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스테로이드 한약 문제와 10년 전의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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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스테로이드 한약 문제와 10년 전의 사건
  • 승인 2011.07.28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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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경

김윤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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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에서 한약은 스테로이드가 함유되어 있어 효과가 좋은 것으로 부작용을 조심해야 한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제는 널리 퍼져 일반인들도 누구나 이런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지 않을까 싶다. 이에 대해서는 어떤 한의사라도 할 말이 많을 것이다.

“한약재에 식물성 스테로이드(phytoste rol)라고 하는 스테로이드 구조를 가진 물질들이 존재하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의료용 전문의약품인 합성 스테로이드 호르몬과는 전혀 달라 부작용도 전혀 없으며 우리가 매일 섭취하는 콩이나 도라지, 감자에도 식물성 스테로이드가 포함되어 있다.”

또는 “감초의 경우 주성분인 글리시리진이 대사되어 체내에서 자연적 스테로이드 호르몬의 분해를 저해하는 효과가 있으나 감초를 사용하여 부작용이 나타나려면 하루에 50g 이상 장기간 복용하여야 하는데 한약에 함유된 감초의 용량은 일반적으로 하루에 6∼8g으로 이용량으로는 스테로이드 호르몬과 같은 부작용이 나타날 수 없다.” 등 여러 전문가들이 의견을 내기도 했다.

필자도 연구를 하면서 에스트로겐과 동등한 효과를 내거나 에스트로겐의 효과를 향상시키는 한약재들은 많이 보았지만, 양방의 합성 에스트로겐인 DES(Diethyl stilbestrol)나 부신피질 호르몬계열 합성 스테로이드인 Dexamethasone처럼 강력한 효과를 나타내는 한약재는 아직까지 본적이 없다.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먼저 한약이 내분비질환에 많이 사용되며(불임, 성장, 골다공증, 비만, 당뇨 등) 식물성 스테로이드들이 포함되어 있고 내분비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한의사들이 주체적으로 연구하여 어떤 효과가 있는가에 대한 과학적인 데이터를 내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쪽의 오해에 대해서는 또 한 가지 예전 일이지만 우리가 알아둬야 할, 여러 가지 생각을 해보게 하는 사건이 있었다는 것을 알리고 싶다.

PC-SPES는 황금, 인삼, 감초, 영지 등 8가지 한약재로 이루어진 미국의 건기식 제품으로  전립선암 증식을 막는 효과가 보고되어 미국 암연구소에서 전립선 암 환자에 대해 임상시험이 진행 중이었다. 그러나 제품이 비교약물인 DES보다 좋은 효과를 나타내 검사를 해본 결과 PC-SPES 제품 내에서 합성에스트로겐인 DES와 혈전 용해제인 Warfarin, 항염증제인 Indomethacin 등의 양약이 검출되었다.

그러자 2002년 임상시험은 즉각 중단되었으며 제품들은 시장에서 퇴출되고 회사(BotanicLab)는 고의적으로 양약을 첨가하였다는 의심을 받고 바로 문을 닫았다. 물론 회사는 phytocoumarin이 warfarin과 비슷하다고 항변하고, 제품의 각 batch에서 검출된 양약들의 양이 일정하지 않았으며, 1998년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게재된 논문에서는 DES나 에스트로겐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것을 들어 다른 제품도 같이 만드는 공장(중국)에서 제조시 혼입된 것이라고 주장하였으나 소용없었다.

실제로 PC-SPES제품은 표준화가 되지 않아 batch별 함량이 제각각이었으나 임상시험용 제품이 품질관리도 되어 있지 않고 GMP(Good manufacturing practice)시설에서 만든 제품이 앞서 만든 다른 제품이 혼입된다는 것은 어불성설로 아무도 들어주지 않았다.

이 사건은 10년 전의 일로 한의사들에게는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은 것 같으나 유수 의학저널에 효과에 대한 논문도 여러 편 나오고 관심의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 의료계에서는 더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고의인지 실수였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근 한의원에서 사용한 제품에서 스테로이드가 검출되었던 사건과 오버랩 되기도 한다.

한약이 의약품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가져야 할 의약품의 엄격한 기준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해주며, 사실 GMP규정도 이런 여러 사건들을 겪으면서 점차 발전하여 온 것으로 시설기준보다는 의약품 제조에 필요한 조건을 맞추기 위한 실무과정이 주가 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사건의 재발을 막기 위해서는 한의사들이 한약과 관련된 최신지견에 관심을 갖고 의사로서 스스로 우리가 쓰는 약에 대해서 전문지식을 갖추고 의약품급의 인식을 가져 한약의 엄격한 관리가 가능해야 한다고 본다. 또한 한약이 전문가 손을 떠나 상업적인 업자와 결탁될 경우 얼마만큼 전락할 수 있는지도 보여준다. 한약의 현대화, 제품화에 한약사와 같은 보건의료 전문인이 필요한 이유라고 하겠다.

김윤경 / 원광대 한약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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