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33) | 단계학파와 한국한의학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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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History(33) | 단계학파와 한국한의학④
  • 승인 2010.10.20 0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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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웅석

차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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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순과 戴思恭은 투박한 주단계의 어록을 받아 적어 식자층이 수용하기 편한 정교한 언어로 바꿨다” 

전라도 순창은 고추장으로 유명하다. 언제부터 유명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필자가 대학생 때 농촌봉사활동을 한 기억에 의하면 순창은 고추뿐 아니라 담배농사도 많이 한다. 담배를 몇 년 재배한 경작지는 지력이 다하기 때문에 담배를 더 이상 심을 수 없다. 그리고 그곳에는 고추를 제외한 어떤 작물도 자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순창은 고추 경작지가 바로 담배 경작지이다. 식물들도 똑같은 땅에서 자기가 원하는 양분을 선택해서 받아들인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같은 음식을 먹어도 소화하는 양상은 제 각기 다르다. 공부도 마찬가지다. 똑같은 것을 배우고 익혀도 그것을 이해하고 써먹는 것은 천차만별이다. 사람의 취향이 다르고 기본 바탕이 다르기 때문이다.

주단계는 그의 명성에 걸맞게 많은 제자를 길러냈다. 어떤 제자(劉橘泉)는 자기 아들(劉純)까지도 스승의 제자로 만들었다. 주단계의 의학적 계보를 정리하다 보면 두 명의 대표적인 직계 제자를 만나게 된다. 2대에 걸쳐 주단계를 스승으로 모신 유순(14C?)과 주단계의 심복이던 戴思恭(?1324~1405)이다. 그들은 투박하기 그지없는 스승의 어록을 받아 적었고 그것을 당대 지식인들이 받아들이기 편한 정교한 언어로 바꾸었다. 다만 그들은 서로 성향이 달랐기 때문에 스승의 어록을 정리하는 방식은 전혀 달랐다. 그것 때문에 서로가 논쟁을 벌였는지는 모르지만, 한 사람은 종으로 스승의 생각을 심화시켰고 한 사람은 횡으로 스승의 견해를 엮어갔다.

그렇게 주단계의 의학사상은 종횡으로 정교해지고 풍부해졌다. 주단계가 가지고 있는 ‘금원사대가의 집대성’이라는 칭호는 순전히 이 두 사람의 공적이라고 할 수 있다. 대사공의 대표적인 저작인 <단계심법>-단계 어록에 설명을 붙인 것-, <금궤구현>을 보면 우리가 이해하는 주단계의 상화론, 기혈담울론은 주단계가 단서를 제공하고 대사공이 체계화시킨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유순의 <의경소학>과 <옥기미의>를 보면 주단계 이전의 많은 의학자의 의학이론과 경험들이 일관되게 주단계의 학술사상과 엮이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다.

그리고 이외에도 많은 명대 전반기에 활동한 의학자들은 주단계라는 대세에 순종했고 기존의 경험과 자신들의 경험을 주단계 식으로 재배열하는데 일조해 갔다. <황제내경>과 <상한론> <천금방> 및 기존의 유명한 의서들이 무시되거나 배척된 것은 전혀 아니다. 다만 주단계적인 관점에서 이해되고 받아들여졌을 뿐이다. 그리고 그렇게 정착되고 정리되고 검증된 주단계식 의학은 명나라 중기(1500년)을 지나면서 종합 의서의 형태로 더욱 더 보편성을 갖게 된다. 그 서막을 여는 것이 <의학정전>(1515)이고 뒤이어 <단계심법부여>(1536)와 <의학입문>(1575)이 차례로 출간된다.

이 책들은 중국에서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라 북쪽으로는 조선에서 오는 사신들과 무역상에게 전해졌고 동으로는 상선에 실려 우리나라 군산 등의 남서해안 항구를 경유하여 후쿠오카로 건너갔다. 남쪽으로는 산악지대를 넘거나 혹은 상선을 통해 베트남까지 영향을 미쳤다. 다른 지역은 갈 수도 없고 가도 소용이 없었다. 한자문화권이 거기까지였기 때문이다. 바꾸어 말하면 한자가 통용되던 문화권의 지식인들은 모두 이 책들을 보았거나 들었던 사람들이다.

차웅석/ 경희대 한의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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