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일원화 단상- 이상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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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일원화 단상- 이상룡
  • 승인 2010.10.22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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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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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원화의 실체와 실제
일원화의 실체와 실제

의료일원화 단상 

거짓말 대회가 열렸다. 온갖 그럴듯한 거짓말이 난무했지만 “나는 거짓말을 할 줄 모릅니다”라고 말한 사람이 일등을 했다. 그렇다면 인류의 역사는 거짓의 역사에 다름 아니다. 과장하면 정의도 힘 있는 자의 논리다. 피레네 산맥만 넘으면 불의도 정의가 되는 게 인류사였다는 어느 철인의 고백도 일리가 있다.

그만큼 세상사에 절대적 가치와 권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모든 게 상대적이며 비교우위와 열등을 고집하거나 반복하는 거다. 고루해 보이는 전통의학과 과학적이라 자부하는 현대의학의 입장차도 단지 상대적일 뿐이다. 자본과 과학이 신의 자리를 넘보는 아니 이미 차지했는지도 모를 시대에 좀 더 신화적이거나 덜 신화적일 뿐이다. 의료 일원화가 또 도마 위에 올랐다. 이젠 의료 일원화로 국민건강권의 수준을 높인다거나 과학지성을 고양시켜야 한다는 어리숙한 말로 속내를 감추지 말고 생존을 위한 절박함을 드러내야 한다. 나는 네가 필요하다는 간절함이 없는 일원화 논의는 소모전일 뿐이다.

십여 년 전 국내 대학의 고등인력 양성사업으로 발족한 BK21 사업에 ‘한의학 핵심 연구사업단’의 책임자로 3년 동안 중국, 일본, 미국의 한의계를 둘러본 적이 있다. 주마간산 격으로 둘러봤지만 나름 우리 한의계가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성찰의 기회가 되기도 했다. 북경, 상해, 난징, 서안, 광저우 등 십여 곳의 중의대와 부속병원을 둘러보면서 전통의학의 자부심은 있지만 어딘지 모르게 서의에 지나치게 의존적인 중의학의 현주소를 보았다. 하버드의대의 대체의학연구소와 뉴욕의 코넬대학, 보스톤 인근 뉴잉글랜드한의대에선 여전히 비주류 신세인 미국 내 한의학 교육의 열악함을 목격했으며, 그나마 한국 한의계가 나름 역할을 다하고 있음에 안위했던 적이 있다.

생존 위한 절박함 없는 논의 ‘소모전’
의료제도개혁+한의학 발전 전제되야


일본 토야마의대 상한론교실과 본초전시실 앞에선 한의대 교수로서 무력감을 맛보기도 했다. 특히 나고야의대 생리학교실을 방문했을 땐, 십여 명의 교수진이 조구등산의 뇌질환 연구결과를 발표하는 것을 보면서 의대에서 한의학 연구를 더 잘 할 수도 있겠다고 어이없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국내 한의대 전체 기초교수가 평균 열명 남짓으로 의대 한 교실의 교수 숫자에도 못 미치는 인력과 인프라로 한의학의 세계화는 무리가 없지 않기 때문이다.

2015년이면 대학 입학생의 숫자가 현저히 줄어들면서 지방 사학의 재정은 악화일로에 놓인다. 결국 지방 한의대 역시 생존의 자구책을 세우지 않으면 대학과 함께 더욱 위축될 여지가 없지 않다. 더군다나 최근 수년 간 대학 부속병원의 경영 상태나 일선 한의사들의 상황은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고착화된 이런 한의계 내부의 문제를 단순화해 의료제도 개혁의 문제로 돌파구를 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의료 일원화 논의는 의료제도 개혁이라는 국가적 안목과 한의학 발전이라는 대승적 차원에서 논의의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상대에 대한 존중과 이해가 없는 일원화 논의는 무례한 것이며, 그런 의료 일원화를 도모하는 자들은 식민사관의 망령에 사로 잡힌 자들이다. 오직 눈에 보이는 것들로만 원인과 결과를 만들 줄 아는 과학이라는 미몽에 사로 잡혀 사실과 진실의 뉘앙스는커녕 물질적 실체(substance)와 관계적 실제(reality)도 구별 못하는 맹목들이기 때문이다.

이상룡/ 우석한의대학장. 경락경혈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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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월성신 2010-10-30 10:20:40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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