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 한방의료의 기준, 도구인가 원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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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 한방의료의 기준, 도구인가 원리인가
  • 승인 2011.05.05 10:59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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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왕

김기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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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방의료’에 대한 重層的 정의 필요
학문의 지속가능성, 일관성 전제돼야

근래에 어떤 진료행위가 한방의료에 포함되는 것인지 그렇지 않은지를 두고 논란이 된 적이 여러 차례 있었다.

전산화단층촬영(CT), 근육내자극요법(IMS), 펄스광에 의한 색소치료(IPL) 등을 둘러싸고 한의사와 의사가 법적 분쟁을 겪은 바 있다. 또한 법적인 분쟁까지는 아니지만, 한약재를 새롭게 응용하여 만든 각종의 약들을 과연 한약으로 볼 것인가 하는 점도 여러 차례 논쟁의 주제가 된 바 있다.

이런 논란의 중심에는 ‘무엇이 한방의료행위인가?’라는 근원적 질문이 자리 잡고 있다. 과연 그 판단 기준은 무엇일까?

아쉽게도 이에 대해 한의계는 일관성 없는 모습을 보여 왔다. 과거 오랜 기간 한방의료행위를 판별하는 기준은 해당 행위가 ‘한방원리’에 근거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한약응용제품이나 근육내자극요법을 둘러싼 최근의 논쟁에서는 사용되는 도구를 근거로 그것이 우리 것이라 주장하고 있다. 아이피엘(IPL) 시술에도 비슷한 논리가 동원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아예 한방의료 여부의 판별 기준을 원리에서 도구로 바꾸었다고 대내외적으로 천명하면 어떨까?

좋지 않은 생각이다. 외부에 우리 자신이 일관성 없는 집단임을 보여주게 될 뿐만 아니라 한의학과 한방의료의 영역을 한약과 침, 뜸과 같은 특정 도구에 한정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의사들은 (양방)의료행위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 답은, ‘정의하고 있지 않다’이다. 그들은 “(의사의) 의료행위에 대해 미리 한정적이고 확정된 개념 정의를 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고 말한다(손명세, 한방의료행위의 표준화 시급, 청년의사 2001년 12월).

그렇다면 우리도 같은 입장을 취하는 것이 좋을까?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인다. 또한 한의학이 지속적인 발전을 하려면 최소한 현대의학이 갖고 있지 않은 원천적 내용을 가지고는 있어야 될 것 같다.

그렇다면 최선의 방책은 무엇일까? 과거 시평에서 지적하였듯이 한의사는 한방의료의 수행자이자 일차보건의료를 담당해야 할 의료인이다. 현행 의료법은 의료행위와 한방의료행위가 다르다고만 규정해 두었을 뿐 한의사의 업무와 의사의 업무 사이에 존재하는 꽤 넓은 공통 영역에 대해서는 설명하고 있지 않다.

때문에 의사들에게는 의학적 원리가 적극적으로 개입되는 의료행위와 단순한 현대기술의 응용이 모두 그들의 권한 영역으로 간주되는 반면, 한의사에게는 오직 한의학적 원리와의 연관을 분명히 입증할 수 있는 의료행위만이 인정되고 있다. 한의사가 정상적인 일차보건의료를 수행하기 위한 최소한의 한·양방 공통영역에 대한 인정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방의료 자체에 대해서는 어떻게 규정하는 것이 좋을까? 다소 중층적(重層的)인 정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현대 학문의 흐름을 살펴보면 방법론보다는 학문의 대상으로 해당 학문을 규정하는 경향이 뚜렷하다.

이를 한의학에 적용시켜 보면 대략 ‘침구와 한약을 연구하는 학문’이라고 한의학을 정의할 수 있겠으나 이런 정의에는 ‘인간의 몸’이라는 중요한 대상이 빠져있다. 몸 자체에 대한 탐구는 거의 전부 현대의학이 담당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한의학도 몸 자체에 대한 탐구를 놓아서는 안 될 것 같다.

따라서 침구학, 방제학과 같은 치료 도구를 중심으로 정의할 수 있는 영역과 변증학과 같이 몸 자체를 중심으로 정의할 수 있는 영역을 중층적으로 정의하는 것이 한의학에 대한 적절한 규정이 아닐까 한다. 한방의료행위 역시 이에 준해서 정의해야 할 것이다.

다만 도구가 되었든 원리가 되었든 이러한 모든 논의에서 전제되어야 할 것은 학문의 지속가능성과 내적 일관성, 그리고 보편타당한 입장일 것이다.

김기왕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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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창식 2011-05-04 15:11:35
침구, 한약, 몸(변증) 연구로 정의한다면 한방의료는 일차보건의료를 담당하는 의료인(양의사가 되겠죠)의 판단 범위 이내에서 침구요법 한약요법을 시술하는 보조기사 정도 성격을 띠게 될 겁니다. 일차보건의료는 어불성설이며 침구-한약-몸(변증) 연구 6년 교육은 너무 낭비가 심합니다. 환자에 대한 종합적 합리적 판단, 치료전략 수립이라는 의료인의 핵심 역할을 너무 무시하시는 듯합니다. 의료인은 단순기술자가 아닙니다.

김기왕 2011-05-05 01:21:55
인창식 // 한의사의 직무 범위는 제 글에서 말한 '한방의료 자체'와 한양방 공통 의료행위, 이 두 가지를 합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창식 2011-05-06 05:27:49
만일 가까운 장래에 침 한약 변증이 비합리적이고 더 이상 환자평가치료에 크게 도움이 안된다는 점이 명백해지면 한의학 대학교육이나 전문가의 의견표명이나 임상현장에서 침 한약 변증은 더 이상 한방의료가 아닌 것으로 굳어질 수도 있습니다. 황제내경 편찬자들이 귀신 발병론을 배격하고 음양오행이라는 더욱 보편타당한 설명방식을 택했던 것처럼요. 도그마의 우상은 모든 진실추구와 학문임상활동의 큰 장애물일 뿐입니다.

김기왕 2011-05-06 14:05:40
인창식 // ① 학문의 자유로운 발전, 한의학도 예외가 아닙니다. 당연히 침, 뜸, 변증 등을 벗어나 자유롭게 발전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최소한 현대의학과는 다른 것이어야 합니다.

김기왕 2011-05-06 14:11:42
인창식 // ② 한의사의 진료 권한 설정과 '한의학'(또는 '한방의료')의 범위(현 시점에서) 설정은 별도로 논하자는 게 윗 글의 한 가지 주장입니다. 업권에 관한 논쟁에 대해서는 '의료일원화'가 최적의 답이라 생각합니다. 다만 '한의학'의 범위에 대해서는 일원화 이후에도 논의가 필요하고 이에 대해서는 '정직성'이 중요합니다. 서구에서 만들어진 각종 대체의학을 우리것이라 주장하는 것은 지양해야 할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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