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자 모두 자기 논리에 매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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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자 모두 자기 논리에 매몰
  • 승인 2010.07.02 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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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용

백상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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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녀위남!’ 관련 논쟁을 바라보며
토론자 모두 자기 논리에 매몰
시비 여부 떠나 ‘제 논에 물대기’식 엿보여

‘전녀위남!’ 관련 논쟁을 바라보며 

‘논쟁은 논쟁을 낳고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지만’, <김기왕 교수의 ‘전녀위남이라니!’ 반론에 답함 -고전 속에서 믿음 아닌 관찰 찾아야>와 <박석기 원장의 ‘논쟁/전녀위남이라니!에 답함 -육안과 혜안>을 비교해 읽다 보니, 각자 자기 논리에 빠져있는 것 같아 한 마디 첨부하고자 한다. 필자 역시 논리의 매몰에서 자유롭지 못하겠지만, 다만 글의 전개에 있어 논점을 흐릴 수 있을 정도의 오점은 피하고자 할 뿐이다. 누가 옳고 누가 틀린가에 대한 시비의 문제가 아닌, 논리의 전개나 각자의 입장에 있어서 피해야 할 몇 가지 사항을 지적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정액이 혈액에서 기원했다를 단적으로 부정할 순 없다. 방법 수단의 한계, 그로 인한 조잡한 설명이나 예시 때문에 그 본지를 외면해선 안된다”


먼저 김기왕 교수의 글을 살펴보자. 동의보감에서 ‘精에 대한 기술 중의 비과학적인 부분을 들춰내, 고전이라도 다 믿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는 논거를 세우고 있다. 이 점에 있어서 본인도 100% 동의한다. 이에 대해 맹자께서도 무작정 고전을 믿는 것에 대해 크게 경계하고 있으니, “孟子曰, 盡信書則不如無書, 吾於武成, 取二三策而已矣(맹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책(글-여기서는 서경)을 다 믿는다면 책이 없음만 같지 못하니, 나는 무성에서 2~3가지 계책을 취할 따름이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으로 ‘정액이 혈액에서 기원한 것이다’는 것을 단적으로 부정할 순 없다. 동의보감의 예시는 당시 그들의 도구적․방법적 수준에서 사용할 수 있는 것이 그 정도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법이나 수단의 한계, 그리고 그로 인한 조잡한 설명이나 예시 때문에 그 본지를 외면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반대로 말해서 그렇다면, ‘정액이 혈액으로부터 기원하지 않았다고 단언할 수 있는가?’ 라고 묻는다면 어떻게 답할 것인가? 이를 보다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도록 연구하여 이론적이고 실질적인 근거를 세워 학문의 체계를 굳건하게 만드는 것은 아마 지금 한의학자들의 몫일 것이다. 지금의 수준에 맞는 방법과 예시를 해주어야 하는 의무가 지금 한의학을 연구하는 그 누군가에게 있다.

“음양오행설에 대한 연구가 현대적으로 가치가 없다. 굳이 수백억원을 들일 필요가 있는가?”라고 썼는데, 과연 학자가, 학문의 발전이나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선입견이나 예산의 배분 등에 묻혀서 연구가치가 없다고 단언하는 것이 올바른 것인지 묻고 싶은 대목이다. 그렇다면 수천억을 들여서 실패한 나로호에 대한 발사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나로호 연구가 우주과학이나 그 연관 분야에서 연구하는 학자들 입장에서 수천억을 들여서 해야 할 만큼 절실하다면, 음양오행설에 대한 연구가 한의학자나 한의사에겐 어떤 의미인지 고민해 보아야 한다. 나로호 발사보다 가치가 없다면, 그것은 곧 한의학의 가치를 그 정도로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음양오행설 연구가 한의학자에게 어떤 의미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나로호 발사보다 가치가 없다면, 그것은 곧 한의학 가치를 그 정도로 보는 것이다”


