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ory & History(32) | 단계학파와 한국한의학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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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ory & History(32) | 단계학파와 한국한의학③
  • 승인 2010.10.15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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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웅석

차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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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단계는 心과 腎의 역학관계에 주목했다. 그리고 ‘陽有餘陰不足論’을 주창한다”

주자학이 중국 정치제도의 국시로 정해진 것은 원나라 때이다. 총인구 200만도 안되는 몽골인들은 1억 인구의 중국 대륙을 통치하기 위해 주자학을 선택했다. 주자학에 대한 대단한 심취가 있던 것은 결코 아니다. 글이라곤 자기 이름밖에 쓸 줄 몰랐던 칭기즈칸의 아들 손자들이 알면 얼마나 알았겠는가? 다만 주자학이라는 신유학은 빠르게 중국사회에 퍼져나갔고, 몽골 통치자들은 그것을 효율적으로 이용했을 뿐이다.

지금의 정치권 인사들이 빠르게 트위터에 적응해 가는 것과 하나도 다르지 않다. 이성계가 조선이라는 새로운 정치질서를 세울 때도, 일본이 200여년의 내전을 끝내고 안정기로 접어들 때 도쿠가와 정권이 새로 들여온 정치철학도 바로 주자학이다. 주자학이 우리 근대화를 저해한 최대 원흉이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시작될 때 동아시아인들은 열광했고 위정자들은 그 위력을 정확하게 알았던 것뿐이다.

단계 주진형 선생(1281~1358)은 바로 그때에 주자가 활동한 멀지 않은 곳에서 태어났고 그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그리고 늦은 나이에 어머니의 병이 계기가 되어서 의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였다. <황제내경> <상한론> 등의 고전을 비롯해, 유하간의 화열론과 이동원의 비위론도 탐독했다. 당시 주자학 신봉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불교와는 담을 쌓았고, 불로장생을 신봉하는 방술사들을 경멸했다. 그에게 있어서 의학은 유학(주자학)이라는 전지전능한 세계관의 일부이고, 스스로도 의사가 아닌 유학자라는 것에 강한 자부심을 가졌다. “의학이 유학에서 나왔다(醫出於儒)”, 그가 한 말이다.

철저한 주자학 신봉자가 바라보는 인체는 太極과 理氣의 이치가 유기적으로 적용되는 대상이어야 했다. 몸을 움직이는 이치(理)는 바로 ‘마음’이고, 그 마음을 가능케 해주는 근원(氣)은 의학에서 말하는 ‘精’이었다. 그래서 주단계는 마음과 정을 주관하는 心과 腎의 역학관계에 주목했다. 心은 생명에너지를 소비하는 주체이고, 腎은 생명에너지를 만들어 내는 주체이다. 그리고 인체 안에서 생명에너지의 소비는 생산을 항상 초월한다는 ‘陽有餘陰不足論’을 주창하게 된다.

의학에서는 양유여음부족론을 자음강화라는 치법과 연관시키는데 그치지만, 주단계의 원래 의도는 그렇지 않았다. 소비가 생산을 압도하기 때문에 생명에너지는 늘 고갈 위기에 몰리고 그로 인해 많은 질병을 유발한다고 전제하고, 精이 과잉 소비되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 생각을 줄여야 한다고 했다. 뭘 통해서? 수양을 통해서이다. 보고 먹고 마시고 냄새 맡고 느끼고 하는 모든 외부자극을 차단하고 도덕군자를 지향하는 고요하고 평정된 상태를 유지하면 생각은 줄어든다고 하였고, 그로 인해 음양의 불균형은 해소될 수 있다고 믿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는 정기의 고갈, 그로 인해 생기는 음허화동의 증상에 자음강화법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본 것이다. 주자학에서 말하는 실천원리를 그대로 하면 인체는 무병장수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요지이다. 그렇지 않아도 주자학에 심취해 있던 사람들인데, 그것만 잘하면 건강해질 수 있다고 하는데 누가 솔깃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주단계식의 인간관은 그렇게 해서 주자학적 세계관을 받아들인 동아시아 지식인들 사이에 급속도로 퍼져갔다.

차웅석/ 경희대 의사학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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