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의학의 溫故와 知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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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학의 溫故와 知新
  • 승인 2010.07.16 10:31
  • 댓글 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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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충열

이충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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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들 아이디어 보물창고…현실 접목돼야
시평- 한의학의 溫故와 知新 

요즘 민족의학신문이 轉女爲男 논쟁으로 뜨겁다. 한의학 문헌에 기록된 전녀위남법의 실현 가능성 여부가 논쟁의 초점이다. 이 논쟁의 배후에는 한의학 원전에 기록된 이론, 치법들이 과학시대에도 가치가 있는지에 대한 서로 다른 평가가 자리 잡고 있다. 필자는 이 논쟁이 오늘날 한의학이 지닌 근본적인 문제를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요약하면 溫故知新의 문제다.

<論語 爲政篇>에 나오는 “溫故而知新”은 옛 것을 익혀 새 것을 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 짧은 구절도 사람마다 제 각각 읽는다. 어떤 사람은 이 구절을 옛 것을 잘 익히면 그 속에서 새 것을 발견할 수 있으니 옛 것을 아는 것에 힘써야 한다고 읽는다. 또 어떤 사람은 우리가 옛 것을 연구하는 이유는 그 속에서 새 것을 발견하는데 있으니 답습을 벗어나 옛 것 속에서 새 것을 찾아내는데 힘써야 한다고 읽는다. 이런 논리는 오늘날 전통시대 한의학을 보는 시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한의학은 서양의학과 달리 지난 수천 년 간 쓰여진 텍스트들을 아직도 이론과 임상을 연구하는 주요 자원으로 삼고 있다. 한의학의 ‘溫故’는 이런 다양한 텍스트 내용을 ‘이해’하는 데서 시작된다. ‘이해’는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의 사고체계를 과거 텍스트를 저술했던 저자의 사고체계에 가깝게 접근시켰을 때 도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옛 문헌들은 오늘날과 전혀 다른 세계관 속에서 서술돼 현대인의 사고방식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내용과 논리구조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溫故’에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때문에 많은 학자가 ‘溫故’는 도대체 어느 수준까지 해야 하는 것인지, 또 ‘溫故’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만큼의 가치가 있는 것인지 의문을 제기한다.

고서들 아이디어 보물창고…현실 접목돼야
‘知新’ 없는 ‘溫故’ 무의미하고 맹목성 불과


한의학의 옛 텍스트들과,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의가들의 임상경험은 현대에 사는 우리에게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공할 수 있는 보물창고라고 말들 한다. 그래서 한의학 원전 연구는 꾸준히 이어져 왔다. 그러나 오늘날 한의학의 이 보물창고는 연구자들로부터 점차 외면당하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溫故’를 중시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일정 부분 역할을 했다. ‘溫故’ 중시자들은 대체로 ‘溫故’ 그 자체에만 관심을 집중할 뿐 자신과 다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에 관심이 없거나 굉장히 서툴다. 또한 이들이 훈고학적 방법에 능숙하며 옛 문헌을 읽고 이해하는데 뛰어나지만 이들의 연구는 오늘날 한의학이 지닌 현실문제 해결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들의 문제의식과 연구주제 선택이 현실과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論語 爲政篇>은 옛 것에 박식하다는 것만으로는 남의 스승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옛 것 속에서 현대나 미래에 적용할 수 있는 새로운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라야 스승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溫故’는 ‘知新’과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 ‘知新’ 없는 ‘溫故’란 무의미하고 맹목성에 불과하다. 이는 옛 것에 대한 연구가 현실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되거나 적어도 넓은 지평에서 이들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할 수 있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 않으면 한의학의 ‘溫故’는 점점 더 설 자리를 잃을 것이다. ‘溫故’와 ‘知新’, 문제는 균형이다.

이충열/ 경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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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2010-07-16 12:55:55
이충렬 교수님같은 분께서 학계의 중심을 잡아주셔서 얼마나 든든한지 모르겠습니다. 요란스럽고 번잡한 여러 바람소리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학계와 임상가에게 튼튼한 학문적인 뿌리를 잘 가꾸어 길러주시기 바랍니다.

빨간불 2010-07-16 14:52:59
‘知新’ 없는 ‘溫故’란 무의미하고 맹목성에 불과하다면 '溫故'가 없는 ‘知新’은 삼복첩인가요? ‘溫故’와 ‘知新’, 문제는 균형이 아니라 얼마만큼 철저하게 온고의 바탕에서 지신이 되느냐 아닐까요?

동아 2010-07-16 14:53:38
의외로 많은 교수님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보여주시는군요. 독자로서 감사드립니다. 다만, 온고는 옛것에 대한 지식을 일별하는 것이 아니라 따근따끈하게 익을 때까지 익숙해져야 한다는 뜻으로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옛것이 완전히 익숙해진 다음에야 새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뜻이 되겠지요. 전녀위남에 깔려 있는 다양한 한의학 이론, 경맥과 위기에 대해 조금더 구체적인 토론이 진행되기를 바랍니다.

청심 2010-07-16 15:29:22
맞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의학이 현실문제 해결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것은 또 무슨말입니까? 대체 이충열 교수님은 현재 발표된 위기의 운행에 대해 공부를 해보셨나요? 사람은 무엇으로 부터 에너지를 공급받고 어떤 기가 영기, 위기가 되며 위기의 특징인 표질활리는 무엇인지? 영위를 운행시키는 힘은 무엇이며 영기와 위기는 어디에서 만나는지 등..스스로 온고를 못하면 발표된 연구라도 공부해봐야 합니다..

청심 2010-07-16 15:46:26
굉장한 위치에 계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이룩한 온고는 그 온고대로, 보다 나은 사람이 이룩한 온고는 열심히 공부하여 학생들을 이끌어주셔야 합니다..의학의 대상인 인간은 예나 지금이나 같지 않습니까? 환경은 달라졌으니 그것을 고려하여 知新을 이루고..... 전녀위남에 깔려있는 위기의 내장운행시간 이용법을 연구해보셔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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