그리고 개인적인 好惡나 不信, 내지 이해 불가로 인해, 연구해볼 가치조차 없다고 한다면, 이는 학자의 태도로 보기에 민망한 부분이 없지 않다. 더구나 한의학을 전공하고 연구하는 학자의 입장이라면, 그 마음자세에 대해 다시 한 번 돌아보아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한의학자라면 ‘설’을 ‘논’으로 바꿔 ‘음양오행론’이라고 부르고, 명실상부한 ‘이론’이 될 수 있도록 연구․보완․계발하여 완성을 추구하는 애정이 필요하지 않을까 한다.

“고인들이 진짜로 확인한 것은 경락이 아니다. 그들은 인체의 각 부위가 보여주는 현상을 관찰했고, 그것을 종래에 알려져 있던 실체와 연결하여 해석했을 뿐이다”고 주장한 것에 대해 경락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다른 학자들의 견해를 얼마나 참고, 검토하였는지 묻고 싶다. 김 교수가 경락에 대한 전문가가 아니라면 최소한 다른 학자의 견해에 대한 참고가 필요할 것이다. 단지 황룡상 교수라는 분의 주장만을 취하여, 자기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에도 경락의 기원에 대해 연구하고 있는 분이 적지 않는 걸로 알고 있다.

특히 상지대의 이용범 교수는 경락의 기원에 대한 문헌연구에 오랜 세월 몸 바쳐 왔다. 본인이 알기로 그의 결론은 ‘경락은 먼저 線을 발견하고, 그 선 위에서 혈자리를 정한 것이다’로 알고 있다. 명대 이시진의 ‘奇經八脈考’를 살펴봐도 이런 경향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임독맥을 비롯한 八脈의 흐름과 역할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임독맥은 너무 분명해서 논외로 치더라도, 陰陽蹻脈과 維脈의 흐름을 살펴보면, 단순히 순서대로 혈자리를 배열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논거를 삼을 때 균형을 취하고, 자기 주장의 중요한 근거가 되는 학설이라면, 충분히 납득할 수 있는 전제를 보여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것은 단지 커다란 외침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현대 물리학의 이론들이 한의학의 이론을 합리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여, 앞뒤 빼고 그 결과만 취해 作爲的으로 이용해선 곤란하다”


다음으로 박석기 원장의 글을 살펴보자.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의 원리를 기반으로, “에너지 세계에 들어가면 전혀 다른 결과가 나타난다. …관찰자의 마음에 따라 실험결과가 다르게 나타난다. 인간의 정신작용은 모두 에너지의 현상이다. …인간이나 남녀의 특성을 나타내는 게놈 역시 물질(DNA)의 집합체이고, 이 물질은 에너지의 응취에 의하여 형성된 것이다. …특정 주파수의 에너지를 받으면(간섭과 공명)돌연변이가 일어난다. …한의학은 에너지를 본으로 하는 학문이다. …기 조절이 먼저라는…”라고 하여, 물리학과 한의학의 만남을 주선하여 ‘전녀위남’ 등 고전의 일부 주장이 가능할 수 있는 충분한 근거가 현대 물리학의 결과 안에 내재되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는 심각한 이론적 도약 또는 비약이 숨어있다.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설의 원리는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을 기반으로 하고(원자탄 개발의 핵심 근거인 F=mc2 등), 원자 단계의 미시세계 또는 우주적인 무한한 시공간을 대상으로 한 초거시세계에서 현실화될 수 있는 학설이다. 그러므로 분자단계인 DNA의 단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돌연변이의 발생과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원자탄에 핵분열을 시작할 수 있을 정도의 엄청난 초기 에너지가 필요하듯이, 여기에도 인간과 같은 연약한 생명체가 견디기에 벅찬 막대한 자극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이미 成胎를 하여 성별이 정해진 현실의 태아 상태라면, 과연 불확정성의 원리나 돌연변이의 현상을 근거로 다른 위해상황 없이 성별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할 수 있을까?

