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과 기술이 발달한 현대에도 이럴진대 과거의 전염병들은 어떠했을까? 서구 의학계에서는 중세에 혹독한 흑사병(페스트)을 겪은 이후로 전염병 유행의 역사적 의미와 인간의 대응에 관한 연구가 이루어져, 문화사 및 생활사로 역사 연구의 영역을 넓혀 왔다. 그리하여 흑사병은 몽골군이 유럽을 공격하던 1332~1333년 사이에 옮겨진 것으로 보고 있다. 이로 인해 유럽 인구의 1/3이 감소되어 노동력이 부족해지고 영주와 농노의 관계가 변화되며, 교회의 효과적인 대처가 없었기 때문에 봉건영주 계급인 교회의 특권과 영적인 권위가 쇠퇴하였다. 전염병은 다른 질병보다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매우 컸기 때문에 사람들의 심성과 문화적 흐름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이 책은 이러한 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전염병의 유행이 고려사회의 문화에 끼친 영향을 탐구하고, 당시 전염병에 대응하기 위해 국가가 보여준 노력과 전염병이 사회문화적으로 끼친 영향을 찾아본 5가지 연구결과이다.
이 같은 연구는 비록 고려시대를 국한하여 이루어진 것이지만 아직 세밀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그러나 많은 전염병의 발생을 놓고 볼 때 서구의 전염병이 해마다 수백만의 많은 인명을 앗아가는 것에 비하면, 같은 시기의 고려의 그것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으리라. 고려시대 475년 동안 전염병은 35회 발생하여 평균 13.6년 마다 일어났고, 그 가운데 수많은 인명살상이 일어난 때는 대부분 전쟁 수행기에 전염병이 파급되어 피해가 컸다.
구체적인 인명피해의 정도가 어느 정도인지 통계가 없기 때문에 확실히 알 수는 없지만, 「조선왕조실록」의 졸기(卒記)에 나타난 조선시대 초기의 평균 사망나이가 61.9세였으나, 중기에 64.9세로 증가하고 말기에 69.3세로 더욱 증가하는 것으로 보아, 당시 의학적 발전은 질병대책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쳤으리라고 본다. 특히나 고려 고종 때의 「향약구급방」과 같은 구급의서나 「향약혜민경험방」과 같은 각종 경험의서들은 몽고군의 피해를 통해서 경험한 전염병에 대한 최소한의 방책이 담겨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조선시대 전염병 대책을 발전시킨 각종 의서에 담겨 발전한 바, 이제는 한의학도 전염병 대책에 적극 나서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값 2만 5천원)
金洪均 / 서울 광진구 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