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아시아배구 남자선수권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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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 아시아배구 남자선수권대회
  • 승인 2010.11.03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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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훈

박지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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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자극, 즉각적 진통에 심리적 안정 견인
작전타임… 테이핑 등 경기력 큰 도움
침자극 즉각적 진통에 선수들 심리적 안정 견인

르포/ 15회 아시아배구 청소년 남자선수권대회
 

경기장에 나선 박지훈 한의사. 
대한민국이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으로 떠들썩한 동안, 태국에서는 2010 아시아 배구 청소년 남자선수권대회가 있었다. 장소는 방콕에서 동쪽으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이름도 생소한 나컨빠톰(NakhonPathom)이다. 태국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라지만, 알려진 관광지라고는 ‘세계에서 가장 커다란 불탑’이 전부인 시골도시쯤 되겠다. 쑤완나품 공항에 내려 후끈 데워진 공기를 들여마실 때만 해도 “드디어 태국에서의 10일이구나” 했던 것이, 밤이 되면 벼락을 동반한 국지성 호우가 매일같이 내리고 저지대의 도로는 침수되어 차들이 수륙양용으로 아무렇지 않게 달리는 진풍경 덕분에 “아하, 이곳은 봉사하러 왔지, 관광하러 온 게 아니지!” 하고 마음을 다잡게 되더란 것이다.

국제배구협회(FIVB) 공인 팀닥터는 시합이 열릴 때 코트 옆 벤치의 감독, 코치 곁에서 선수들의 부상을 관리해 줄 수 있다. 국제배구협회 소속 의사로 등록되기 전에는 트레이너 신분으로 참석해야 하는데, 이때는 경기 성격에 따라 벤치에 들어올 수 없고 위층 응원석에서 관전만 할 수 있다는 차이가 있다. 짧은 작전타임 동안이지만 얼음찜질, 스프레이, 테이핑은 선수들 경기력에 큰 도움이 된다. 배구는 구기종목 중에서도 신체 접촉이 적은 네트경기인지라 선수들이 충격에 예민하기 때문에 작은 손상에도 경기력이 좌우되어, 경우에 따라서는 침을 활용한 즉각적인 진통이 유용한 종목이기도 하다. 블로킹하다 발생한 손가락 염좌에 그냥 스프레이와 테이핑보다는 측부 인대에 잠깐의 침 자극만으로도 진통뿐 아니라 선수에게 심리적 안정을 이끌어낼 수 있다.

이번 의무실 시간 운영은 경기 전에는 테이핑, 경기 후 저녁에는 침 치료와 추나시술 위주로 이루어졌다. 손상 부위의 테이핑은 근육의 부하를 줄이고, 관절의 추가적 손상을 예방하기 위해서인데, 젊은 선수들은 테이핑도 멋있고 ‘있어 보이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그런 점에서 손가락에 감는 하얀색 면테이프를 어깨나 무릎에 보기에도 허술하게 붙인 중국 선수들보다 비교우위에 있던 듯하다.

결국 선수 전원이 테이핑을 희망하게 되었으니, 준비해 간 탄력테이프는 다 쓰고 돌아왔다. 배구 상해는 만성적인 슬개건염이 가장 흔한데, 경골을 내‧외 회전시켜 봐서 통증이 야기되는 쪽을 억제하는 방향으로 테이핑하고, 슬개골을 안정화시켜 슬관절 주위 환경을 개선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자세한 내용은 대한스포츠한의학회 주관의 팀닥터 세미나 또는 학회에서 작년 출간한 ‘스포츠 손상치료: 배구편(군자출판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태국:한국 전에서도 대한민국, 승리의 함성!이 터져 선수들이 감격했다”


국가대표팀 선수들과 스탭진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다른 동남아 국가들이 그렇듯 태국도 한류 열풍 중인데, 이전부터도 많은 한국의 배구 지도자들이 태국 배구의 실력을 키워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다른 나라보다 유독 한국팀에만 열렬한 응원을 보내는 데다, 하물며 태국:한국의 경기에서도 “대한민국, 승리의 함성!”이라고 정확한 표현을 써가며 태극기를 흔드는 모습은 참으로 감격이었다. 선수들도 태국 소년‧소녀들에게 어찌나 인기가 많은지 리베로 같은 경우는 현지에 남아도 ‘닉쿤 부럽지 않을만’ 하다고나 할까. 다만 한 가지, 응원하는 팬들 중에 성 전환자도 많았는데, 입술만 붉은 립스틱에 외형은 아직 남자인 이들의 독특한 소프라노톤 섞인 응원이 오히려 선수들 귀에 거슬렸다는 후문이다.

세계 선수권 출전을 위한 3장의 티켓이 걸린 아시아배구연맹(AVC) 주최의 시합이었기에, 16개 참가국 가운데 영어권은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뿐이었다. 예선 같은 조였던 중국, 베트남, 카자흐스탄은 물론 중동권과 러시아권을 포함해 평소 한의원에서 여러 나라의 외국인 노동자 진료를 하며 익혀둔 인사말을 활용할 기회이기도 했다. 나라마다 영어 수준이 천차만별이라, 그 나라 인사말은 서먹함을 없애는데 크게 기여할 수 있다.

