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의약 통한 외연확대에 너무 치중
학문 재창조 통한 한의영역 개발해야”
근래에 “당신은 부모입니까, 학부모입니까?”로 시작되는 공익광고를 여러 매체에서 볼 수 있었다. 앞뒤가 바뀐 우리의 교육 현실을 고발하는 의미 있는 광고였다.
그런데 질문을 바꿔 “당신은 한의사입니까, 보건의료인입니까?”라는 질문을 던져 본다. 한의사는 의료법에 규정된 대로 한방의료에 종사하는 사람을 말하고 보건의료인은 일체의 보건의료 수요에 대해 현재로서 최적의 진료를 제공하는 사람이다.
사실 임상 현장에 있는 모든 한의사는 보건의료인으로서 의무를 지니고 있다. 법정 전염병에 대해 규정된 처리를 해야 하고 격식에 맞는 사망진단서도 작성해야 한다. 법적인 의무를 떠나 지역사회 주민들에게 한 명의 주치의로서 그들의 건강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임을 지닌다.
그런데 한의사로서 우리의 역할은 무엇일까? 글자 그대로 한방의료에 종사하는 것일 텐데, 무엇이 한방의료인가에 대해 논란이 많다. 이것은 바로 ‘한의학이란 무엇인가’라는 한의학의 정체성 규정과도 직결되는 문제다. 어떤 분은 현재의 한의사들이 행하고 있는 모든 진단 치료를 한의학의 외연으로 간주해야 한다고 하고 어떤 분은 소위 정통 한의학만이 한의학이라고 말한다.
오늘날 한의사의 진료 현실을 살펴보면 한의학의 고유 영역은 너무나도 작은 것 같다. 본 시평을 통해 한의 변증명 사용을 확대하기 위한 조치가 필요함을 거듭 역설했음에도 불구하고 대책은 물론이고 관심조차 미미했던 것을 보면 한의사들의 진료 현장에서 변증시치는 아주 작은 부분만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 나머지는 무엇이 채우고 있을까? 사실상 양진한치에 지나지 않는 변병치료(辨病治療), 한의 고유 이론과 별 관련 없는 대증치료들, 그리고 서양의학 주변에서 성장해서 수입된 각종 대체의학이 그 자리를 빠르게 메워가고 있다.
이제 한의사의 수가 2만명에 다가서고 있다. 이 많은 인력이 보건의료인으로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미래사회에서 살아남지 못한다. 고비용을 요하면서 의료분담률은 미미한 인력을 그대로 남겨둘 수 있겠는가. 이런 점에서 한의사의 변신은 필수적이다. 그래서일까? 그 동안 한의사들은 새로운 진료 영역을 개척하는 데 많은 힘을 기울였다.
십여년 전만 해도 한방병원 입원 환자는 중풍 환자가 대부분이었지만 최근에는 근골격계 환자가 그 자리를 상당히 대체했다. 그러나 그 동안의 변화를 되짚어 보면 많은 한의사들이 대체의학을 통한 외연 확대에 주력해 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게다가 이렇게 확대된 영역에는 필수적 의료영역이라기보다는 부수적인 영역이 많다.
남의 영역을 마구 끌어들여 외연을 확대하는 상황에서는 우리들 자신이 ‘한의사’가 될 수도 없을 뿐더러 제대로 된 보건의료인도 될 수 없다. 독자적인 방법을 통해서 보건의료의 필수 영역에 접근해야 한다. 단지 당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다. 의사들도 자신의 것이라 주장할 수 있는 것들을 단지 지금 그들이 다루지 않는다고 우리 고유 영역이라고 계속 붙들고 있을 수 있겠는가.
종래의 한의학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과거에 왜 서양의학을 수입했겠는가. 새로운 한의의 영역을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현대의학과는 달라야 한다. 바로 이 점에서 우리의 역량을 학문의 재창조에 모아 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신은 한의사인가, 보건의료인인가? 당연한 답이지만, 둘 다여야 한다. 하지만 기왕이면 온전히 한의사이면서 보건의료인일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해 보자. 일차의료를 담당할 수 있는 한의학의 창출이 우리 시대의 과제다.
김기왕 부산대 한의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