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487) - 「痘兒神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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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487) - 「痘兒神方」
  • 승인 2011.05.05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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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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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든 아이의 슬픈 표정

조선 고종 재위 연간에 작성된 것으로 보이는 두창전문서이다.

필사본으로 서발이나 범례가 남아 있지 않고 간행 경위가 밝혀져 있지 않아 민간의 의원들 사이에서 인인전수로 전승된 두창치료 경험방을 적은 것으로 여겨진다.

 

경험두방의 본문
본문에는 「經驗痘方」으로 표기되어 있으나 표제는 ‘痘兒神方’이라고 전한다. 왠지 모르게 책에 그려진 어린아이 얼굴이 인상적이어서 표지서명이 더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본문에 앞서 제일 앞부분 첫 장에는 어린아이의 얼굴을 그려 놓고, 그림 위에 두창이 발생하는 각 부위 명칭과 그에 따른 길흉을 圖示해 놓았다.

특히 얼굴 그림 아래 쪽에는 “손발에 나오는 것은 길하다.(手足出者吉)” “허리와 등에 나오는 것은 흉하다.(腰背出者凶)” 등등 두창 발생 부위에 따른 병증 변화의 예후를 길흉으로 나누어 기록해 놓아 독자의 이해를 돕고 있다.

면부는 髮際와 턱(頤)을 위 아래로 印堂, 山根, 人中, 承漿, 觀骨, 眉稜, 天庭, , 耳背 등의 부위에 소속 장부나 색깔 혹은 길흉 여부가 빼곡히 적혀있다.

이 책은 出見三日, 起脹三日, 貫膿三日, 收合三日, 痘後餘證, 痘後雜症, 發熱 등으로 구별되어 있다. 이러한 증후변화에 따른 구분도식은 任元濬의 「瘡疹集」, 허준의 「痘瘡集要」, 朴震禧의 「痘瘡經驗方」을 거치면서 자리 잡은 두창 등 전염병 치료에 있어서의 한국의학의 특징적인 면모로 눈여겨 보아야 한다.

본문에는 주요 문장마다 위쪽 여백에 쉽게 찾을 수 있도록 색인용 표제를 붙여 놓았다. 예를 들면 ‘출현삼일’ 대목의 윗부분에 해당 조문을 쉽게 찾도록 ‘喘’ ‘黑’ ‘紫’ ‘痒’ ‘熱不快’ 등의 축약어를 붙인 것이 한 예이다.

처방은 본문 중간에도 나오지만 뒤쪽에 ‘藥方’편을 따로 두어 처방약물을 정리해 놓았다. 그리고 두창의 병증이 주로 피부에 나타나는 특징을 감안해서 경락에 따른 약물을 온(溫), 량(凉), 보(補), 사(瀉) 4가지 카테고리로 갈라서 논하고 있다.

예를 들자면, 心手少陰경에 “溫法에는 당귀, 작약, 오수유, 육계, 창출, 백출, 석창포를 쓴다”라고 써 놓았다.
권미에는 ‘異痘’라는 항목이 들어있는데, 이것은 두창 가운데 일반적인 범주를 벗어난 특이한 변종을 별도로 기술한 것이다.

한편 이 책에는 ‘丁茶山先生秘傳方’이라고 적어놓아 원작자를 茶山 丁若鏞(1762∼1836)으로 밝히고 있다. 하지만 과연 다산이 이 책의 저자라는 명확한 증거는 아직 발견되지 않고 있으며, 후대 소아과와 관련한 적지 않은 경험방서에 다산의 이름이 가탁되어 있는 것을 감안할 때 다소간 의심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아마도 두창과 마진 등 소아과질환 치료에 명성을 떨쳤던 다산의 행적과 민초들의 기대 심리가 근세에 이르도록 이런 형태로 어우러져 전승된 것이 아닐까? 저자에 관한 논란은 앞으로 좀 더 전문적인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다.

아울러 이 책의 맨 끝부분에 “己巳至月四日謄此于新垈書堂”이라고 밝혀져 있어 대략 고종 6년인 1869년 무렵에 謄本을 抄寫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조선후기 민간의 의원들이 당시 조선 전역에 유행하던 두창을 치료하던 중 얻게 된 경험처방들을 기록한 전문서적의 하나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

본문 47장에 불과한 필사본 소책자로 원서는 서울대도서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한의고전명저총서 웹서비스에서 검색하여 이용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조선후기 두창에 스러져가는 어린 생명들은 구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기울였을 의학자들의 노고가 배어나오는 듯 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어린이날을 맞이하는 감회만은 아닐 것이다.

안상우 / 한국한의학연구원 동의보감기념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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