특히 인도네시아는 인사말이 꽤 어려운데, 11시 3시 6시를 기준으로 시간에 따라 인사말이 달라 정확한 문장으로 인사하면 그렇게 반색할 수가 없다. 스포츠 국제시합도 결국 문화 교류의 장이고, 효율을 위해서야 당연히 영어가 공통이 되어야겠지만, 그 나라 언어를 적절히 사용하면 정서적으로 더 가까워질 수밖에 없다. 태국 현지인이 한국어로 응원해 주면 벤치에서도 뒤돌아 응원석을 찾아보고 미소로 화답하게 되는 것도 그 때문이지 않은가.

국제시합에는 12명의 선수와 팀닥터 포함 4명의 임원과 함께 심판 1명씩이 동행하는데, 심판은 공정성을 위해 따로 별도의 호텔에 묵는 경우가 많다. 하루는 좌섬요통으로 침 치료를 받고 있던 한국 심판이 라오스 국적의 심판을 의무실로 데리고 왔다. 심판의 수신호가 경기 진행에 중요한데 최근 어깨 외전시의 통증이, 약물치료로 안 낫고 팔꿈치로 찍어 누르는 마사지 치료에 더 악화되었더란 것이다. 이학적 검사상 수동적 관절 가동범위에는 이상이 없음을 확인하고 견갑골 회전과 안정에 관여하는 근육의 문제를 찾아 침 치료 후 테이핑한 뒤 돌려보냈다. 치료에 만족하여 이후에 밤마다 숙소를 찾아 오길래 한국-라오스의 친선을 위해 애국한다 생각하고 열심히 치료해 주었다.

4월 이란에서 유스대회, 5월 일본에서 퍼시픽대회 같은 국제대회 이후에 태백산배 배구대회, 대학연맹전 등 쉴 틈 없는 시합의 연속으로 어린 선수들의 부상이 누적되어, 12명 중에 8명은 매일같이 예전 부상을 치료받기에 바빴다. 주 세터가 무릎 부상으로 진단서를 내고 대표팀에서 빠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출국 이틀 전 센터인 주장의 대퇴사두근 타박상으로 공격에 큰 공백이 생겼다. 결국 이 선수는 날마다 재활치료를 하게 되었는데, 목표는 준결승에서 뛸 수 있게 만들기였다. 부종이 호전되고 관절 가동범위 재활단계에서 선수 자신도 9층 숙소까지 계단을 오를 정도로 재활에 열성을 보였지만, 준결승의 문턱에서 신흥 강호 인도에 발목을 잡혀 이후 공을 만져볼 기회가 주어지지 못했다. 부상이 얼마나 선수의 주변에 상존해 있으며, 팀닥터가 선수 개개인에게 공을 들여야 하는 이유를 보여주는 경험이었다. 의학적으로 어려운 일이지만, 수단을 동원해 뛸 수 있게끔 만들어 주는 것이 태극마크를 지닌 선수와 팀을 위하는 길이다.

“견갑골 통증을 완화해 줬더니 라오스 심판이 밤마다 숙소를 찾아왔다”


라오스 심판(좌)과 필자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시합의 마지막 경기는 대만과 5-6위 전으로 역시 접전 끝에 3:2의 짜릿한 승리였지만, 진정 가슴 졸이던 경기는 바로 8강 결정전이던 카자흐스탄 전이었다. 이 경기에서 패배하면 태국까지 와서 9-16위 전을 치러야 한다는 절대절명의 심정과 부상으로 뛰지 못하는 주장 몫까지 해내겠다는 선수들의 분위기가 고조되어 있었다. 결국 5세트에서 듀스까지 가는 접전 끝에 17:15로 박빙의 승리를 얻고 얼싸안으며 함성을 지르는데, 마치 우승이라도 해낸 듯한 기쁨이었다. 사실 짧은 합숙기간에 부족한 팀 전력 등 악조건을 고려하면 강팀을 상대로 정말 집중력 있는 승부를 보여주었다. C조 1위 중국과 2위 한국 모두 인도에게 무릎 꿇고, 결국 세계선수권 티켓은 일본, 이란, 인도에게 양보하는 것으로 10일 간의 시합 일정은 모두 끝났다.

대한배구협회(KVA) 산하 의무위원회는 의사, 물리치료사, 한의사로 구성되는데 각 분야에서 중책을 맡고 있는 의료진이 많다. 특히 경희대 전신인 동양의학전문학원 시절 배구선수 출신 한의사 선배님들의 왕성한 활동은, 한국 배구와 한의학의 교두보가 되어 지금의 스포츠한의학의 기반을 닦아 놓았다. 그런 배경에서 성장한 지도자들이나 그 아래에서 배운 선수들이 지금까지도 한의약 치료를 친밀하게 받고 경기력 향상에 도움을 받고 있다. 그동안 선배들이 그러해 왔듯이 한의사 팀닥터는 타 의료진과 지속적인 교류를 통해서 앞으로도 스포츠 손상과 재활에 있어 Korea의 차별화된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견인차 역할을 할 것이라 기대해 본다.

박지훈/ 안산 동인당한의원장. 스포츠한의학회 부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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