진료 시작 후 5~6년 동안은 면허증 뒤에 숨어있었습니다. 면허증이 있기 때문에 한의사로서의 자격을 갖추었다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7~8년이 지나니까 면허증에 의존했던 제 자신이 부끄럽더군요.”
한의학의 특징 중 하나가 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보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사람의 가치를 우선하고 환자들을 돌본다는 이 원장의 진료실에는 면허증 대신 각종 기관에서 받은 감사패가 한쪽 벽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그것은 대학생 때부터 시작해 25년이 넘는 이 원장의 봉사활동이 무료진료를 비롯해 다양한 분야에 기여하고 있음을 가늠케 했다.

한의사의 지식 나눔도 봉사

“무료진료를 해왔지만 그것을 ‘봉사’라고 생각한 적은 없습니다. 한의사와 환자가 서로 필요한 존재를 인식하게 될 때 환자들은 편안함을, 한의사들은 만족감을 느끼게 되지요. 그러면서 공감대가 형성되고... 저는 봉사가 아니라 서로 ‘나누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 원장은 한의사가 가진 지식을 사회에 기부하는 ‘지식봉사’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전통의학을 다루는 만큼, 한의사들은 전통과 역사에 능통한 경우가 많습니다. 그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지역봉사위원회에서 활동할 때 지식봉사과정이 있었는데 당시 관직자들이 동네 이름을 바꾸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역사적인 지식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 때 제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 일조할 수 있었지요. 한의사로서 보람 있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원장은 한의사들은 전통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에도 그에 대한 자각이나 관심이 적은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동활인서 복원을 꿈꾸며

이 원장은 ‘동활인서 복원을 꿈꾸며’라는 이름으로 네이버에 카페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애초의 계기는 이랬다. 사상의학에 특히 관심이 많았던 그는 98년부터 십 년 동안 사상의학 관련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박물관과 도서관을 이 잡듯이 뒤졌다. 급기야 매주 목요일마다 휴진하며 사상의학 관련 자료를 모으는 일에 몰두했다. 그러는 동안 역사 속으로 사라진 한방 문화재들의 흔적이 이 원장의 눈을 아프게 찔렀다.

“혜민서나 내의원 등 한방 문화재는 소중한 문화 자산입니다. 조선시대에도 (한의사)선배님들이 활동하고 있었지만 남아있는 자료가 많지 않기 때문에 더욱 소중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네이버 카페를 통해 각각의 한의사들이 알고 있는 조선시대 한방진료법 등의 지식을 모아 다른 기능자들에게 제공을 한다면, 그래서 한방 문화재인 동활인서가 복원된다면 한의사들에게도, 사회에도 좋은 일이 되겠지요.”

동활인서는 조선시대 대표적인 서민들의 질병치료 기관으로 도성의 병난 사람을 구료하고 치료하는 곳이었으나 그 외에도 무의탁 병자 수용, 전염병 발생 때 병막 가설, 환자에게 음식, 약, 의복 배급 및 간호 그리고 사망자의 매장까지 담당했던 의미 있는 한방 문화재다.

십년 뒤에도 이십년 뒤에도 언제나 꿈을 꾸는 한의사이길 바란다는 이 원장은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고 새로운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한의사로 살아가고 싶다며 나름의 포부를 밝혔다.

정지윤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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