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의서산책(467)- 橘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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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서산책(467)- 橘譜(2)
  • 승인 2010.11.11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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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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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철 風味와 시디신 바람의 약효

 

 

고의서 산책(467)- 橘譜(2)
겨울철 風味와 시디신 바람의 약효 

 

 

 

 

 

계원귤보에 나오는 귤 그림.
鄕藥에 대한 貢物上納이 실시된 것은 이미 조선 개국 초부터의 일로 태조6년(1397) 濟生院 설립에 즈음하여 ‘置濟生院令各道每歲輸納鄕藥材如惠民局例’에 따라 각급 의료기관에 소용되는 향약을 8도의 지방관으로 하여금 공물로 分定하여 上納케 하였고 王室御藥에 진상토록 정하였다. 공물로 바쳐진 제주감귤의 전체 물량이 얼마나 되었는지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려우나 효종4년에 편찬된 <탐라지>의 土貢物目을 보면 우선 內需司와 掌苑署에는 감귤 1그루분의 생귤과 약5300여개라고 기록되어 있고 典醫監과 惠民署에는 청피, 지각, 진피를 약재로서 116근을 공납한다고 되어 있다.

제주 특산품인 감귤은 이른바 ‘酸物’이라고 총칭하고 종묘의 祭享을 비롯한 각종 제례에 薦新을 위하여 재배와 수송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당연히 그것의 收藏法에 고심했을 터인데, <산림경제>의 治膳편을 찾아보면 감귤을 보관하는 방법으로 다음과 같이 기발한 아이디어가 몇 가지 수록되어 있다.

예컨대, 가지가 붙어 있는 것을 골라 통무에 귤의 가지를 꽂아 두고 종이에 싸서 따뜻한 곳에 두면 봄까지 망가지지 않는다고 하였다. 무의 진액으로 귤을 싱싱하게 유지시킬 수 있는 비법이다. 또 마른 솔잎을 한 켜씩 깔아두고 그 사이에 감귤을 보관하면 문드러지지 않는다. 아울러 금귤을 녹두 속에 묻어 두고 저장하면 때가 지나도록 변하지 않으니 귤은 성질이 덥고 녹두는 찬 성질을 가지고 있어 능히 오래 갈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효과 여부에 관계 없이 지극히 한의학적인 발상에서 비롯된 방법임을 알아차릴 수 있다.

이 책 말고도 제주귤을 노래한 역대 명인들의 詩歌가 적지 않게 전해지고 있다. 일찍이 趙貞喆(1751∼1831)이 지은 <橘柚品題>에서는 귤을 공납하는 것을 두고 다음과 같이 노래하였다. “태묘 봄 제사에 새 과실을 바치고 醫司에는 해마다 청피를 공납하네(太廟春薦實, 醫司年貢皮)”라고 읊었으며, 청귤의 껍질을 취해 말려서 청피를 만든다고 하였다.

“감귤은 ‘酸物’이라 총칭하고 각종 제례에 쓰여 수송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아울러 枳橘을 노래한 시에서는 “약용으로 쓰는 줄만 알 뿐이니 귤이나 유자와 함께함을 어찌 알리오(但識刀圭用, 焉知橘柚幷)”라고 하였다. 官府와 섬사람들은 8월에 열매를 따서 말려 지각을 만든다. 혹 醫司(전의감과 혜민서 등)에 진공하거나 약용으로 팔기도 한다. 다만 지각, 즉 탱자라고 부르니 사람들이 그 맛을 알지 못하는 것이 몹시 애석하다고 하였다.

또한 등자귤에 대해서는 “씁쓸함이 각박한 인정과 비슷하고 시디신 세상맛과도 매한 가지다. 약용으론 오히려 쓸모가 있으니 비오거나 이슬 맞아도 아껴하지 않네”라고 하면서 크기는 산귤과 같고 색깔이 푸르고 잘 익으면 붉은 점이 들어가 박히기도 한다. 맛은 몹시 시고 수분이 많으니 그 껍질을 말려서 진피를 만든다고 하였다. 이상 <탐라문견록>과 <귤보>의 내용은 정민 역본을 참조하였으니 제주 관광길에 앞서 반드시 일독을 권한다.

근대 일본인이 그린 <桂園橘譜>라는 책에는 여러 가지 귤 종류의 모습이 천연색으로 화려하게 그려져 있어 조선시대 제주귤의 옛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이밖에도 林悌(1549∼1587)가 지은 <橘柚譜>, 金正喜(1786∼1856)가 지은 <柑橘論>, 李綱會(1789∼?)의 <耽羅職方說>에 나오는 <柑橘論> 등, 역대 문인들이 감귤에 관해 적어 놓은 논설이 다수 남아 있어 우리나라 감귤 재배와 약용의 전통을 말해 주고 있다.

안상우/ 한국한의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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