물질적인 에너지로 현실화시킬 수 없다면 정신적인 의지를 집중하거나 환경의 변화를 통해서 가능하다고 말할 수도 있다. 영화 <쥐라기공원>에 나오는 양서류(양서류나 파충류 중에 성 전환을 일으킬 수 있는 개체가 있음)의 유전자를 가진 공룡의 성 전환, 또는 성체 중에 가장 강한 개체가 수놈으로 변화하는 혹돔의 예 등이 중요한 예시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부모의 의지에 따라 태아의 성별이 바뀐다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한다. 태아는 환경의 변화에 민감한 양서류가 아니고, 또 스스로 성별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가 있다고 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극단적인 예시(예를 들면 ‘팔이 잘려나간 사람이 팔이 잘려나가지 않았다고 결단코 고집을 펴도 그 사람의 현생 내에서 그 팔이 다시 자라나지 않듯이)를 피하고 우리가 지금 현실화할 수 있는 특정 시공간대의 특정 사건으로 제한하는 범주화가 필요하다. 특정한 시공에서 효용성이 있는 현대 물리학의 이론들이 한의학의 이론을 합리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다고 하여, 앞뒤 빼고 그 결과만을 취해서 作爲的으로 이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모든 학문에 혜안이 필요한데, 혜안만 강조하다 보면 ‘음양론’이 ‘음양설’로 바뀌는 아픔을 겪어도 변호할 수 있는 역량의 배양을 기대할 수 없다”


그리고 형체와 정신이 한몸으로 서로 공명하지만, 그렇다고 현실의 사건에서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지배하여 같은 리듬(기의 율동)을 타지 않기 때문에, 서로 간의 한계를 지워주는 것도 조심스럽게 생각해 봐야 한다. 만약 완전히 한몸이라면 그리고 구분할 수 없다면, 굳이 정신, 또는 형체라는 말이 필요없기 때문이다. 에너지와 물질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단계에서 특정한 과정(연소나 증식 등)을 거쳐 서로 전화하지만, 그렇다고 한 시점에서 둘이 같은 것이라고 말할 순 없다.

이는 불확정성의 원리가 적용되는 미시세계에서나 가능한 일이다. 에너지가 물질이고 물질이 에너지이지만, 여전히 물질은 물질이고 에너지는 에너지일 뿐이다. 이를 무한한 시공간으로 확대하여 동일시하는 道의 경지로 끌고 가지 않는 것이 학문일 것이다. 즉 우리가 육안으로 살필 수 있는 현실은 뉴톤의 기계역학이 하이젠베르그의 불확정의 원리보다 더 타당하게 작용한다고 볼 수 있다.

“한의학은 이러한 혜안이 필요한 학문이다”고 발언했는데, 필자 생각에 모든 학문에는 혜안이 필요하다. 그러나 혜안이 상대의 이론적․현실적 타당한 비판을 무지나 어리석음으로 돌려주는 것이 되어서는 안된다. 특히 절차를 따지고 구분과 분별을 통해 사건을 해결하는 가장 적절한 방법을 찾거나 찾아가는 학문적 과정에 있어서, 논리적으로 또는 예증적으로 설명하지 못하고 이를 혜안의 부족으로 돌린다면 더욱 곤란하다. 혜안을 강조하다 보면, ‘음양론’이 ‘음양설’로 바뀌는 아픔을 겪으면서도 변호할 수 있는 역량의 배양을 기대할 수 없을 것이다.

애정 어린 마음으로 현실의 변화에 주목하면서, 목전에 당도한 사건들의 전후 본말을 잘 헤아려, 음양오행론의 層次的 각 位相이 적용할 수 있는 한계(논리의 範疇化)와 그에 따라 제반 사항(적용의 分節化)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하여 분석해 나간다면, ‘음양론’과 ‘오행론’ 아니 ‘음양오행론’은 세상의 미시세계에서부터 거시세계까지 막힘없이 들여다 볼 수 있는 통철의 눈빛으로 거듭날 것이다.

