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사 2만명 시대… ‘삼중고’에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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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 2만명 시대… ‘삼중고’에 흔들
  • 승인 2010.10.27 10:57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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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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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급감‧ 보약매출 감소‧ 동업자간 경쟁 극심
한의사 2만명 시대… ‘삼중고’에 흔들
환자 급감‧ 보약매출 감소‧ 동업자간 경쟁 극심 

서울 강북지역의 A원장은 고심 끝에 최근 문을 닫았다. 한의대 졸업 후 2년 간의 부원장 생활을 거쳐 의욕적으로 개원을 했지만 지난 2년 간 진료수입이 간호조무사 두 명의 월급과 임대료, 금융비용 등 고정적인 지출비용을 항상 밑돌았기 때문이다.

처음엔 자리를 잡으면 나아질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지출을 줄이고 야간진료를 하며 진료시간을 늘리는 등 필사의 노력을 기울이며 버텨왔지만 매달 쌓여가는 적자에 결국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A원장은 “한의대 입학 점수가 가장 높았던 해에 들어가 나름 한의사가 되기 위한 준비도 열심히 했고 자신감도 있었지만 당장 환자가 오지 않는데 어찌 해볼 도리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한의사들이, 한의원들이 무너지고 있다. 불과 20~30년 전만 해도 개원만 하면 환자들이 몰려오고 그래서 개원 몇 년만에 건물을 지었다는 신화를 창조했던 이야기는 이제 전설이 된 지 오래다. 이에 따라 한의사 국가고시 응시를 앞둔 한의대 본과 4년생들과 전국 한방병원에서 수련을 마치고 내년 초 전문의로 배출될 수련의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양방과 달리 대학병원 봉직의나 공직사회로의 진출 가능성이 한정적이고 그래서 한의대 졸업 또는 전문의 취득 이후 개원 외에 딱히 방법이 없는 이들의 고민은 더욱 심각한 수준이다. 지금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선후배의 모습이 얼마 후 내 모습일 것이라는 불안감도 확산되고 있다.

현재 한의원들의 목줄을 죄는 사슬로는 경기 불황의 여파 속에 한의원 수익구조에 큰 비중을 차지하는 비급여 항목인 보약매출의 감소, 우후죽순처럼 생겨난 노인병원의 증가에 따른 내원환자의 급감, 한의사의 과잉 배출에 따른 한의원 간의 경쟁 심화 등을 들 수 있다. 이 중에서도 한의사의 과다 배출에 의한 내부경쟁의 심화는 한의원 경영을 더욱 악화시키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사실 보약 매출의 감소나 내원환자의 급감 등의 요소는 경기가 회복되고 한약재 안전성을 적극 홍보해 신뢰를 되찾거나 한방의료기관에 대한 정확한 대국민 홍보를 통해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하지만 한의사 간 한의원 간 치열한 내부경쟁은 달리 해결방안을 찾기 어렵다.

졸업 후 개원… 기존공식 탈피 우선
다방면 진출 위해 인식 전환 절실해
국제기구 일반기업 진출 준비시켜야


1993년 한약분쟁 당시 5,000명을 밑돌던 한의사의 숫자는 이후 한의대 증설과 정원 증원 등을 통해 2000년엔 9,000명, 2010년에는 1만6,000명을 상회하는 등 급속한 증가세를 그리고 있다. 이는 같은 의료 직종인 양의들에 비해서도 대략 2배 이상 증가한 수치다. 상황이 이쯤 되고 보니 한집 걸러 한의원도 옛날 얘기고 이젠 한 건물에 한의원이 여러 개 입주, 서로 극심한 경쟁이 불가피한 상황에 이르고 있다.

이처럼 악화일로를 걷는 한의원의 경영환경에 대해 일각에서는 차제에 한의사들이 인식을 전환해 현재의 어려움을 타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즉 ‘한의대 졸업=개원’이라는 등식에서 벗어나 개원 한의사가 아닌 다방면으로의 진출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으로 공직이나 해외로 진출을 보다 확대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보건복지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청 등 한의사의 불모지였던 공직에 몇몇 한의사가 이제는 진출하기는 했으나 의사 또는 약사 공무원의 숫자에 비하면 아직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다. 한의사가 5,000명이던 시절이나 2만명에 육박하는 지금이나 한의사 공무원 숫자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사실에서 향후 공직 한의사의 진출 확대를 도모해야 한다는 의견은 분명 설득력이 강하다.

