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문화칼럼] 소리꾼과 청중이 하나되는 판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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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문화칼럼] 소리꾼과 청중이 하나되는 판소리
  • 승인 2003.04.19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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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는 놈은 발가락 빨리고, 똥누는 놈 주저앉히고, 제주병에 오줌싸고, 소주병 비상넣고, 새 망건 편자끊고, 새 갓 보면은 땀때 띠고, 앉은뱅이는 택견, 곱사동이는 되집어 놓고, 봉사는 똥칠허고, 애밴 부인은 배를 차고…” 이것은 홍보가 중 포복절도할 놀부 심술부리는 대목이다. 이렇게 우리의 판소리는 기막힌 해학이 있다. 하지만 판소리가 해학뿐인 것으로 안다면 그건 오산이다.

“船人들을 따라간다, 선인들을 따라간다. 끌리는 치마자락을, 거듬거듬 걷어 안고, 비같이 흐르는, 눈물 옷깃이 모두가 사무친다. 엎어지며 넘어지며, 天方地軸 따라갈 제…” 이것은 심청가 중 심청이 뱃사람들을 따라 인당수로 가는 대목이다. 이 부분을 들으면서 오열을 삼키지 않을 사람은 없을 것이다.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 사랑 사랑 사랑 내 사랑이야. 사랑이로구나 내 사랑이야. 이이이 내 사랑이로다. 아마도 내 사랑아 네가 무엇을 먹을랴느냐… 저리 가거라 뒷태를 보자 이리 오너라 앞태를 보자” 이 대목은 춘향가 중 많은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 <사랑가>중 일부이다. 에로틱한 이도령과 춘향의 사랑놀음인데 성적 농담도 예사롭게 등장한다.

또 적벽가의 대목처럼 한문 고사성어 투성이인 경우도 있다.

그럼 판소리는 무엇일까?

판소리란 부채를 든 한 사람의 唱者(소리꾼)가 鼓手(북치는 사람)의 북장단에 맞춰 창(소리), 아니리(말), 너름새(몸짓)를 섞어 이야기를 엮어 가는 극적인 음악이라 할 수 있다. 판소리란 넓은 마당을 놀이판으로 삼고 판을 벌여 하는 놀이를 판놀음이라 하고, 이 판놀음에서 하는 소리를 판소리라 한다.

판소리는 18 세기 초(숙종-영조, AD 1674∼1776)에 발생했다. 판소리는 그 발생의 바탕이 되는 옛날이야기(설화)를 바탕으로 하여 구전가요, 무가, 공연 현장에서의 흥을 위한 재담 등 여러 문화적 요인들이 첨가되어 발전돼왔다.

판소리가 전승되면서 전승 계보에 따라 음악적 특성이 생기게 되었는데, 이를 ‘제’라고 한다. 유파에는 東便制, 西便制, 中高制, 岡山制가 있다. 각 유파는 나름의 특징이 있다. 동편제는 대체적으로 장단에 충실하고, 발림이 적으며, 감정을 절제하는 창법을 구사하는데 소리가 웅장하고 힘이 들어 있다. 서편제는 잔가락이 많고 장단이 느리며 발림이 많은데 소리의 색깔이 부드러우며, 구성지고 애절한 느낌을 준다. 중고제는 경기도 남부와 충청도지역에 전승된 소리인데, 그 개념이 모호하여 ‘非東非西(동편제도 서편제도 아님)’로 표현된다. 강산제는 체계가 정연하고 범위가 넓은데 너무 애절한 것을 지양하여 점잖은 분위기로 이끌었고, 삼강오륜에 어긋나는 대목은 없애거나 고쳤다.

판소리에는 원래 ‘춘향가’, ‘심청가’, ‘홍보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타령’, ‘옹고집타령’, ‘무숙이타령’, ‘강릉매화타령’, ‘장끼타령’, ‘배비장타령’, ‘가짜신선타령’ 등 열두 가지가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춘향가’, ‘심청가’, ‘홍보가’, ‘수궁가’, ‘적벽가’ 만이 불려지고 있고, 나머지 실전된 것을 박동진이 많은 노력으로 여러 바탕을 복원한 바 있다.

판소리는 서양의 문화와는 많이 다르다. 서양 성악은 테너, 소프라노 등 각자의 성부가 있어서 각자 자기의 노래만 하면 된다. 하지만 판소리는 혼자서 전 성부를 다 소리내야 한다. 더구나 판소리 한마당을 완창하려면 혼자서 8시간 가까이 소리를 해야 하는 경우도 있는데 정말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성악은 곱게 목소리를 다듬어 노래를 하지만 판소리는 소리를 내지르고 있다. 폭포소리를 이겨내고, 피를 토하는 악전고투 끝에 걸걸한 소리로 변해야 만 제대로 득음을 했다고 하는 것이다. 서양 성악은 성악가가 노래하면 조용히 듣고 있다가 다 끝난 다음에 박수를 치고 격려를 하지만 판소리는 소리를 하는 도중에 청중들이 추임새로 소리꾼과 하나가 된다. 청중은 감상을 하는 사람만이 아니라 처음부터 소리판을 같이 이끄는 중요한 요소라는 점이 크게 다르다.

서양음악도 아름다운 음악임이 틀림없지만 우리민족의 정서를 잘 드러낼 수 있는 것은 우리 음악일 것이다. 풍물굿처럼 연주자와 관객이 따로가 아니고 하나가 되는 즉 ‘대동 한마당’이라는 것을 보여주는데 이는 우리 문화의 중요한 뿌리가 된다. 우리는 이제 판소리의 재미에 빠져 민족문화의 한 복판에 서 있기를 기대해본다.

민족문화운동가 김영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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