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491) -「養花小錄」 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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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491) -「養花小錄」 ①
  • 승인 2011.06.02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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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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草木과 만물이 養生하는 이치

이제 綠陰이 우거져 山色이 날로 짙푸르게 바뀌고 있다. 누구라도 산으로 들로 뛰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앞서게 된다. 조선 세종대에 활약한 문신 학자인 仁齋 姜希顔(1418∼1465)은 산천유람을 통해 浩然之氣를 기르기 보다는 집안에서 화초를 키우면서 자연과 만물이 조화를 이루면서 생을 영위하는 양생의 이치를 궁구하였는데, 이때 얻은 화초 기르는 법[養花]과 자연을 사랑하는 법을 담아 「養花小錄」이란 특이한 책을 남겼다.

강희안은 1441년(세종23) 식년문과에 급제하여 돈령부 주부로 벼슬을 시작하였다. 1443년 정인지 등과 세종이 지은 正音 28자에 대해 상세한 해석을 남겼으며, 1445년에는 최항 등과「龍飛御天歌」를 주석하였다. 또 1447년에는 이조정랑으로서 최항·성삼문·이개 등 집현전 학자들과 「東國正韻」 편찬에 참여하였다. 1455년(세조1) 세조가 등극한 후 동생인 姜希孟과 함께 원종공신 2등에 책봉되었으나, 1456년 단종 복위 운동에 연루되었다는 혐의를 받아 고초를 겪었다.

그는 성품이 온화하고 조용하여 말수가 적었으며, 청렴하고 소박하여 출세에 연연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시·서·화에 모두 뛰어나 安堅·최경과 더불어 三絶이라 불렸다. 그가 그린 그림으로 高士觀水圖, 山水人物圖, 江湖閑居圖 등이 전하는데, 산수화·인물화 등 모든 부문에 뛰어났다고 전한다. 또한 세조대 활자를 새로 주조할 때 그가 쓴 글씨로 字本을 삼았는데, 이 활자가 바로 乙亥字이다. 훗날 성종대에 이르러 조선 최대의 의방서인 「의방유취」를 간행하는데 사용되었다.

본문에 앞서 강희맹이 쓴 養花小錄敍와 저자의 自序가 달려 있다. 본문은 老松 萬年松 烏斑竹 국화 매화 蕙蘭 瑞香花 연화 石榴花와 百葉 梔子花 등으로부터 시작하여 꽃을 분에 심는 법[種盆內花樹法], 꽃을 빨리 피게 하는 법[催花法], 꽃이 꺼리는 것[百花忌宜], 꽃을 취하는 법[取花幷法], 꽃을 기르는 법[養花法], 화분 놓는 법[排花盆法], 꽃나무 간수하는 법[收藏法], 꽃을 기르는 뜻[養花解]까지 모두 25항목에 이른다. 본문이 끝나고 나선 ‘인재의 시고 뒤에 붙임[題仁齋詩稿後]’이라는 서거정의 글이 실려 있다.

원작은 동생인 희맹이 조, 부, 형의 행장과 시문을 모아서 한 책으로 엮은 「진산세고」 권4에 수록된 것인데, 1471년부터 시작하여 1473년에 이르러서야 함양군수였던 金宗直에 의해 처음으로 간행되었다. 그 이듬해 강희맹의 서문이 판각되었고 1476년에 진주로 옮겨 다시 간행될 때 발문이 덧붙여졌다.

강희안은 이 책의 서문에서 사람이 양생하는 이치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파하였다. “화초는 한낱 식물이니 지각도 없고 운동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배양하는 이치와 거둬들이는 법을 모르면 안 된다. 건습과 한온을 알맞게 맞추지 못하고 천성을 어기면 반드시 시들어 죽을 것이니 어찌 싱싱하게 피어난 참모습을 드러낼 수 있겠는가? 하찮은 식물도 이러하거늘 하물며 만물의 영장인 사람이랴! 어찌 그 마음을 애타게 하고 그 몸을 괴롭혀 천성을 어기고 해칠 수 있겠는가? 내 이제야 양생하는 법을 알았다.” 가히 하찮은 화초를 기르면서 거룩한 삶의 가치와 양생의 이치에 대한 깨달음을 얻은 것이다.

이 책은 각종 약용식물에 대한 자연관찰의 결과와 재배, 종식법을 적고 있어 본초학적으로 참고할 가치가 있을 뿐만 아니라 초목의 생육과 사람이 양생하는 이치를 견주어 살펴볼 수 있어 양생의학적 측면에서도 매우 의미심장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다음 회에 본문에 실려 있는 내용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아보기로 하자.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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