또한 2008년 폐지된 정부 파견 한의사제도의 부활과 함께 현재 시행 중인 국제 협력의사의 파견 연인원을 증원하는 것도 한의사의 다방면 진출을 위해 시급히 풀어야 할 과제다. 특히 이들 해외 파견 한의사들은 현지에서 한방병원을 건립하거나 또는 현지 의사들을 상대로 한의학 관련 교육을 시키면 한의사의 추가 파견으로 이어질 수 있어 한의학 세계화에도 도움이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다.

이외에 한방군의관 및 ‘농어촌 등 의료를 의한 특별조치법’에 의거 읍면 보건소 또는 보건지소에 근무하는 한의사의 증원과 함께 이들의 장기복무를 유도하는 것도 한의사의 과잉배출에 따른 한의계 어려움을 일부 해소할 수 있는 방안으로 거론된다. 물론 이들 방안이 정책 또는 비용적인 측면에서 관계 당국과 협의가 충분히 이뤄져야 하는 만큼 쉽게 결정될 사안은 아니지만 한의계가 처한 난국 타개를 위해 심도 있게 논의될 필요가 있다고 한의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이와 함께 일반 기업의 연구소 등에도 한의사 진출이 보다 활기를 띠어야 한다. 대부분의 제약사의 경우 약사들이 연구원으로 근무하는 경우가 많은 반면 한방제약사에 근무하는 한의사 연구원은 드문 것이 현실이다. 게다가 최근 웰빙 붐을 타고 한방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제품들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호평을 받고 있지만 정작 이들 제품의 연구 개발에 한의사가 참여한 경우는 드문 형편이다.

대한한의사협회 이사 출신인 B원장은 “해가 갈수록 한의계의 어려움이 가중되고 있지만 아직도 대부분의 한의사가 졸업하면 개원이라는 공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보다 넓은 시야를 가지고 다방 면으로 진출을 위한 준비를 학창시절부터 해야 하고 한의대 역시 개원 이외에 한의사가 진출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교육을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한의사 2만명 시대. 한의계가 급격히 변화하는 환경에 발 빠르게 대처하지 않는다면 자칫 ‘한의학은 살아남고 한의사는 죽는 시대’가 도래할지도 모른다. 적잖은 한의사들의 우려다.

김상경/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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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만우 2010-11-23 20:39:29
오랜 병폐를 알고도 모른 척했던 한의계의 결자해지가 필요하다. 탓을 밖으로 돌리지 말라.
후배와 미래를 생각하지 않은 원로 한의사들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무대책으로, 시류에 따라 편승했던 안일한 분위기의 주인공들, 다시 말하자면 당시의 원로들은 시급하게 개선안을 내놓아야 한다.함구무언으로 눈치만 살피는 주인공들은 무엇하는가.그들은 다 어디에 있는가.말하라.빨리 말하라.약한 자의 맘은 눈물되어 흐른다.

의학도 2010-11-19 11:57:49
중앙정부에게 기대하는 이런 생각은 그저 다큰 아이가 부모에게 손벌리는 광경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네요 ㅠㅠ 조금더 독창적이고 자발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듭니다 . 졸업=개원 개인병원보다는 조금더 체계적이고 다 방면적인 한방종합병원을 설립하여
개개인의 힘을 한데로 모아 질병치료에 나서는것이 더 현명한 방법이 아닐까요?
그리하여 대중이 가지고 있는 한의원=보약 이런계념을 타파해야합니다.

학생 2010-11-09 17:26:52
후배한의학도들이 다양한 경로로 갈수있도록 재정적인 지원같은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위해 장학재단등을 설립하거나 단 몇명이라도 다른 방향으로의 길을 뚫어놓고나 이렇게 이야기하면 1g의 무게감이라도 실리겠습니다. 많이 나오니까 경쟁해야할것같고 수입줄어들거 같으니까 너희들은 나오지 말고 다른길로 가라고 말하는게 좀더 솔직하겠네요.

헐.. 2010-11-09 14:29:12
힘들다고 해도 개원하는 것보다 돈을 더 못받으니 그냥 개원하는 것 아닌가염?
연구기관보다 개원이 조금이라도 벌이가 낫다라는 생각 밖에 안드는 말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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