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기왕 교수의 “한의학, 실용학문이면 충분한가?”를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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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김기왕 교수의 “한의학, 실용학문이면 충분한가?”를 읽고
  • 승인 2010.12.23 09:47
  • 댓글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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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욱

전종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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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준화연구본부 연구원
우리 학문, 이대로 좋은가?

<민족의학신문 2010년 12월 16일자 19면 게재)

김 교수에게 뼈저린 반성을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 글.

“남병길 등의 수학자들이 등장하던 조선 후반기에 유럽의 수학은 오일러, 라그랑주, 라플라스, 코시 등에 의해 해석학이 상당히 발전하였고, 미분기하학마저도 시작되던 시기였습니다. (우리나라도 그때) 삼각함수, 방정식 등을 가르쳤다는 사실은 학생들에게 알려주면 좋을 중요한 사실들이지만, ‘세계사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저 댓글 하나의 효과다. 한 세기가 넘도록 서양문명 앞에 주눅 들어 살던 우리에게 적잖은 감동을 준 허성도 교수의 명강의 직후 다시 급반성 모드로 돌아서는 태도. 과연 맞는 말인가? 오히려 얼마나 우리 학문에 대한 자부심이 취약한지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그야말로 “잘못된 전략을 가진 채로는 모든 연구가 결과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산 증거가 아닌가.

역사학의 본령은?

필자가 보기에 위의 내용은 구체적 사실의 나열일 뿐 역사 이해를 오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서구인들이 자기들 돋보이려 만든 실용·진리 대립구도를 그대로 인용한데다, 무슨 세계사를 기네스북 정도로 바라보고 있다. 1등 아니면 다 소용없나?

총이면 총 하나의 최초 발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와 연관된 산업구조의 변화, 전쟁양상의 변화, 세계 주도권의 변화가 연결되어 이해되어야 하고, 인쇄술이면 인쇄술 발명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출판문화의 확산, 대중지식의 고양, 다시 민주주의제도 파급, 세계적 지성의 출현으로 귀결되는 총체적 양상을 추적해야 마땅하며, 그 마디마디에서 기여한 모든 인물과 세력을 아울러야 진정한 역사인식이다.

유럽의 근대수학 발달은 르네상스 이후 근대 지성사 흐름의 기세를 타고 일어난 일련의 사건이며, 그 기세란 어떤 한 개인이나 나라 단위로 어찌 해 볼 수 없는 것이라, 그것으로 누구의 우열과 포폄을 말하기에는 무리다.

이미 과학은 세계사를 아우르는 쪽으로 전개되어 나갔다. 조선의 풍석 서유구의 아버지 서호수라는 수학자는 당시 북경에서 서양 수학자의 저서를 평하기를 “서양수학의 수준이 기대만큼은 아니다”라고 한 적도 있다. 한 국가나 한 문화권의 얘기를 넘어서는 시각이 필요하다는 말이다. 우리 역사 구비구비에서 이런 세계사적 흐름에 음으로 양으로 기여하고 발전을 추동한 갖가지 모멘텀을 찾아 현재 우리들에게 제시하는 것이야말로 역사학의 본령이 아니겠는가?

학문적 기준 해외 수입…우리의 학문적 자부심 실추

실용·진리 구분법 역시 기존 과학사에서 늘 쓰는 말인데 해악이 많다. 이유는 “그래서 어쩌자는 거냐?”에 답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생산적 얘기를 전개할 수 없는 것은 대부분 가짜다. 우리가 참으로 통탄해야 할 부분은 학문적 기준 자체를 해외에서 수입해 쓰면서 그 잣대로 끊임없이 우리의 학문적 자부심을 실추시키고 있는, 바로 그 점이 아닐까?

역사하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조선 성리학 비판할 때는 그놈의 공리공담(현실적 이해를 떠난 진리연구) 때문에 나라 결딴났다고 욕하고, 한의학 비판할 때는 실용적 접근 때문에 발전이 안 된다고 몰아 부치면, 도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이건 정말 망한 이유를 찾기 위한 바보들의 이유가 아니고 무엇인가. 이런 명백한 논리적 모순이 있는데도 그 필요·진리 이분법을 품고 가야하나?

과학적 방법론으로서의 귀납법이 강력한 지식생산의 툴인 것은 주지하는 대로다. 하지만 이는 매우 좁은 범위의, 다른 모든 조건이 통제된 상황에서만 구체적 결과를 얻을 수 있는 도구인데, 이런 방법을 거시적 인문 역사 담론에 들이대면 매우 위험하다.

