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문화 우리과학]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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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문화 우리과학] 향
  • 승인 2003.04.2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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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태워 주위를 맑게 하는 아름다움 간직
우리에게도 아로마테라피 버금가는 방향요법 있었다

예부터 향을 피우는 풍습은 나쁜 냄새를 사라지게 하고, 不淨한 것을 없애 준다고 여겨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행해져 왔다. 전통 향의 방충효과는 벌레를 직접 죽이지는 않지만, 물리치는 효능이 있다.

또 향은 후각을 통해 뇌와 신경에 작용하는데, 코는 뇌에 가장 가까운 기관이며, 비강 내의 점막, 혈관, 신경 등은 뇌의 활동에 직접 관계하고 있어 뇌를 직접 자극할 수 있다. 따라서 자연으로부터 추출한 '향'이나 '향유'는 코로 흡입돼 자기방어 기구인 면역계를 활성화시킨다.

이에 임상에서 향기치료는 각종 통증, 신경정신계질환, 감기 등의 外感질환, 피부질환, 여성질환, 비만 등에 흔히 적용하고 있다. 특히 현대과학이 가져다준 공격적 치료의 부작용과 유독한 화학성분은 향기치료의 확대 보급에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

향의 기원
우리나라 향 문화의 기원은 흔히 삼국유사에 실린 불교의 도입시기인 묵호자에서 찾는다. 불교가 신라의 국교가 되기 전인 눌지왕 때, 중국의 양나라에서 의복과 함께 향이 들어왔는데, 이 향으로 묵호자가 공주의 병을 고침으로써 향이 단순히 방향제가 아닌 질병치료에도 쓰였음을 알 수 있다.

묵호자는 "향을 태우면 그 정성이 신성한 곳에 이른다"고 해, 향이 질병치료뿐만 아니라 소망을 비는 매개체로 쓰였다는 것을 짐작케 하고, 불교의 유입을 통해 향 문화가 전래되었음을 설명하고 있다.

불교의 향로는, 향 공양이 여러 공양물 가운데서도 항상 깨끗한 마음자세를 지니고 지극한 존경심을 나타내고자 하는 공경공양으로 널리 행해지면서 가장 주된 공양구로서의 자리를 확고히 다지게 된다.

이밖에도 신라시대에는 아랍지역에 '사향'과 '침향'을 수출하였다. 또 일본에도 여러 종류의 향을 수출하였는데, 훈육향, 청목향, 정향, 곽향, 영육향, 감송향, 용뇌향 이외에 훈의향, 잡향, 훈향 등이었다고 한다. 이는 신라의 향 문화가 무척 높은 수준이었음을 증명한다.

한의학 문헌에 나타난 향
한의학에서 '향'은 후각이 주로 비위의 작용으로 말미암아 일어나고, 이는 전신장부 모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데 착안해 방향성 있는 약물을 인체에 적용시킨 것이다.

△'山海經, 西山經'에 薰草를 지니고 다니면 전염병을 예방한다 △한대 '中藏經'에 安息香주머니로 傳尸, 肺, 時氣, 등 병을 예방·치료한다 △송대 '傷寒總病論'에 瘟粉이라하여 온역이 유행하는 지역에서 몸에다 뿌려서 온역을 예방한다 △금대 '儒門事親'에 복숭아꽃향기로 병을 치료했다 △명대 '壽世保元'에 사향을 베개 속에 넣어 악몽을 치료했다 △조선시대 '東醫寶鑑'에 조각자나 세신 등의 방향성 약물은 졸도 등의 구급질환에 사용했다.

이처럼 갖가지 방법에 적용된 약물의 대표적인 것들에는 發散藥(세신, 박하, 신이, 회향…), 通氣 行滯藥(사향, 침향, 단향…), 溫運 中氣藥(정향, 후박, 목향…), 行氣 通竅藥(안식향, 소합향, 석창포…), 活血 通絡藥(택란) 등이 있는데, 대부분 향기가 있으며, 心·脾·胃經으로 歸經하는 약물들이다.

요즈음의 목욕요법, 흡입요법, 마사지요법 등의 방법은 한의학 문헌의 향병법, 향지법, 향즙법, 향두법, 취체법 등과 상통한다.

사향과 난향
옛 여인들은 향, 그 중에서도 특히 고체상태로 향낭에 사향을 많이 지니고 다녔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조선시대 궁중에서도 사향사슴을 사육했을 정도로 우리나라 각지에서 양질의 사향이 많이 생산되었고, 상비의약품으로서 효용가치가 높았기 때문이다. 사향은 응혈된 피를 용해시키는 작용을 하며, 토사곽란을 진정시키는 데 사용되었다.

또한 사향이 주성분으로 추측되는 '만전향'은 복용함으로써 회춘 혹은 助情효과를 기대했다. 사향보다 뛰어난 흥분제는 없었고, 자신의 흥분상태를 지속시키는 것은 물론 상대방을 유인하는 효과가 높았기 때문이다.