“주단계 견해는 탁견이다. 시작과 결말이 一以貫之하다면, 그 과정을 채우고 다듬고 수정해 발전시키는 것은 지금 한의학자들의 몫이 아닌가 한다”


마지막으로 ‘전녀위남’에 대한 고인의 견해를 첨부하자면, 주단계는 <격치여론․受胎論>에서 ‘난자를 배출하는 난소의 좌우 위치와 남녀의 결정에 대한 관계를 연결지어 수태하는 순간에 이미 남녀가 정해짐’을 피력하고 있다. 이 또한 동의보감의 정과 혈의 관계 증명을 확인하는 것의 방법처럼 현대과학 입장에서 본다면 유치한 발상일 수 있지만, 成胎할 때 이미 성별이 정해진다는 견해는 탁견이 아니라고 할 수 없을 것이다. 시작과 결말이 一以貫之하다면, 그 과정을 채우고 다듬고 수정하여 발전시키는 것은 지금 한의학자들의 몫이 아닌가 한다. 한의사들은 이러한 고인들의 견해를 본받아 지금도 임상진료에 임하고 있으며, 막강한 권력을 무소불위로 휘두르는 서양의학에 맞서 지금도 살아남아 있기 때문이다.

백상용/ 매난국죽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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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사들조차 2010-07-09 15:57:34
한의계가 힘을 못내고 있는것입니다. 매번 학교수업에서 목도하는건 근거없는 자기 설풀기와 열등의식이며 이런현실속에서 김기왕교수님같은분들이 많아지기를 바랄뿐입니다. 결국 이것은 자기들끼리도 대화할수없고 시도조차하지않는 소통과 대화의 부재가 근본이유라생각되네요. 그리고 다른사람들의견을 '평가'하기만하고 자기 의견은 없는글은 비겁하게보입니다.

fanta 2010-07-05 17:12:41
각자의 논리에 매몰되어 자기주장만 하는 한의계의 현실. 객관적 논리의 전개라 주장하는 것도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엉터리 가정에서 출발한 명제는 엉터리입니다. '전녀위남'이라는 술법을 놓고 볼 때 과연 뭐가 전녀위남이라는 것입니까? '녀'는 누가 증명한 '녀'입니까? 그 시절 초음파진단기라도 있었단 말입니까? 시작부터 성립이 안 되는 것을 가지고 현재에 부정하면 안 된다는 사고방식 정말 문제 아닙니까?

한가지 2010-07-03 12:24:05
연구자들이 논문으로 발표했고 이후 여러 책과 논문을 통해 누차 지적되었습니다. 마왕퇴백서에서 '--맥'에 뜸을 뜬다는 구절에서의 '맥'은 어느 한 지점(국소부위)의 의미인데 이것을 오늘날의 '맥' 의미로 잘못 해석했던거죠. 이용범교수님께서 선 먼저 점 나중이라는 오류를 답습하고 계시리라고 믿고싶지 않습니다. 칼럼집필자와 독자들께 관련 논문/서적상 논거확인이나 침구경락문헌 전문가에의 문의를 권합니다.

한가지 2010-07-03 12:19:12
부적절해 보이는 언급이 많이 눈에 보이지만 한 가지만 지적하자면, 상지대 이용범 교수님의 경락의 기원에 대한 오랜 연구상 결론이 "경락은 먼저 線을 발견하고, 그 선 위에서 혈자리를 정한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이용범 교수님의 결론이 실제로 그러한지는 논외로 하고라도 경락의 기원을 '선' 먼저 '점' 나중으로 보는 설은 마왕퇴백서 판독오류로 제기되었던 잘못된 견해고 이는 벌써 1970년대에 李鼎교수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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