늘 남들 만들어 놓은 멍석에서 저 죽는 줄 모르고 깨춤 추는 격이 되기 십상이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공부가 우선이다. 이런 공부는 연역적으로 해야 하는 이유다. 근거는 거기에 따라서 자연히 얻어지는 것. 그것은 최초의 방향설정의 문제이고, 자기 위치파악의 문제다.

역사는 현재의 관점에 따라 재구성된다

결국 학문적 자부심, 그리고 문화적 자부심이 최초의 출발점이다. 뭐 때문에 잘 되었고 뭐 때문에 잘 안 된다는 식의 논의라면 곤란하다. 툭 터놓아야 한다. 원래 우린 잘 하는 사람이고 잘 하는 나라다. 기술 과학 철학 종교 예술 문학 경제 군사 스포츠 다 해본 거고, 검증된 거다. 원래 우리나라 식자층 바이링규얼이었고, 세계적 시각 있었고, 섬세한 감각 있었고, 인생의 깊은 깨달음 있었고, 돈 버는 재주, 쓸 줄 아는 멋 있었다고.

가장 해로운 것이 개화파 척사파 싸움 속에 나라 거덜 나고 말았다는 황당한 자해논리. 조선시대 위대했다고 얘기하다가도 마지막에 오면 “과거엔 좋았는데, 마지막엔 참…” 하고 꼬리 내린다. 여기서 한시바삐 벗어나야 한다. 그럼 그 개화 300년 전에 한 태국은, 400년 전에 한 필리핀은 왜 저 모양인가? 역사는 명백히 현재의 관점에 따라 재구성되는 것이다. 원래 문화적 소양이 두터운 나라는 금방 회복한다. 그게 핵심이다. 독일과 일본은 전쟁 패망에서 이십년 만에 복구한다. 우리 역사에서도 임진왜란 잿더미 한 세대 안에 회복하였고, 6.25 폐허에서도 역시 한 세대 안에 바꿨다. 그리고 이제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모든 면에서. 20세기 좌우의 처절한 대립도 어느 나라도 겪지 못한 사상적 역사적 자양분으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학문은?

한 사람의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죽음을 코앞에서 겪어보고 깊은 고민을 한 사람은, 그것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라 불가항력의 시운에서 불거지는 것이라면, 그 사람은 인생에 대한 태도가 달라진다. 세계를 보는 눈이 달라진다. 인간의 격이 달라진다. 여기서 우러나오는 자부심과 세계적 통찰 위에서, 아무도 겪어보지 못한 우리 내면에서 형성된 시각으로 우리 미래를 세계의 앞날을 말할 수 있는가이다. 그것이 우리가 원하는 학문이요, 우리가 바라는 문화다.

우리는 바란다. 같은 고난을 겪었지만 이스라엘 같은 공격성을 드러내지 않는 나라,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방어할 수 있으면 족하고, 부력(富力)은 먹고 입고 살 만한 것으로 더 욕심내지 않는 나라, 오로지 한없이 바라고 싶은 것은 나를 살찌우면서 동시에 남에게 도움 주는 학문과 문화가 꽃피는 정신적 자주 독립의 나라. 나의 소원, 김구의 비원이 이루어지는 나라를.

전종욱 한국한의학연구원 표준화연구본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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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혜정 2011-01-16 12:02:06
구구절절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전종욱 2011-01-03 14:00:04
그를 위해서는 다양한 방면의 이론을 아우르면서 한의학의 치료적 가치를 드러낼수 있는 설명의 틀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 제 글에 숨어있는 메시지입니다. 극소수의 의견을 열렬히 지지해 주시어 감사합니다. 함께 참여하면 더 좋겠습니다. ^^

전종욱 2011-01-03 13:58:00
현실 문제를 해결해야 진정한 관점으로 가치를 인정받겠지요. 맞는 말씀입니다.

실제 치료영역에서 한의학의 가치를 널리 선양하고 있는 분들 많이 계십니다. 그 분들의 실적을 보편언어로, 보편 논리로 제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고요.

학생 2011-01-03 01:23:28
전종욱선생님같은 방향성과 태도를 가진사람들이 안에도... 밖에도...아주 극소수라는것.! 현실입니다. 한의학은 역사학이나 의사학과는 차별화되는 분야가 존재합니다. 바로 치료영역이지요. 치료에대한 대가를 받기때문에 책임이따릅니다. 고고한 학과 같은 태도로는 산적해있는 현실적인 문제들은 해결되지않습니다. 방향은 아름다운데 현실적인 감각과는 거리가 있어보입니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신 the very fancy말이지요.

유형천 2010-12-24 19:14:25
지면을 통해 잘 뵙고 있습니다. 두 분다 항상 건강하세요~콕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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