반면, 분말로 제조돼 향낭에 담아지기도 하고, 향로, 향꽂이에서 살라진 '난향'은 우울증을 항진시켜 풀어주고, 흥분상태를 진정시키는 작용을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聞香, '향을 듣는다'
옛사람들은 향을 '맡는다'고 하지 않고, '듣는다'고 했다. 이 얼마나 멋스러운 표현인가.

여름철에 벌레를 쫓기 위해 피우는 모깃불, 추석에 먹는 송편, 한증막 속의 쑥 냄새, 단오날 머리를 감는 창포물, 이 모든 것이 우리의 삶을 건강하게 만드는 향기들이다.

焚香讀書, "향을 피우고 책을 읽는다"는 뜻이다. 향이 사악한 기운이나 잡벌레를 물리치기 때문에 책을 읽을 때 날아드는 벌레를 쫓고, 향의 정유성분이 정신집중을 도와준다는 것을 독서생활에 적용시킨 조상들의 지혜가 돋보이는 대복이다.

실제로 '침향'이나 '백단'과 같은 향 재료는 오늘날 향기요법에서도 정신집중을 도와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향기를 잠자리에 끌어들이기도 했는데, 국화로 베개를 만들어 사용하면 머리와 눈을 맑게 하고 탁한 기운을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보관하는 서고의 이름에도 '향'자가 많이 보인다. 창덕궁의 문향재, 선향재가 그 대표적 예다. 또 장롱 안에 향을 피워 향냄새를 옷에 배이게 하는 '薰衣'를 통해 옷에서 스며 나오는 향기를 즐기기도 하고, 옷을 손질하는 풀에 향료를 넣어 옷에서 절로 향기가 스며 나오게도 하였다. 향을 끓는 물에 담아 옷에 향기를 쏘이는 '박산로'는 습기와 향기가 혼합하여 향연이 흩어지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이다.

이 모두가 방충·방향효과를 기대한 것이리라. 그러나 우리는 이렇게 좋은 천연향을 두고 흔히 옷에 좀이 쓰는 것을 방지하기 화학약품인 '나프탈렌'을 무분별하게 사용하고 있다. 냄새가 역할뿐 아니라 인체에도 유해한 것을 말이다.

"사람이 쓰는 글씨에 그 사람의 교양과 인격이 그대로 드러난다"는 김정희의 '문자향'의 세계는 맡을 수 없는 무형의 정신세계도 하나의 향기로 맡아 새로운 세계로 나아간 조선 유학의 독특한 향기다.

인간세계와 천상의 교통수단
우리와 조상이 만나는 자리에 늘 향이 있었고, 우리 마음을 맑게 하는 자리에 푸른 향연기가 피어올랐다.

향을 피우는 목적은 연기를 통해 하늘에 있는 신과 서로 교통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시작된다. 오늘날 천주교나 제사를 모실 때 향을 피우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나라에는 죽은 사람을 위해 '염'을 하는 풍속이 있다. 이 때 향나무 삶은 물로 머리를 감기고, 쑥 삶은 물로 몸을 닦는다. 이는 향으로 현세와 사후의 세계를 이으려는 강한 의지력의 표현이기도 하지만, 쑥이나 향나무의 방향성이나 방충성으로 시신이 빨리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나 생각된다.

새로운 세상을 꿈꾼 '매향'
향을 땅 속에 묻는 '매향의식'은 향나무를 숙성시키는 과정인데, 매향이 세상에 다시 떠오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실제로 고려인들은 팔만대장경이라는 유형적 문화유산과 함께 매향이라는 독특한 정신문화유산을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팔만대장경이 귀족불교문화의 대표라면, 매향은 민중불교의 대표적 문화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매향의 결과로 얻어진 침향에 대한 조선시대의 의식은 종교적 의미가 퇴색되면서 점차 왕실을 중심으로 신비한 약재로 전용되기 시작했다.

희귀 약재로 용뇌와 함께 고급약재로 쓰이고 있고, 사찰에서는 특별한 의미가 부여되기보다는 일상적인 향이 쓰일 뿐이다. 그것도 대부분 수입되는 '대만산'의 침향을 말이다.

문화를 바르게 세우는 일
오늘날 향을 수출하고 천년 뒤 후손에게 물려줄 향을 묻던 고려인들의 마음은 이미 사라지고, 향을 피우면 우리가 먼저 머리가 아파 향을 꺼버리는 무례를 범하고 있다. 창피한 일이지만 우리가 자랑하는 문화유산의 현장에 가면, 향로가 쓰레기통으로 전락한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우리의 문화유산을 아무리 강조한들 향로를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현실은 우리가 아직 문화를 가꾸는 안목이 성숙하지 못함을 의미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탕을 지키는 일, 바로 문화를 바르게 세우는 일이다.

다행히도 최근 '향기를 찾는 사람들(http://www.insadongplaza.co.kr)'이라는 민간차원의 모임이 결성돼 우리 향 보급과 함께 1980년대 이전까지 무분별하게 훼손되었던 울릉도 향나무심기 운동을 벌이고 있다.

이예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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