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으로 설파한 지성인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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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설파한 지성인像
  • 승인 2010.10.0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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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영

홍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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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남명 조식의 학문과 선비정신>
몸으로 설파한 지성인像
학문 인격 경륜… 기울어짐 없어야

<남명 조식의 학문과 선비정신>
김충열 지음. 예문서원 刊

보수적인 부모는 당당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에 밀어 넣고, 진보적인 부모는 불편한 얼굴로 아이를 경쟁에 밀어 넣는다는 글을 어느 기사에서 읽었다. 보수와 진보의 개념도 모호하지만, 불편한 얼굴은 이미 대다수의 기본 표정이 아닌가 싶다.

요즘 시대에 자타 공인 엘리트들이 위아래로 쏟아내는 내용물을 보면 아이들 눈을 가리고 싶은 심정이다. 아이들 스펙의 종착역으로 각광 받는 이른바 엘리트의 사회적 역할은 무엇일까? 음서나 혹독한 자기 관리를 통해 안정된 직업군에 진입하여 안정된 수입을 올리는 이들을 엘리트로 부르기에는 뭔가 미진하다. 겉에 두른 옷 말고, 그 속 알맹이가 궁금하다.

위 글을 쓴 이는 “학벌이나 직업이 유별나지 않아 멀리서 보기엔 그저 평범해 보이지만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겐 참으로 특별한 사람, 아무리 곤란한 일도 마법처럼 해결책을 제시하는 현명한 사람, 슬픔에 빠진 사람들이 가장 먼저 떠올리는 따뜻한 가슴의 사람, 이 복잡하고 간교한 자본의 체제를 훤히 들여다보는 맑은 눈의 사람, 제 소신과 신념을 '그래도 현실이' 따위 말로 회피하지 않는 강건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가 내린 엘리트의 정의는 공감을 불러일으키지만 다소 감상적인 데가 있다. 그런데 조선 중기 남명 조식이 보여주는 지성인의 모습은 에누리 없는 서릿발이다. 동서양을 통틀어 엘리트의 정의를 내린 사람들이 둘러앉는다면, 모르긴 해도 상석을 차지할 것 같다.

김충열 교수가 남명을 통해 제시한 엘리트의 조건은 학문, 인격, 경륜이다. 이 중 하나만 기울어도 제대로 된 선비가 못된다고 했다. 정계에서 승승장구하던 이황에게, 눈은 뜨고 살아야 하지 않겠냐며 발운산 운운하고, 모여든 제자들에게 병서를 읽혀 의병활동의 초석을 놓은 조식은 광명정대한 학문과 이를 뒤따르는 확고한 행동, 장애를 극복하는 정신력을 보여주었다. 수만 권 독서를 통한 절차탁마와 그득한 물그릇을 치켜들고 세운 자기수련의 밤, 그리고 세상 흘러가는 이치를 간파하고 새로운 흐름을 주도하고자 한 경륜이 바로 조식이 몸으로 설파한 그 시대 엘리트의 표상이다.

국가 운영과 체제 유지를 위한 인력 양성이라는 교육 취지가 등용문 통과를 위한 평가기준으로 축소되면서, 역시 ‘학’부모로 자신의 역할을 축소 조정한 부모의 허리는 휘어지고 자녀와의 관계는 날로 어려워진다.

엘리트의 자격이 무엇인지, 엘리트의 사회적 역할이 무엇인지 뚜렷하게 보여준 남명의 가르침 한 조각을 마음 귀퉁이에서 꺼내어 얼음처럼 찬 물에 빨아 따가운 볕에 말리고 싶게 하는 가을이다.

홍세영/ 한국전통의학史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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